오랫동안 현실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 이유는 현실에서는 내 기쁨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꿈을 꾸고 그곳을 헤매며 이루기 위해 날아다는 것을 좋아했다. 운좋게도 20대에는 그러한 상상이 여행이란 현실이 되어 나를 새롭고 낯선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꿈꿔왔던 다른 세상에는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눈빛들로 가득했고 그곳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밖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파랑새는 가까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고 살아가길 몇 년이 지났다. 가까운 곳의 파랑새를 지켜내기 위해 잠시 날개를 접고 요즘은 땅에 발을 제대로 딛는 연습을 하고 있다. 꿎꿎하게 걸어 나가기 위해 거친 땅 위에서 중심 잡기를 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길에는 더 이상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세월에 초대된 남편과 아들이 함께 있기에 부족한 현실 감각에 현재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꽤나 노력하고 있다.
날고 싶어 하는 욕구에 충실하고자, 현실이라는 여기와 지금이라는 현재를 종종 거부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행동하지 않았던 까닭은 과거의 좋았던 경험을 잃고 싶지 않았던 욕심과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새기며, 젊고 화려했던 나와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김순기의 게으른 구름> 전시를 보며 4년 전에도 나는 어떻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었다.
낙엽과 단풍이 한창인 가을 일요일
나와 아들은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_서울관 전시를 관람하러 갔다.
4가지 주제 전시가 있는데, 전시 모두 무게감도 가득했고 분량도 많아서 일정을 짧게 잡은 우리는 다양한 전시를 관람하기는 힘들었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 작가 '김순기의 게으른 구름' 전시를 보았습니다.
김순기 작가는 1946년 충남부여 출생입니다. 서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후, 프랑스 니스에서 주로 활동을 하셔서 우리나라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작가인 듯합니다. 그녀는 서울대 회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의 초청작가로 선발되어 프랑스로 건너갔는데, 남프랑스의 자유롭고 지적인 토론이 활성화되어 있던 실험적 예술가 그룹과 교류하면서 그녀의 작업 또한 자유롭고 다양한 장르로 발전해 갔다.
전시실로 입장을 하고 그녀의 초기 작품들을 접하게 되는 순간, 최근에 내가 고민하던 < 나, 여기, 지금 >에 관한 무수한 단어들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그녀의 초기 작품을 계속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금의 내 모습과 내 아들 혹은 어릴 적 나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같은 순수한 즐거움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작은 돌멩이들을 수집해서 시를 써 보고 다시 재배치하는 다양한 언어유희. 한국적 오방색을 이용한 색놀이 등.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즐기는 방식의 놀이를 연속적, 지속적으로 행하며 그 안의 의미와 왜 자신이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행위를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왜 그게 예술인지 증명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았다.
최근 다양한 강의를 접하며 내가 깨달은 바는 바로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일상 속에서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그 존재의 시간과 나의 모습을 거부하지 않고 충실히 집중해서 살아나가야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여기 김순기 작가가 바로 그러한 행위를 예술로써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이들이 즐기는 그 시간 속 순수함을 지켜준다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자신이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것에 집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지점토 혹은 바느질 등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봐도 너무 잘했고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칭찬을 받았는데, 유독 엄마는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며 혼을 내셨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지독히도 미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내가 가진 나만의 재능을 스스로 표현해 보며, 즐거움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일을 하셨기에 엄마가 없는 시간은 외로웠지만,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순기의 작품은 실로 방대했는데, 나는 그녀의 초기 작업과 외부 공간 속에서 행해진 그녀의 우연성 가득한 작품들을 바라보며 전시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공간에 대한 관심과 우연의 사건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김순기 작가 또한 자신의 작업을 넓은 대지 혹은 바다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며 그들도 작품이 되는 그러한 방대한 규모의 서사를 쓰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80년대, 백남준 작가와도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진행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여자 백남준이라 일컷자, 그때의 작업들을 거의 대부분 불태워버려 현재 비디오 작업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이런 스토리를 통해 얼마나 자기 중심이 강한 사람일까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최근 그녀의 작품은 전시관 중정 실외에 설치 된 애드벌룬과 실내에 앉아있는 로봇 영희가 시를 읽고 음미하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예술적 활동을 로봇이 하면서 앞으로 인간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예술 작업들을 관람하다 보면,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은 일반 다르지 않은데 그들은 작가가 되었고 나는 일반인인 이유는 그들은 이미지로 표현했고 글로 남겼으며,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고 지속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