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보내고
화장실을 나와 전해수기 통에 들어있는 400ml 정도의 물을 따라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다. 그때 자고 있던 아이가 일어나 울기 시작한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내가 일어난 조금 뒤에 아이가 곧잘 일어나 기척을 한다. 안방으로 들어가 잠이 덜 깬 귀여운 얼굴에 뻗친 머리를 하고 침대를 붙잡고 서있는 아이를 보고 웃는다. 아이를 침대에서 번쩍 들어 올려 내 침대에 내려놓고 살포시 눕혀 기저귀를 간다. 요즘은 거의 눕자마자 뒤집어서 이리저리 기어가는 통에 기저귀를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침대 머리 쪽으로 쫓아가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을 신겨서 거실로 데리고 나온다. 어제저녁에도 갖고 놀았던 장난감이 즐비한 거실 바닥에 앉히자 마음에 드는 장난감으로 기어가 새로운 듯 이것저것 손으로 만지작 거린다. 나는 젖병 뚜껑을 열어 분유 포트에 있는 물을 담고 분유 가루를 넣는다. 기분이 좋거나 장난감에 푹 빠져 있는 날 아침은 조용히 혼자 놀지만 옆에서 멀어지면 금방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분유를 배불리 먹고 10여분쯤 놀다가 아이가 힘주는 소리를 낸다. 요즘 어린이집을 가기 전 거의 같은 시간 대에 대변을 봐서 나는 놀라지 않고 치울 준비를 한다. 오늘은 물도 안 나오고 받아놓은 물도 없으니 물티슈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주는 아이를 소파 앞쪽으로 데려가 서있게 했다. 서서 변을 보면 엉덩이나 주변 부위에 변이 덜 묻어서 좋다. 힘주기를 멈춘 아이를 조심스럽게 휴대용 기저귀 갈이대 위에 눕히고 장난감 하나를 쥐어준다. 바지와 기저귀를 벗기고 상태를 확인하니 물티슈로 해결 가능한 상태였다. 속으로 안도하며 최대한 손에 닿지 않게 변을 닦아낸다. 기저귀를 다시 채우고 바지를 입히고 양말까지 다시 신기고 나면 9시 40분쯤이 된다. 아직 어린이집으로 출발하기까지 몇 개의 코스가 남아있는데 눈곱을 떼주고 땀이 찬 손을 닦아주고 겉옷을 입히고 챙겨 보낼 물건들이 다 가방에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항상 마스크를 쓰고 데려다주다 보니 나는 거의 눈곱만 떼고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유모차를 태워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같은 동의 바로 옆 세대 1층에 있는 어린이집은 걸어서 3분 거리로 금방 도착한다. 현관에서 선생님에게 아이를 안겨주고는 잘 놀다 오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등원한 지 4일 째부터는 다행히 울지 않는다. 빈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허전함과 무력감이 공격해 오기 전에 보통은 집안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빨래를 할 수도 이유식이나 음식을 만들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음에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밥을 먹으면서 목욕탕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출산하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대중목욕탕을 가서 마음 놓고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산욕기(분만 후 6주까지)를 지나고 코로나 19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가야겠다는 마음은 사그라들었다. 임신기간에는 여성질환 감염 위험도 있고 쓰러진다거나 미끄러진다거나 하는 사고의 위험도 있어서 무엇보다 갈수록 몸이 무거워져 20분을 걸어서 목욕탕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데려다준다고 해도 탕에도 사우나에도 못 들어가고 혼자 샤워나 겨우 할 수 있으니 가나 마나 한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가벼운 몸으로 그리고 더 가벼운 마음으로 목욕탕을 간다. 목욕바구니는 단출했다. 대신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마실 커피우유는 포기할 수 없기에 집에 있던 보냉병에 먹다 남은 커피우유를 따르고 디카페인 믹스커피 가루와 얼음을 추가로 넣어 가방에 넣었다. 평일 오전의 목욕탕은 한가로운 편이다. 표를 끊고 입장하니 목욕하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내 또래보다는 엄마, 이모뻘 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제일 먼저 의자와 대야를 닦고 앉아서 이를 닦는다. 어서 온탕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순서가 있기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치고 냉커피우유가 든 분홍색 보냉병을 들고 탕으로 향했다.
한발 한발 탕에 발을 발을 담그고 서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건조해서 긁적 댄 무릎이 간지러우면서 발 전체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계단처럼 생긴 온탕에 턱에 앉자 명치까지 물이 차오른다. 조금 숨을 고른 뒤 턱밑까지 몸을 가라앉힌다. 둥글게 생긴 온탕 가운데에서는 계속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가만히 앉아 물이 움직이는 것을 느껴보고 가운데로 발을 뻗어 물 기포가 오는 것을 느껴본다. 인중에 땀이 찰만큼 몸이 데워지면 보냉병을 열어 차가운 커피우유를 한 모금 들이킨다. 이때만큼은 어떤 카페의 라떼도 생각나지 않는다. 달달하고 시원하고 적당히 쓴 그야말로 맛이 좋다. 몇 모금 더 목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은 카드값 걱정도 저녁 메뉴 고민도 우울함도 나와는 먼 것 같다. 오랜만에 와서 더 좋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주 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제왕절개 수술 부위도 다 아물었으니 걱정 없이 탕에 진득이 있어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물속에 있는 느낌을 느껴본다. 물속에서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자 물결이 팔뚝 아래로 모였다가 퍼진다. 이번에는 엎드려서 목만 탕 밖으로 내놓고 발장구를 치자 몸이 떴다가 가라앉는다. 그러다 목욕탕 벽 가운데 걸린 빨간 태두리의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쯤 아이는 이유식을 먹었겠지라는 생각과 집에 들러서 유모차를 가지고 데려갈 시간을 계산해본다. 팔천 원에 누리는 여유는 이제 한 시간의 유효기간이 생겼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더 느긋이 있어 볼 테다. 왜냐하면 집에 물이 안 나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