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by 한 작자

태어난 지 6개월까지 아이는 통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이때까지는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면 분유를 주고 한두 시간 놀아주다 같이 다시 자는 패턴이 이어졌다. 무언가를 먹고 바로 자면 부대끼다 보니 아침식사는 거르기 일쑤였고 두 번째 일어났을 때 늦은 점심을 혼자 차려 먹었다. 아이가 잘 때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 생기는데 이때 매번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 고민했다. 첫 번째 머리를 감고 씻는다, 두 번째 밥을 먹는다, 세 번째 같이 잠을 잔다, 네 번째 집안일을 한다. 만약 지난 새벽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면 씻거나 밥을 먹는 것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벽에도 수유를 했던 탓에 다른 모든 욕구는 우선순위에서 물러나고 대게 아침 잠이 그 자릴 차지했다. 그렇게 낮잠이라고 하긴 뭐한 오전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배고픔이 느껴진다. 일어날 때도 아이가 울거나 움직이는 소리에 깨기 때문에 내 의지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잠을 잘 때는 좋지만 깨어나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자는 동안 축축해졌을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핸드폰에 아이의 일과를 입력하는 앱을 열어 일어난 시간과 기저귀를 교체한 시간을 입력한다. 지난 수유 시간으로부터 세 시간쯤 지나서 곧 분유 먹일 시간임을 확인한다. 눈곱이 낀 채 몽롱한 정신으로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온다. 어느새 밥을 먹겠다는 작은 의지는 엄마라는 등 뒤에 숨는다. 아이가 잠에서 깰 수 있게 같이 놀아주기 시작하고 십여분 쯤 지나 아이가 활기를 띠고 분유를 잘 먹을 것 같은 상태가 되면 분유를 타고 수유를 한다. 아이도 작은 사람인지라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때를 틈타 장난감들을 쥐어주고 옆에 잠깐 앉아있다가 슬쩍 주방으로 간다. 설거지 할 젖병과 공갈 젖꼭지가 보이지만 잠시 그냥 두기로 한다. 잠이 덜 깨서 밥맛은 없지만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엄마가 갖다 준 반찬을 꺼내고 누룽지를 끓인다. 아침도 거르고 먹는 밥이라 빈 속에 라면을 넣고 싶진 않고, 국은 끓일 시간이 없고, 간편 조리 식도 당기지 않고, 밀가루도 먹고 싶지 않은 데 국물을 삼키고 싶을 때 누룽지를 끓인다. 그 와중에 아이가 작은 몸에 있는 작은 장기에서 대변을 내보내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변을 치울 준비를 해야 한다. 이때 냄비의 불을 줄이거나 꺼놓지 않으면 넘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작년에 회사를 다닐 때는 아침은 주로 빵을 사 먹거나 과일을 싸와서 챙겨 먹었다. 몸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입에 무언가라도 넣어야 일할 기분이 나는 터라 거의 매일 파티션이 쳐진 내 자리에 앉아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출산하기 6주 전부터는 출산 휴가를 받아 집에서 혼자 아점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출산 후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은 세끼 밥에 간식까지 챙겨 먹느라 고단할 지경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샌가부터 아침에 일어나 마신 물 몇 모금을 제외하고는 한두 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는 6개월이 지나 서서히 새벽에도 깨지 않고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7개월 무렵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어린이집을 다닌 지 8주가 지났고 우리 둘에게 변화가 생겼다.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침식사를 먹는 날이 늘었고 아이는 비슷한 패턴으로 자고 먹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내고 더 잘 수도 있지만 요즘은 배고픔이 더 앞서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아이를 맡기고 얻은 소중한 3시간을 잠을 자는데 쓰기가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 편히 잘 수 없기도 했다. 빠르면 10시 늦으면 11시 안에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안일을 하거나 장을 보러 간다. 간편 조리 식을 먹거나 사 먹는 날도 있지만 오직 나를 위해 무언가 요리하는 시간이 생겼다. 대게 지난밤 자기 전에 아침으로 뭘 먹을까 생각해 놓거나 그날 아침에 입맛이 당기는 음식을 해 먹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장고에 무엇이 있느냐에 달렸지만 말이다. 밥을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동네슈퍼에서 장을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과가 되었다.


시판되는 스파게티 소스에 냉동실에 있는 오징어를 넣고 만든 리소토, 냉동새우를 넣고 만든 스파게티, 아보카도와 바나나,요구르트를 갈아 만든 스무디, 아보카도 스프레드 위에 오믈렛을 올려 먹는 오픈 샌드위치, 길거리에 서 파는 계란 양배추 토스트, 설탕과 우유를 넣은 삶은 감자, 토마토와 계란 볶음, 바지락을 넣은 봉골레 파스타,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맛은 있었던 애호박전 등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몇 번은 밖에 나가 혼밥을 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동네 시장에서 돈가스 정식을 배부르게 먹고 다른 날은 지하철 역사 분식집에 앉아 김밥과 잔치국수를 먹었다. 또 몇 번은 찐만두 가게에서 김치만두를 사 와 집에서 먹고 패스트푸드점에서 떡이 들어있는 닭강정을 사 와 집에서 먹고 죽집에서 달달한 호박죽과 매콤한 김치낙지죽을 포장해와서 먹기도 했다. 그 밖에도 많은 간편 조리 식품이 나의 아침밥상을 함께 하였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어도 나를 위해 아침에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생각보다 큰 만족감을 준다. 꼭 직접 만들어 먹지 않아도 간편식을 활용하거나 사 먹을 수 있다. 아침밥 대신 잠만 자던 나는 이제 없고 더는 혼자 속으로 '아이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노는 동안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어리고 아직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 내가 챙겨줘야 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어느 날, 내가 잘 챙기지 못했던 내가 아주 낯선 얼굴로 홀로 서있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 낯선 이를 발견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것(이를테면 아침밥 챙겨 먹기 같은)들을 나 자신을 위해 하고자 한다. 아 내일 아침은 야채 볶음밥을 해 먹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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