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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Jan 16. 2021

나 더러워서 피겨 안 해!

코치 엄마를 둔 피겨스케이팅 선수 딸의 단호한 거절

엄마 나 피겨 더러워서 안 해!

3학년 딸은 어려서부터 나에게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고 있다.

싱글 점프를 모두 완성하고 한 단계 넘어가야 하는 더블 점프가 들어가면서 예상했던 고비가 왔다.     

간혹 코치로서가 아니라 엄마로서 잔소리가 과할 때, 딱 어느 선을 넘으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안다. 내가 감정이 섞였다는 걸......     

처음엔 나도 내 딸들이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길 바라며  끌어들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행복하기보다는 잘 타는, (사실은 점프를 잘 뛰는) 스케이터가 되길 바라면서 딸과 나는 자꾸 싸운다. 

 "피겨선수가 메달을 못 따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 재밌게 타는 게 다는 아니지"  

"내가 살이 찌면 점프가 안 될까 봐 걱정, 맘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살이 빠져도 내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엄마는 왜 이렇게 걱정을 해?" 등  모녀의 말싸움 끝에 나온 말이

 “나 피겨 더러워서 안 해!” 

"피겨 잘하려면 내 생각은 없이 엄마 말만 들어야 돼? “  

"응 잘하고 싶으면..... "

근데 딸은 놀라운 말을 했다. 

“못 타도 좋아! 계속할 수만 있으면 돼” 난 다른 친구들처럼 여행도 가고 미술학원도 가고 피겨 친구들 말고 

학교 친구들하고 수행평가 과제도 하면서 운동하고 싶어.      

본인이 한 이 말을 이 작은 아이가 책임질 수 있을까?      

운동선수는 연속성과 꾸준한 루틴을 가지고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다. 어린 초등학교 피겨선수들이 학교도 출석체크만 하고 매일 6시간 이상 훈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투자하는데 아이의 기량이 나오지 않으면 부모는 조급해진다. 그다음부터는 소위 아이를 잡는다. 

"네가 하고 싶었던 거니 목표를 이루고 싶으면 버텨!

 아님 관둬!"(취미로 하기엔 돈이 많이 들거든) 

그런데 아이는 딱 재미있을 만큼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유아였을 때 주로 나갔던 생활체육대회 말고 전문선수들이 나가는 대회를 한번 나가보기로....

어려서부터 엄마가 코치로 편하게 운동을 해온 이 아이는 과도한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인해 언제나 날 당황하게 했다.' 너 한번 당해봐라.... 재밌게 운동하고 싶다는 소리가 쏙 들어가게 해 줄게... ' 

   

시합을 나가기 전 두 달 전부터 훈련강도를 조절한다. 시합 때 제일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 일정을 짜고 지상, 안무 선생님과 프로그램 구성 조율을 하고 의상도 컨택한다. 

매일 시합을 위한 훈련으로 고수하고자 했던 학교 출석도 체험학습 보고서를 내고 며칠 조퇴했다. 매일 이렇게 하는 언니들을 익히 보아왔던 아이라 처음엔 학교 빠지는 게 즐겁기도 하고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지 신이나 보인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멀리사는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신단다. 가족여행이니 또래 사촌 아이들도 모두 간다는 이야기를 딸이 들었다. 그것도 파타야로 일주일을.....     

코치로서 이야기를 했다. "안돼! 그럼 넌 꼴등이야"

엄마로서 이야기를 했다." 네가 결정해 온전히,... 결과는 너의 몫이야"    

아이는 아이다운 결정을 했다.      

일주일 파타야 가서 잔뜩 까매진 얼굴로 나의 사랑스러운 막내는 처음으로 나간 큰 시합에서 뛰는 점프마다 족족 다섯 번을 넘어지며 너무 당황해서 안무도 까먹으며 장렬하게 같은 그룹 내에서 꼴등을 했다.(물론 같은 연령이 아닌 동일 급수 아이들끼리 겨루는 것이므로 어린 편에 속한 것이 우리의 위안-역시 급수는 빨리 따지 않고 묵혀야 제맛인 것을) 아이는 눈물을 터뜨리며 시합을 마쳤고, 

코치인 엄마도 이 정도일 줄은.... 당황을 하고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자책했다. 아이에게 너무 큰 실망을 준 것 같아 괜히 미안해져서 끝까지 잘 마쳐줘서 자랑스러웠다고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말을 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나도 눈물을 삼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스케이트를 그만둔다는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아이는 다음 시합을 나가겠단다.

그리고 남편과 맥주를 마시며 하소연하고 있는 나에게 한마디 한다.

“엄마는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해?”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과정이  나한테 중요하고 계속 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나에게 늘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던 거지?.... 일등만 하려면 계속 똑같은걸 매일 해야 하잖아. 나는 그럼 언제 쉬어? 나도 여행 가고 싶은데....      

 

피겨를 할 때 성취감과 자존감, 유일하게 행복을 맛본 아이들은 훈련 도중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만두지 못하고 코치와 부모한테 복종하는 법을 배운다.

피겨 코치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워낙 촘촘하기도 하고 링크를 옮기기도 쉽지 않다. 그런 환경 안에서  잘하려면, 또는 피겨를 지속하려면 시합에서 실적을 잘 내야 하니까 일단은 코치의 말에 기는 시늉까지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하다가 어찌어찌 부모들의 최종 목표? 인 대학을 들어가도 우리나라에서는 행복한 스케이터로 유지를 하며 성장하는 선수를 찾기가 어렵다. 

메달 위주,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체육계에서 나의 즐거움만 찾으며 운동하기란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언제나 눈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기 위해 내가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같다.     

본인의 운동 스케줄은 본인의 동의하에 직접 정할 것.

후회는 언제나 남을 수 있으니 현실과 과정을 최대한 즐길 것.

메달, 혹은 대학이 목표가 아닌 본인만의 스케이팅을 할 것.

링크장에서는 선생님, 집에서는 엄마 철저히 구분할 것.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함께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까? 

우주 최강 난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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