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는 이유
생각은 수시로 바뀌는데 글은 영원히 남을 수 있다는 공포
기어코 태극마크를 단 그 선수가 13살 때쯤? 피겨스케이팅을 왜 계속 지속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너무 고되고, 반복적이고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는 그 스케이팅을 하는 게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돌아온 그 대답 역시, 피겨 말고는 다른 게 할 게 없어서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십여 년 전 어쭙잖은 확신이 조금 생겼다.
몸도, 생각도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매일 같은 힘든 훈련을 시키는 것은 학대라고,
화려하게 보이는 길을 안내하고, 그 길을 도와주는 어른이 끌어주고, 밀어주며 선수 하나를 키워내는 것이, 온전히 미성숙한 아이가 늘 하고 싶어서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기에 많은 어른들이 행복하지 않은 그 길을 '꿈'이라는 명목으로 행복하게 보이게 '반칙'을하고, 교묘하고 지속적으로 꿈을 세뇌시키는 소위 요즘 아무 데나 갖다 붙인다는 그 '가스 라이팅'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도 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도와주려는 노력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고, 본인들의 재능을 발산하는 길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란, 다른 친구들과 평범하게 학교에 앉아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는 게 전부일걸 알기에, 어른의 직업처럼 매일 같은 훈련을 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겠지...(대견한 아이들)
그렇게 생각하며 선수를 키우는 코치가 된다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회의적이었다.
주위에 훌륭한 인성을 가진 코치나 존경할만한 멘토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기장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고, 좋은 정보든 쓸데없는 이야기든 기록을 남겨두기로 했다.
그 결과 브런치 작가의 서랍 속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글은 채워져 있지만, 어딘가에 남기고 공개하는 것은 내 성향에 맞지 않아 일기처럼 읽어보며 생각도 수정되는 나를 돌아보는 용도가 되어버렸다.
지금 내 아이가 피겨선수를 하고 있다.
죽을 듯이 달리기만 하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 싫고, 안타까워서 일부러 어릴 때 많이 시키고 달리지 않았는데.... 본인은 계속하겠다고 한다.
훈련을 많이 해야 결과가 나오는 게 어쩔 수 없으니 더블 점프가 안정화될 때까지 훈련시간을 매일 4시간 이상씩은 해야 한다는 걸 나도 딸도 알고 있고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못하는 날도, 어떤 날은 지상훈련까지 6-8시 시간까지 하는 날도 있다.
아이는 도대체 왜 이 고된 스포츠를 하려는 걸까...
예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도 지금 부모로서 애를 방치하며 학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묘하게 내 입장이, 내 논조가, 내 글이 바뀌었다. 간사하구먼
엘리트 선수는 더한 등급이 있을 수밖에 없고,
탑 5를 안에 드는 선수들, 순위권 안에, 또는 언저리 그 밖에 많은 선수들이 더 많지만 , 같은 목표를 향해만 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시합에서는 전에 시합의 최종 점수를 갱신하는 게 목표이기도 하고, 프로그램에서 모든 점프와 스핀, 스텝을 클린하고 만족스러운 것.
그래서 수고한 본인 마음에 드는 것 또한 내 아이에게는 중요한 것임을.
지금껏 결과 중심인 엄마와 코치의 세대와는 또 다른 관점이고, 그게 당연한 것임을 조금씩 또 배워가고 스며들고 있다.
실력은 역시 시간과 비례하다는 걸 알기에 아이는 늘 행복하고, 늘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다.
대회에서 성적을 못 내도, 메달을 바라보는 선수가 아니라도 기어이 한다고 한다.
점프가 안 되는 날 아이는 큰 목소리로 질타를 받기도 하고, 집중을 못하면 혼나기도 한다.
문득 내가 진짜 아이에게 이 길을 가게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다가도, 아이가 원하니 그 수밖에 라며 조용히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넘어져서 멍들다 못해 툭 튀어나온 무릎이 가슴이 아프다.
그냥 갈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아이가 원하는 것이기에 감히 옳다 그르다 탓할 수 없다.
내 글이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며, 생각도 수시로 모호해지니 글을 쓰기 싫은 이유는, 코치로서, 피겨선수를 하고 있는 아이의 부모로서, 이 피겨가 매우 매력적인 동시에 감히 학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보내야 조금의 결과라도 나오는 이율배반적인 요소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완성이 필요한 많은 종목, 또는 예술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것 또한 그러하겠지....
지난 올림픽에 발리 예바 선수의 도핑으로 떠들썩했다.
몸무게가 덜 나가는 미성년 선수들을 초고속으로 갈아치우는 뚜트베리제 코치의 팀이다.
머리채를 잡고 스핀을 돌리고 날집으로 위협을 가하는 몇몇 러시아 코치의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한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코치들도 별다를 게 없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학부모들의 의식도 코치들의 각성도 기술과 환경,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시합장에서 보이는 사람들이야 뭐 늘 같지만 사회적 요구가 달라졌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늘 같은 것을 매일 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고,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고통스러운, 그런 길을 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왜 그 길을 가나요? 도대체 왜 하나요?
잠시 멍했지만 답은 있었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것은 본성이고, 누군가는 원하니까요. 누군가는 그 길을 가는 것이 간절한, 고통스럽지만 언제나 그 길을 원하는 사람은 있기에 발전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