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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Nov 05. 2023

<136호>[특집] 연세지 졸업생 인터뷰

편집실

신문지 배경 위에 '[특별기획]연세지 졸업생 인터뷰'라 적혀 있다.
학보사, 교지와 같은 대학 언론이 점점 예전만큼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연세지의 인지도 뿐만 아니라 책의 크기조차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는 어쩌면 넘쳐나는 저널리즘의 홍수 혹은 탈정치화된 상태로 기인한 것일 거다. 연세지 135호 <오늘의 대학언론>에서 언급했다시피 대학 언론의 위기는 90년도 부터 시작됬고, <글쓰기 싫다>에서 적은 것처럼 독자를 감각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 우리는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그 시기를 견뎌내온 선배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견뎌냈을까? 치열한 고민을 따라 써 내려간 글자들은 지금쯤 그들 마음속 어디에 남아있을까? 전 편에서는 동시대의 대학 언론사들(연세춘추(학보사), 고대문화(고려대 교지), 용봉 (전남대 교지) 만나봤다면, 이번호에서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연세 편집위원회에 몸을 담갔던 사람들을 만나보려 한다. 이 인터뷰는 ‘졸업하면 뭐 해 먹으면서 살지?’와 같은 고민을 해결해 줄 뻔한 진로 소개 카탈로그가 아니다. ‘우리는 졸업하면 어떤 고민을 따라 살아갈까?’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서면 인터뷰는 모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였으며, 불편하거나 대답하고 싶지 않은 문항에 대해서는 재량껏 건너 뛸 수 있게 했다. 동방예의지국 장유유서에 따라 입부년도 순으로 졸업생들의 인터뷰 글을 배치했다.

유경 (2016년, 107-110호)


1.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연세지 107-110호를 편집한 유경이라고 합니다. 2016년 봄부터 1년 조금 넘게 연세편집위원회에 몸담았어요. 이렇게 다시 글을 실을 수 있어 기쁩니다.


2. 그 당시 연세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과정이 있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글을 기획하고 다듬는 일을 좋아해서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인쇄를 마친 몇 천 권을 학교에 배부할 때가 가장 힘에 부쳤죠.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대학언론 취재 기획이에요. 사실 기획 자체는 새롭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활동하기 전에도 “대학언론이 위기다” “아무도 대학언론을 읽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지겨울 정도로 쏟아졌거든요.

근데 나름 취재하면서 뿌듯했던 건, 책상 앞에 앉아서 뇌피셜로 쓴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옆 학교인 이화여대, 서강대, 더 멀리는 외대, 고려대 편집위원들에게 취재를 요청하고 이야기를 나눈 덕에 살아있는 논의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논의가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었고요. 다만 짧은 대학생활 동안 완성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좀 아쉽죠.

대학을 다니면서 여러 활동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연세지는 특별했어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술 없이 진지하게 논의를 나눌 수 있는 창구가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또 개인적으로 잡지라는 매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기획부터 발행까지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잡지를 내보고 싶어요.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훈련과 지난한 편집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첫 커리어는 IT 기업의 콘텐츠 에디터로 시작했고요. 지금은 UX Writer로 일하고 있어요. 어쩌다보니 계속 글을 쓰고 있네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연세지에서 글감을 기획하고 취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모든 과정이 지금 업무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히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반영했던 시간 덕분에 내 글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고칠 수 있는 기회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연세지에서 활동하면서, 글쓰기를 꼭 생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어요. 글쓰기라는 게 사실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할 줄 아는 일이기 때문에 그닥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회의 부속품처럼 개성 없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나만의 관점과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시간이 갈수록 매력적인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언젠가 자랑스럽게 제 필명을 프로필에 걸 수 있도록 꾸준히 글을 쓸 거예요.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대학언론으로서의 부담보다는, 학부생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지면으로 도전해볼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집중해봤으면 좋겠어요. 비판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둥근 글보다는 뾰족한 글을 써주세요. 저에게 그랬듯, 편집위원분들께도 지금의 시간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Etro (2016년, 107~109호)


1. 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 연세지 107, 108, 109호에 참여했던 편집위원 Etro입니다.

2016년은 선배님들께 무한한 사랑만 받던 새내기였던 제가 2학년, 무려 “선배”가 되어 송도를 벗어나 신촌으로 왔던 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첫 글(<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선물해 주세요>)은 공동체 문화에 대한 고민 토로의 글이었네요. 이후 108호에서는 대학 언론, 학보사라는 정체성이 조금 더 마음 깊이 다가왔던 탓인지 현장 르포식의 취재(<기억 투쟁>)를 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109호는 감사하게도 저의 두 가지 글(<21살 1인 가구 비혼 여성의 집사 체험기>, <함께, 홀로 서는 것에 관하여>)을 편집실의 공통된 주제 ‘공생’으로 묶어 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 한 세대와 시대의 공통된 주제로 공감받을 수 있던 경험은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 소중한 추억 상자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 보곤 합니다.


2. 연세지가 없었다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지? (=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 공동체의 의미는?)

TMI이지만 저에게 <연세>, 학생회관 3층의 편집실은 도피처였습니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이 단과대, 학과 학생회로 뿔뿔이 흩어져서 ‘예전에 논술로 상도 받고 했는데’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처음 발을 들였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던데, 제게는 있더라고요.

편집실에서의 일 년은 1) 정말 멋진 사람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고, 2)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갖고 있던 ‘내 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다소 혁명적인) 열망을 가시화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특히 107호, 108호, 109호 동안 꾸준히 함께 한 편집위원들(유경, 여지, 헬(해일), 그리고 인표)은 제가 만난 누구보다도 깊은 사색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과 논점을 꾸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이들 앞에서 저는 늘 ‘아, 나는 겉멋만 든 아가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간식비로 사 먹는 커피 한 잔과 김밥 한 줄을 두고도 몇 날 며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지요. 실은 재작년 이사를 하다가 한 호를 발행한 뒤에 갖는 회고 모임 때의 회의록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같은 감상을 SNS에 올렸고, 그 계기로 저희는 지금까지 종종 만나 근황을 묻고 글쓰기 모임을 다시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는 합니다. 다들 사회에서 1인분+을 하느라 바빠 아직은 시작하지 못했지만 <연세>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인터뷰를 보고 있다면 우리 뭐든... 같이 써봅시다. 일단 뭐라도. ^_^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 훈련과 지난한 편집 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연세>는 기획부터 발행, 배포까지 온전히 편집위원들이 주관한다는 특징이 있는 언론이지요. 덕분에 한 편의 글이, 한 편의 책이 만들어지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끝없는 수정이, 집단 지성이 분명 더 나은 결과물을 낳는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습니다. 세세하게는 합평하는 자세나, 수용하는 자세를 연습할 수도 있었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세>가 대중 상업 예술인 드라마/영화 기획제작일을 하는 지금으로 이어지는 출발선 같기도 합니다.

7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다양화(혹은 파편화)된 시대에 상업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자 PD로서, 늘 대중의 관심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란 무엇일까, 등등이요.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에 도무지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저런 장단을 가진 사람이랑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은 무엇일지 영 모르겠는 날도 많은데요. 이번 인터뷰를 위해 보내주신 제 과거의 글을 보다 보니, 저는 생각보다 한결같이 ‘타인과 공생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인 것 같네요. 과거의 저는 너무 멋진 결심을 내렸던데... 오늘을 사는 저도 수년 뒤에 보면 뿌듯할 만한 방향으로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제가 활동할 당시에도 ‘대학 언론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학내외 타 언론사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109호 <연세지를 아시나요>), 웹진으로 전환해야 하나 고민도 하고, 계간지가 아닌 1년에 두 번, 1년에 한 번으로 발행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를 하기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번에 인터뷰 요청 메일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대학 언론은 언제까지 위기일 것인가? 위기가 아닌 적이 있나?’였습니다. (무려) 136호를 준비하시는 편집위원분들이 보시기에 다소 절망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늘 위기를 버텨내고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며 글을 써냈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ㅠㅠ)

물론 <연세>가 자치 언론으로서, 학내/외에 필요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발화하기 위해서 지속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시도(광고의 활용, 홍보, 후원, 플랫폼 다양화….)는 필요합니다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늘 재밌게, 건강하게 활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끼니를 잘 챙기시고 햇볕을 충분히 쬐시고,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가려져 있지만 드러날 필요가 있는 이야기들을 포착해 주시고 전달해 주십시오. 과거의 망령들이 남긴 발자취는 참고만 하시고 마음껏 도전하시고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연세지.. 재밌어요.. 편집실 좋음. 짱!


 472(2018년, 116~118호)

1. 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연세지 116~118호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472입니다. 나중에 안 ‘쪽팔리려면’ 최대한 무의미한 단어를 골라야겠다 싶어 학교를 오갈 때 타던 버스 번호를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주로 문화적 차원에서 내셔널리즘과 페미니즘을 고찰한 글을 썼는데요. 그중 소위 ‘국뽕’ 영화를 소재로 삼아 역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되물었던 <인스턴트 역사>, 당시 헌재 결정을 앞두고 첨예하게 논쟁 중이던 임신 중단권에 대해 여성주의적 재인식을 촉구한 <나는 임신한다, 고로 말한다>가 기억에 남습니다.


2. 그 당시 연세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과정이 있나요?

그 당시에도 가장 힘들었던 점은 ‘대학 언론의 위기’라는 주제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혐오정치가 전면화되며 그 여파가 학내에도 미쳤고 그 결과 총여학생회 폐지로까지 이어졌던 일련의 흐름 위, 연세지는 이제는 무관심을 넘어선 악의를 마주했습니다. 커뮤니티 상의 노골적인 욕설도 있었고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학내 언론의 무력감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학생이 주인인 언론으로서 그 주인의 다수가 혐오를 말할 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며 그 정당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글이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읽혀야 보배인데, 그 과정에서 더욱 가속화될 독자의 이탈과 무관심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방어할 것인가? 이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 편집위원끼리 다독여 가며 고민했던 일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훈련과 지난한 편집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지금 하는 공부나 일, 치열하게 하는 고민이 있다면 편하게 적어 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질문이 진로박람회 카탈로그 혹은 입시학원 소개서에 나올만한 대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는데요. 그래서 답변자의 자유에 맡기려고 합니다! 편하게 적어 주시고 적기 싫다면 넘겨주세요)

질문의 사족을 보고 조금 웃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해도 진로박람회 카탈로그는 되기 힘들 텐데? (물론 기획자로서 노파심에는 백 퍼센트 공감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연세지만큼 ‘학점 잘 따는 법’, ‘취업하는 법’, ‘부자 되는 법’, ‘체제 순응’, ‘탈정치’ 등과 먼 대외활동도 없지 않나요. 저만 해도, ‘취업에 하등 쓸모없는 글 나부랭이’ 쓴다고 엄마한테 애정 어린 핀잔을 들었던 게 엊그제 같네요.

하지만 그렇기에 연세지는 제 대학 생활 중 가장 행복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현실의 압박과 혐오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곳도 또 없었으니까요. 연세지에 모인 분들은 삶을 이루는 요소 중 물리적인 것에 밀려 간과되곤 하는 희미하고 말랑말랑한 부분, 즉 다양성, 소수자성, 휴머니즘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좇는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그런 이들과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를 내보낼 수 있는 큰 지면이 허락되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연세지에서의 경험이 이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묻는다면, 별 도움이 안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 동료들은 현재 대학원에서 연구 중이거나,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 종사하거나, 혹은 법조계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멋지게 걸어가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길에 연세지의 영향력이 ‘경영학회-대기업’과 같은 수준에서 유의미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넓은 차원에서는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제 경우 연세지의 경험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의식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언제 떠올려도 마음 한편이 달콤해지는 자존감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몇몇 편집위원과 글 모임을 이어가고 있고 다른 편집위원분들과 종종 만나는데요, 언제 어디서 만나든 그곳을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소중한 동료들을 얻었다는 것 역시 참 감사한 일입니다.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대학도 바깥 사회의 축소판이기에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다루고 극복할지가 그때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걱정거리입니다. 이는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대~단한 중앙 교지로서의 아우라가 성립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그 현실 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단발성의 자극적인 가십으로 치닫는 SNS의 시대에 무엇을 지켜낼지를 고심해야 할 텐데요. 같은 동료 시민으로서 제 고민의 결론을 나누자면 결국 권력의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어떻게든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에서 연세지의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갈등을 조율하고 봉합할 의무가 있는 행정이나 정치와는 다르게 언론은 자신이 선 곳에서 가장 뜨거운 방식으로 이를 읽어내고 부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을 잃지 않되, 효과적인 설득 방식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당시 편집장으로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편집위원 각자가 쓰고 싶은 주제를 억지로 묶어놓는 수준에 그쳤기에 기획에 있어 다소 일관성이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거시적인 고민을 나누고 이를 유기적으로 엮는 적극적인 기획을 해보고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대학 언론으로서의 연세지에 대한 공시적, 통시적인 관점을 담아내는 이번 기획이 참 부럽고 멋있습니다. 가을호 마무리 잘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성해(2018년도,118~119호)


1. 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18년도 가을~19년도 겨울까지 두 호에 참여한 성해라고 합니다. 대표 글이랄 게 따로 없지만.. 118호에서 스쿨미투, 아이돌 산업 관련 글을 썼고 119호에서는 노동과 알고리즘에 대해 썼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일 기억에 남는 글은 알고리즘에 대한 글인데, 요약하자면 알고리즘으로 인해 예측 가능해지는 취향의 발견이 운명론자로서 아쉬워지는 것에 대해 썼던 것 같습니다.


2. 그 당시 연세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과정.(개인적인 경험도 괜찮습니다)

대학언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제가 활동할 때나 그 이전부터도 항상 연세지는 위기라고 말이 나왔던 것 같아요. 주변에 연세지를 챙겨 읽는 학생들도 많지 않았고 연세지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연세지는 페미니즘, 총여학생회 관련 글이 실린 호에 백래시가 심했던 기억이 나고 이로 인해 연세지를 고깝게 보는 학내 여론도 있었던 것 같네요. 연세지 내부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이나 긴 글, 진지한 글을 많이 안읽는 분위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서 연세지의 존폐 위기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뭐랄까 결국 쓰는 사람들이 읽고 또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고 그런 작은 덩어리 안에서만 움직임이 있다는 생각이 저한테는 기본적으로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세지 편집위원으로서 좋았던 점은 비슷한 결의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지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었나 싶고, 힘들었던 점이라고 하면 동시에 결국 이런 교지 활동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의미가 있는 건지, 내가 이런 교지 활동을 할 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는 건지 자조적인 생각이나 저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편집위원들이 2편씩 글을 쓰면 보통 1편은 좀더 사회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1편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좀더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특정한 글을 꼽을 수는 없지만 그런 글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앞서서 자기소개할 때 언급했던 저의 글도 그렇고 다른 편집위원들의 글들 중에서도 그런 글을 읽는 것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훈련과 지난한 편집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처음에 연세지에 들어가서 피드백 받았을 때 문장 자체에 대한 피드백도 많이 받았는데, 이를 계기로 글쓰기 책을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훈련이라고 까지는 생각 못했지만 글의 주제를 잡는 과정에서부터 세세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지금까지도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글 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글 쓰기는 모든 일의 기본이라고,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연세지를 통해 글 쓰는 과정에 익숙해지고 글쓰기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편집회의 시간은 지나고 보니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졸업하기 직전에 하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대학 생활에서 선택한 몇 가지 중에서 지금 와서 돌아봤을 때 인생을 좀 바꾼 선택들 중 하나가 연세지인 것 같습니다. 그냥 마냥 글 읽는 것 좋아하는 그런 학생이었고 관심 분야 강의 들으면서 과제로나 글을 좀 썼었는데, 연세지하면서 자발적으로 주제를 잡고 글 쓰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보면서 현실과 맞부딪힌 느낌이었습니다. 글 쓰면서 제가 가진 안좋은 습관 같은 것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고통스럽긴 했지만 동시에 글 쓰는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4-1. 대학언론인으로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임하면 좋을 것 같은지.

저는 부끄럽지만 연세지를 할 때 스스로 대학언론인이라는 자각을 크게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연세지가 중앙 교지였는데도 왜 그랬는지…, 아마도 대학 생활 하면서 정치적인, 사회적인 이슈에 겉핥기 식으로만 관심이 있고 실질적인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내지는 않는 소극적인 학생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세지 활동하면서 오히려 언론인이 가져야 하는 태도나 책임감을 그제서야 체감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기 보다는, 연세지를 하고 싶어한다면 글 쓰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거나 글로 내 의견을 표현하고 그걸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동기이든 간에 대학언론으로서, 중앙교지로서, 연세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별로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지나고 보니 많이 들어서,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런 것도 놓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NOPE (2019년, 119~122호)


1. 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 1년 동안 119~122호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nope입니다. 학부에는 2015년에 입학했고, 지금은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입니다. 활동 당시 여러 글을 썼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대학교 수강 신청 문제점’입니다. 타고난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에 더해 티켓팅으로 다져진 실력으로 ‘클릭 질’ 수강 신청에서는 ‘올클’을 달성한 제가 마일리지 수강 신청에서는 자꾸 망하는 이유를 마일리지 수강 신청의 우선순위 제도를 중심으로 파고들며 이를 수강 신청 제도 변천사 안에 위치시키는 글입니다. 편집위원 활동이 끝난 뒤에는 전 편집위원으로서 글을 두 편 기고했는데, 그중 131호에 기고한 ‘근육의 문제’도 기억에 남습니다.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현장에 직접 다녀온 뒤 그곳에서 마주한 폭력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며 주로 프란츠 파농과 도미야마 이치로에게 기대어 폭력 투쟁이란 포스트콜로니얼 속 피식민자의 언어일 수 있음을 주장하는 글입니다.


2. 그 당시 연세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과정이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감은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가장 좋았고, 또 가장 힘들었습니다.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피드백은 대체로 큰 문제 없이 수용되고 반영된 것 같은데, 표현의 대중성이나 난이도와 같은 문제가 더 어려웠습니다. 제 글에서도 ‘그 표현을 독자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저는 그것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서로 의견이 끝까지 좁혀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피드백을 꼼꼼히 주고받았기에 타인의 글을 더 정확히 읽고 평가하는 능력과 함께 타인의 평가를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글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는 힘이 생기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2-1. 그 당시 내부에서 대학 언론의 위기는 어땠는지, 그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었는지?

대학 언론의 위기는 만성화되어 있는 것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내부 논의도 지금과 특별히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읽는 사람이 없거나 제한되어 있고, 글의 난이도나 주제, 다루는 범위를 바꾸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별달리 도전해 본 것은 없었고요.


2-2. 활동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무엇인지?

121호의 ‘우리 안의 합법만능주의’와 122호의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혁신’이 기억에 남습니다. 둘 다 처음 기획부터 좋았고, 풍부한 사례 혹은 취재, 자료 수집을 통해 전개하는 방식도 좋았습니다. 이 글들의 문제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효할 것이고요. 주제, 소재, 동시대성, 풀어내는 방식 모두의 측면에서 이런 글들이 교지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3. 연세지가 없었다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지? (=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 공동체의 의미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세지가 없었다고 해도 제 학창 시절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래도 혼자 글을 썼고, 다른 공동체에서도 글을 쓰는 자리를 만들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글쓰기를 고민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고, 학창 시절의 변화보다는 그 이후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글을 쓰며 지내고 있고, 무엇보다도 ‘누가 어떻게 읽을지’를 고민하며 글을 씁니다. 연세지 이전에 글쓰기는 저자도 독자도 저 자신이기에 자족적인 것이었지만, 연세지 이후에 글쓰기는 대화를 위한 글쓰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공동체의 의미란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데 있는 듯합니다.


2-4. 지금 연세지를 쓴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지?

학내 기획을 더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요즘 대학 안에서 무슨 사건들이 있는지 저도 잘 모르지만, 연세대 안의 노학연대 역사를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역사가 있고, 그것은 어떻게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누가 그것의 불씨를 계속해서 살리려고 하는 지와 같은 것들이요.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훈련과 지난한 편집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앞서 다 언급한 듯하여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우선 편집위원분들께는 학내 기획에 더 힘을 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당시에 학내 기획은 다소 폭탄 돌리기처럼 여겨진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무엇보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학내 기획이야말로 중앙 교지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이제 와서야….). 단과대 교지가 할 수 없는 것, 기껏해야 한두 쪽인 춘추 기사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교지를 구성했으면 좋겠습니다. 담론적인 것은 언제나 물질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산한 담론이 단지 종이로 인쇄되거나 온라인 플랫폼에 데이터로 기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교지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곳에 물질적으로 개입한다는 의미임을 대학 언론인으로서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편집위원분들과 예비 편집위원분들 모두에게는, 본인에게 좋은 것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란 단지 ‘쓰고 싶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무지 글로 꺼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여러 글이 후회로 남습니다. 그러나 종이로 인쇄된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인쇄된 오탈자보다 두려운 건 인쇄된 얄팍함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멋진 글, 똑똑한 글, 잘 쓴 글보다, 좀 못 썼더라도 써야만 했던 글이라고 돌아볼 수 있는 글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차지 (2020년, 123~126호)


1. 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3월에 발간된 123호부터 2020년 12월에 발간된 126호까지 활동한 언더우드 학부 생명과학공학과 차지입니다. 125호와 126호는 편집장으로 참여했습니다. 1년간 활동하며 낸 6개의 글 중 124호의 「합리적 보수 비판과 125호의 「女女」가 가장 많은 반응을 얻어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합리적 보수 비판은 한국의 “젊은 보수”의 특징적인 성향을 해설한 글입니다. 더 직관적으로 와닿게 표현하자면 “교내 에브리타임의 주류 이용자들은 왜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주장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제가 글을 쓰던 2020년의 에브리타임과 지금의 에브리타임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019년에 제작 발표된 「인어공주」영화부터 출산율과 안티-페미니즘, 엘리트주의에 대한 입장까지 지금의 에브리타임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2020년의 에브리타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보다 이준석은 더, 출산율은 덜 논의되었다는 점 정도 아닐지 싶습니다. 이준석과 유승민과 그들의 입장에 깊이 공감하며 합리적 보수라 자칭하는 집단만이 보이는 한국의 전통적 보수는 물론 트럼피즘과 인셀 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극우와도 분명히 구별되는 특이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고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좌파와 우파의 본질에 대한 비전문적인 고찰을 담았습니다.

「女女는 더욱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제가 자라오며 또래 여성들과 교류하며 받은 인상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했습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학창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을 비선형적으로 제시하며 주관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식으로 진행된 글입니다. 또 당시 제가 고대 그리스에 빠져 있어서 사포의 시와 그리스 신화도 인용했습니다. 남성 애인의 존재가 동성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자들이 누구와 관계 맺고 싶어 하고 왜 세 명이 모이면 더 친해지는 둘이 나오는지 등에 관해 썼습니다. 동성 집단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안정감과 롤모델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2. 그 당시 연세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과정이 있나요?

2-1. 그 당시 내부에서 대학 언론의 위기는 어땠는지, 그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었는지?

당시 편집위원들은 대학 언론의 침체기는 저희 모두가 연세지에 들어오기 한참 전에 시작되었으며 민주화 이전의 위상을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되려 당시 최대의 화두는 코로나로 유동 인구가 감소한 탓에 실물 교지의 수요가 크게 준 일이었습니다. 이해일 님이 제안한 배달 서비스도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연세지에 실리는 광고가 많이 줄어 출간 자금을 확보하는 일도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124호부터 126호까지가 모두 2도 인쇄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즘 다시 4도 인쇄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2-2. 활동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무엇인지?

「女女입니다. 다시 읽어 보니 지나치게 관조적인 느낌이 드는데 이는 제가 실제로 관계를 맺기보다 지나온 관계와 주변인을 되돌아보고 평가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비사회적인 사람인 탓입니다. 흔히 말하는 아싸로 평생을 살아온 제가 이런 주제를 택해도 되나 끊임없이 의심하며 글을 썼습니다. 따라서 다른 글을 쓸 때보다도 연세지 내 동성 편집위원들의 평가를 주의 깊게 들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제 글에 공감이 된다는 평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2-3. 연세지가 없었다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지? (=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 공동체의 의미는?)

더 산만하고 지루한 학창 시절이 되었을 듯합니다. 저는 졸업하기 두 학기 전에야 복수전공을 정하기 전까지 많은 단과대의 전공 수업을 ‘찍먹’하며 방황했는데 분기마다 글쓰기에 정신력을 소모하다 보니 제가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는 분야에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세지는 그 특성상 종류의 사람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인을 지망하거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연세지의 논조에 대체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주로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확실히 학회나 취미 동아리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러나 매번 주제를 정하고 첨삭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다른 경로로 만났다면 결코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서로 간의 차이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알게 됩니다. 따라서 저에게 연세지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조금의 애정을 가르쳐준 곳입니다.


2-4. 지금 연세지를 쓴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지?

코미디에 관해 쓰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 일본, 영미권 코미디, 그중에서도 예능이 아닌 대본이 짜여 있는 콩트를 즐겨 보는 데 언어적 차이 외에도 문화권마다 가장 재미를 느끼는 요소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에 더해 유머와 조롱이 공유할 수밖에 없는 접점에 관해서도 쓰고 싶습니다.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훈련과 지난한 편집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저는 머릿속으로 스스로 의견을 반박하고 재반박하면서 글을 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스스로가 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공개적으로 첨삭을 받으며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좋게 말하면 다른 사람과 매우 다르고 나쁘게 말하면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자기소개서 등을 쓸 때 항상 이 글을 편집 회의에 공개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상상합니다.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여러 행정적 문제와 복수 전공, 그리고 개인적 게으름으로 저는 지난 8월에야 졸업했고 내년 3월에 컴퓨터과학 대학원을 진학할 예정입니다. 고로 현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노는 틈틈이 코딩하는 중입니다. 프로그래밍은 많은 면에서 글쓰기와 비슷합니다. 프로그래밍에서 논리적 구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짠 코드를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변수명을 알아보기 쉽게 짓고 단락과 클래스를 나누는 일입니다. 연세지에서의 경험 덕에 삶 전반에서 명료성이 가지는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디 (2022년, 131호)


1. 안녕하세요. 연세지 활동 연도와 대표 글 1~2개 간단 요약 부탁드립니다 

2022년 상반기에 131호 제작에 참여했던 오디입니다. <답답하고 불친절한 어느 상담원 이야기>와 <다시 여기 비대위> 두 개의 글을 썼어요.

<답답하고 불친절한 어느 상담원 이야기>는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을 주제로 한 글입니다. 민원 업무를 담당하며 ‘어린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로서의 삶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수화기 너머 콜센터 상담원의 목소리를 나의 목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다시 여기 비대위>는 당시 있었던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된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계속되는 총학생회 선거 무산의 상황 속에서 ‘대학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사그라드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고 시도했습니다.


2. 그 당시 연세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혹은 힘들었던 과정이 있나요?

2-1. 그 당시 내부에서 대학 언론의 위기는 어땠는지, 그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었는지?

활동했던 시기가 불과 1년 전이라 조금 민망하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대학 언론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새로운 편집위원을 모집했었는데 지원자가 두 명이었어요. 우리 홍보가 부족해서일까, 싶으면서도 대학 언론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드는 것의 영향도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아쉽고 왠지 서운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2. 활동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무엇인지?

데어가 쓴 <나는 노키즈존에 들어가지 않는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도 평소에 노키즈존이라는 말을 들으면 언짢았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를 누군가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어요. 그러던 중에 연세지 활동을 하는 몇 달간 데어가 쓴 글을 읽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노키즈존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노키즈존에 들어가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노키즈존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분들도 한 번쯤 그 생각에 의문을 던져볼 수 있게 노키즈존을 둘러싼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살펴나가고 있어요. 독자분들께 꼭 한 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2-3. 연세지가 없었다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지? (=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 공동체의 의미는?)

요즘은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또 소비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질문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생각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상황에서 연세지 덕분에 저 스스로의 생각을 다지고 유연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어요. 연세지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몇 달간 깊이 고민하면서 글을 완성해 가잖아요, 이 과정을 통해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한편으로 비슷한 고민, 비슷한 지향을 두고 있는 이들과 마주하며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교생활이 따뜻했고, 편안했어요. 늦은 밤까지 편집실에서 함께하던 때의 은은한 공기가 그립네요.


2-4. 지금 연세지를 쓴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지?

‘노동’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요. 생각해 본 기획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교사들의 노동환경’을 다룬 글입니다. 서이초 사건을 통해 교사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교사들의 업무 환경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열정페이’를 주제로 하는 글입니다. 다니던 독서실에서 얼마 전에 총무 자리를 제안해 주셨는데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데스크 업무를 보는 대신 독서실 자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시급은 주기 어렵다고 하시면서요. 근로 시간에 대해서는 당연히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독서실 비용이 부담되는 제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으로 느껴졌기에 바로 거절을 못 하고 머뭇거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열정페이가 생기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열정페이가 생기는 원인과 문제점을 풀어낸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3. 연세지에서의 글쓰기훈련과 지난한 편집회의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첫 번째로, 연세지 덕분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 수험생활하고 있는데 연세지에서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잖아요. 다른 편집위원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요. 이렇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나를 마주하는 과정을 경험해 본 덕분에 수험생활 중에도 덜 흔들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래도 휴게소 바람 인형이지만...ㅎㅎ

두 번째로, 연세지 덕분에 계속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어요. 연세지에 있으면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로 계속 글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수강 신청을 할 때도 객관식이나 단답형 시험으로 평가받는 수업보다 보고서나 비평문을 작성하는 수업을 택했고요. 작년 하반기에 들었던 ‘사회 문제와 공정’ 수업도 여러 번의 글쓰기를 요구하는 수업이었는데요, 그 수업에서 썼던 글이 얼마 전에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문화인류학과 나임윤경 교수님과 함께한 <공정 감각>이라는 책이에요. 연세지 독자분들께서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어딘가 발표하는 글이 아니어도 혼자서도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에요. 생각을 정리하고 정돈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어요.


4. 연세지 편집위원들 혹은 예비 편집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편집위원분들께 - 연세지를 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연세지의 지향, 연세지의 가치를 공유하는 분들이 아직 학교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요. 이렇게 연세지 생활을 돌아볼 기회를 주신 점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대학 생활 중에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저 또한 학교 밖에 있더라도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한 번 더 고민하고, 조심스레 사고하는’ 연세지의 감성을 잃지 않겠습니다.


예비 편집위원분들께 – 대학생활 동안 더는 없을 기회입니다. 어서 지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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