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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Nov 05. 2023

<136호> A - 왜 귀를 비벼? -

수습편집위원 한풀

배경에는 귀와 물을표 기호 아이콘이 패턴으로 그려져 있다. 상단과 하단에 보락,먹색,흰색, 검은색 띠가 있다. 'A-왜 귀를 비벼?-'라고 적혀져 있다.


[사회의 모든 무성애자에게 (그리고 유성애자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무성애 또는 에이섹슈얼(Asexuality)은 남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현저하게 낮은 경우, 또는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아예 없는 것을 말한다.

출처: 페미위키


이 글은 무성애자 4명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모여 ‘무성애’에 대하여 실컷 떠드는 대화록이다. ‘모음’, ‘유부’, ‘망고’, ‘버섯’이 대화에 참여하였다.


어떻게 A로 정체화했나요?


유부: 나는 신내림을 받았어. 라벨링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나는 A다’라고 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 그 전부터 그냥 모든 드라마나 콘텐츠를 보더라도 이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데 대체 왜 연애를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이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매번 엄마한테 얘기했고 엄마는 나한테 ‘네가 덜 커서 그렇다’라고 이야기했는데, 덜 큰 것과는 별개로 너무너무 싫은 거야 이게. 그래서 나랑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라벨링을 알고는 ‘나는 그러면 A겠구나’라고 정체화했지.

모음: 나는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럼 남의 연애를 보는 게 싫어? 

유부: 괜찮아. 그리고 나는 2차 창작물에서 연애하는 거 너무 재밌어. 그런데 내가 보는 모든 콘텐츠마다 그게 주된 내용인 게 이상하게 느껴졌던 거지. 그리고 누가 나한테 ‘너 왜 연애 안 해?’라고 묻는 게 너무 싫었어.

망고: 내가 궁금한 건, 이제 A라는 라벨이 있는 어떤 리스트를 접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가 필요하잖아. 

버섯: 맞아.

망고: 그 경로가 있었어?

유부: 트위터였지. 내가 트위터를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했고, 딱 내가 고등학교 1, 2학년 때 페미니즘 리부트 시점이었는데. 그전부터 내가 트위터를 한 출발 시점이 오타쿠질이었거든. 오타쿠질에서는 퀴어와 관련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는데, 종종 이게 RT[1]가 돼서 탐라[2]에 들어왔어. 그래서 뭐가 뭔지 찾아보다가, 라벨링을 설명한 나무위키 문서에 들어갔고, 그러면 나는 A구나 했지.

망고: 맞아. 그때 나무위키에 잘 돼 있었어.


모음: 그걸 왜 물어봤냐면 나도 남의 연애를 보는 건 진짜 흥미진진하거든. 나는 보는 게 로맨스밖에 없어. 근데 그게 전혀 내 일이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아. 나는 그래서 연애도 안 해봤고 그냥 살아오고 있거든. 나는 이제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되게 어릴 때부터 연애를 막 했어. 나는 그걸 보면서 ‘잘 만나’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고, 우리 집이 되게 보수적이었어 부모님이 ‘학생이 무슨 연애를 해!’ 이런 분들이었어. 그래서 나는 진짜 내가 뭔가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냥 내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리고 여중과 여고를 나오면서 일단 여성한테 관심이 없다는 건 확실했어. 주변에 학교 내에 연애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렇진 않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대학교에 와서 이제 고민이 좀 되는 거야. 나는 어떤 성적 충동도 없고 자위 경험도 없고 너무 이렇게 스님처럼 사는데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학생회 하면서 이런 담론을 접하고 이런 라벨들이 있는지를 알게 된 케이스거든. 그걸 보고 그러면 나는 A겠구나. 그리고 젠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이 ‘20년 정도 살았는데, 지금까지 경험이 없으면 A일 것이다’라고 말했어.

망고: 무슨 수업이야?

모음: 성평등센터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어. 그래서 그때 기억나는 게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거 있잖아. 동성애라는 개념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성애가 생긴 거다. 그런 얘기를 하시다가, ‘근데 사실 여러분 이건 유성애예요’ 이렇게 하시는 거야. 그렇게 난 A이구나. 그러다가 내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무성애 글을 쓴 적이 있어. 그때 내가 찾아보다가 A, 섹슈얼, 바이, 로맨스 이런 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런데 이 중에 내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그리고 사실 이렇게 너무 핀셋으로 깊게 들어가는 그 구분이 나에게 그렇게 유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브로드하게 살아.


버섯: 나는 정체화한 지 얼마 안 됐어.

망고: 뉴비네~

버섯: 나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연애를 꽤 몇 번 했어. 그런데 그때 한 연애는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나에게 지금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또래 문화에 우위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좀 의도적으로 그때 연애를 하고 싶어 했었어. 그리고 퀴어나 퀴어 담론을 접한 건, 고등학교 때 나한테 커밍아웃을 한 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어. 나랑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다 이제 대학 오고 나서 내가 연애에 대해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대학 와서 친해졌던 친구들이 알고 보니 다 퀴어라는 거야. 세상에 퀴어가 정말 많다고 생각했어(ㅋㅋ). 그래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슬슬 이상한 거야. 나도 혹시? 퀴어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뭐였냐면, 유성애 중심이니까 사람들이 유성애자는 다 유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나는 무성애자니까 사람들이 다 무성애자인 줄 알고 있었어. 그게 나의 기본값이었던 거지. 어릴 때 드라마도 별로 안 봤거든. 가끔 본 드라마에서도, ‘저건 판타지다.’ 이렇게 생각했어. 그거 다 허구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다 무성애자일 줄 알았어. 작년 여름쯤에 정체화했는데, 그 라벨 중에 나는 무엇일지 고민했었는데, A 로맨스 A 섹슈얼이 맞는 것 같아.


망고: 우리가 어떤 여성이거나, 트랜스거나, 아니면 퀴어거나. 소수자성을 가진다는 게 정상성 사회에 반대되는 어떤 저항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 그래가지고 나는 내가 진짜 어릴 때부터 가진 이 이성의 사랑에 대한 깊은 분노가 나를 무성애자로 길러주었다고 생각해. 그런 분노가 나를 정체화해 준 것 같아. 나도 유부처럼 <시크릿가든>, <커피프린스> 이런 드라마들 보면서… 나는 성애에 대해 펼쳐져 있는 화면이 너무 화나는 거야. 어떤 식이었냐면, 현빈이랑 길라임이 나왔어. 이름은 헷갈리지만. 그 윗몸 일으키기 장면이 있었어. ‘길라임 씨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뭐 이런 장면이 있었어. 그리고 또 어떤 장면이 있었냐면, 자기 침대에 손목을 잡고 갑자기 끌어오는, 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끌어와서 침대에 눕히는 장면이 있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보면 막 멋있다고 하잖아.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면 너무 화나서 누구한테든 말하고 싶은데… 그리고 현실에서도 세상이 남자를 너무 좋아해. 그리고 나는 세상이 여성보다 남성을 더 사랑해 주는 게 성애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초등학생 때 수련회 가면, 밤에 여자애들 방에서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 말하기 꼭 하잖아. 그런데 나는 없는 거야. 나는 억지로 이 분위기의 일부분이 되어야만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다니지 않는 가상의 학원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남자애를 만들어 냈어.

버섯: 똑똑했다. 순발력이 장난 아닌데?

망고: 어떤 퀴어 사회성인 것 같아.

모음: 나도 여자만 있는 환경에서 자랐는데, 아니 어떻게 여중과 여고에서도 그렇게 막 남자 얘기가 끊이지 않는지 참 신기해.

망고: 그래서 또 수련회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어떤 한 친구한테 ‘야 나 사실 그거 진짜 있는 남자애 아니야’라고 말하면 사실 나는 공감해 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숨겨야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한 건 나도 일찍 트위터를 시작하기도 했고, 나무위키 문서 읽어봤던 것도 맞아.

버섯: 사실 나는 뉴비기 때문에 페미위키를 읽었었어(ㅋㅋ).


유부: 처음에 찾아볼 때, 핀셋 같은 구분이 그렇게 유의미할까 싶었어. 오히려 나는 싫은 것 같아.

버섯: 그런데 나는 뭐가 좋았냐면, 엄청 자세히 분류되어 있으니까 이 중에 뭐라도 해당하면 A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

유부: 나는 이제 어렸을 때 딱 무성애자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 내가 무성애자 중에서도 그레이 로맨틱인지… A 섹슈얼은 우선은 100% 맞는데, 그레이 로맨틱인지 아니면 에이 로맨틱인지 모르겠다 싶은 거야. 그러다가 대학 들어와서 당황스러운 고백들을 몇 번 받아오고 나니까, 모든 젠더에게서 받아보고 나니까 너무 고민되는 거야. 너무 싫은 거야. 나랑 이 사람의 관계가 로맨틱으로 바뀐다는 게. 이 사람이 어떤 성별이든 누구든 간에 아무튼 별로인 거야. 그래서 A가 맞겠구나 싶었어. 그런데 언제 누가 나는 어떤 A인지 물어봐도 되냐고 했을 때, ‘정확하지는 않은데 우선은 A 섹슈얼은 맞는 것 같고 로맨틱에서 A인지 그레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얘기를 했었어.



커밍아웃 한 적이 있나요?


버섯: 나는 그렇게 정체화하고 났을 때, 사실 나에게 커밍아웃이라는 건 되게 의미가 없었어. 이미 내 친구들이 다 퀴어였어서. 그래서 의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었는데, 몇 달 전에 엄마한테 한번 말해보고 싶은 거야. 어떤 본능이었던 것 같아. 언젠가 한번 말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 우연찮게 그때쯤에 본가에 내려갔는데, 엄마랑 자려고 같이 누워 있는데, 엄마가 자다가 깼나 그랬어. 내가 그때 엄청 힘든 상태에서 내려간 거였거든. 엄마가 그때 갑자기 ‘연애할 생각은 없냐?’ 뭐 이렇게 물어보신 거야. 그런데 이제 그 ‘연애’라는 단어에 화가 난 거지. 그래서 나는 없다고 했더니 엄마가 ‘왜?’ 물어보시는 거야.

유부: 하필 또 물어보셨네.

버섯: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얘기를 했어. 이런 거를 무성애라고 부른다고도 말했지.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고, 성적인 욕구도 없다고. 나는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하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엄마가 그것도 성소수자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이 말을 들으니까 어떠냐고 물어봤거든? 그런데 엄마가 뭐라고 했냐면 ‘네가 동성애자라는 것보단 낫다’라는 거야. 약간 어이가 없었는데, 잠결이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대화가 끝났어. 그러고 나서 두 달 후에 다시 집에 갔는데, 내가 그때 엄마한테 <너에게 가는 길>을 보여줬거든. 그런데 엄마가 이걸 왜 보여주냐고 하면서, 엄마가 나도 성소수자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렇게 정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나는 무성애 같은 거 안 믿는다’라고 얘기하는 거야. 내가 아직 사람을 많이 안 만나봐서 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그 뒤로 엄마랑 얘기한 적은 없어.

모음: 어머니 세상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해결될 수 있는 것 같아 보였나봐.

버섯: 맞아. 엄마가 생각하기에 그런 거지.


모음: 나는 근데 이런 명확한 커밍아웃 썰이 있는 게 너무 신기해. 왜냐면 나는 내가 A라는 생각을 가진 이후로부터 그냥 누가 나보고 ‘너의 정체성은 뭐냐?’ 이렇게 물었을 때 ‘난 A야’라고 말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그렇구나!' 하고 끝났어. 그리고 나는 내가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하면 엄마 아빠한테 다 말하거든. 왜냐하면 그들이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어차피 난 떠난 자식이니까, 받아들이는 건 그들의 몫이잖아. 그리고 내가 A로 정착하기 전에 엄마랑 아빠한테 퀴어 강의를 해준 적이 있었어.

버섯: 나도 이렇게 할 걸.

망고: 아냐, 너도 최선을 다한 거잖아.

버섯: 맞아. 그렇긴 해.

모음: 그래. 엄마가 내가 하는 얘기를 혼란스럽지 않게 받아들이기까지 3년이 걸렸어. 엄마가 물어봤었어. 너는 그 중에 뭐니? 그래서 나는 무성애인 것 같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렇구나!' 하고 끝났어. 내가 엄마 아빠한테 어떤 강의를 한 건 내 얘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 않게 여러 교육을 했었어.

유부: 사회화처럼.

모음: 그리고 우리 엄마는 결혼이나 연애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망고: 엄청 좋은 가족이다. 진짜 원활한 소통을 하고.

버섯: 분명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있었겠지.


유부: 나는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편이었어. 그 이유 중에 첫 번째는 주변에 너무 게이, 레즈비언, 바이만 있으니까 화나서.

모음: 와중에 헤테로[3]가 없는 게(ㅋㅋ).

유부: 그쪽은 논외죠.

망고: 논외야.

유부: 그리고 대학 문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LGBT[4]만 있는 거야. 심지어 그 Q[5]까지만.

버섯: 나도 그래서 처음에 Q 할까 했어. Q는 잘 쳐주니까.

유부: 심지어 A 엘라이인 줄 아는 사람도 많아.

망고: 그래서 그 A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엘라이 집단이랑 갈등이 있잖아.

유부: 어쨌든 그래서 대학 와서는 그냥 오픈 퀴어[6]로 다녔어. 세상에 무성애자도 있다!! 하려고.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는 나한테 고백하지 말라고. 특히나 중고등학교 때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했어. 일부러 그랬어.

모음: 컨셉을 잘 잡았네.

유부: 그랬던 것 같아.

버섯: 나도 그럴걸. 난 쓸데없이 연애나 하고 다녔는데.

모음: 왜 그랬냐.

버섯: 그러게. 피곤하게.

유부: 아무튼 여중을 나와서, 그래서 사랑해 사랑해 하고 다니는 게 크게 막 이상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남자애들한테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랑해'를 하다 보니까… 내가 사랑한다고 하는 건 고맙단 뜻이야라고 말하고 다녔고, 대학교 와서는 고백을 안 받기를 기대하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길 기대하면서 오픈 퀴어로 다녔어. 그래도 고백 공격이 들어왔지.

버섯: 세상에.

유부: 나 A인 거 알잖아 해도, 생각은 해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한번 사귀어 보고 얘기하면 안 되냐고.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듣다 보니까 무성애자는 진짜 아웃 오브 안중이구나 싶었지.

망고: 나는 연락을 끊은 친구 중에, 커밍아웃했었는데 만날 때마다 잘생긴 남자를 만나라고 얘기하는 친구가 있었어. 뭐… 그리고 엄마한테 내가 무성애자인 것 같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얘기했을 때, 엄마가 정말 열린 사람이라서 퀴어 담론을 많이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엄마가 ‘그래? 그건 너무 힘들지 않을까?’라고 하시더라. 너무 삶이 칙칙할 것 같다고. 그래서 그때 너무 크게 상처받았어. 그래서 엄마한테는 다시는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지. 그리고 언니한테 말했을 때는 언니가, ‘나는 네가 여자 좋아하는 줄 알았어!’라고 하는 거야.

버섯: 괜찮은데? 이 반응 재밌다.

망고: 응. 진짜 이게 제일 재밌었어. 그나마 재밌는 반응인 것 같아.



무성애자는 연애/사랑 못 하나요?


망고: 내가 이제 연애를 몇 번 해봤는데 변명할 게 있어요.

모음: 변명까지?

망고: 너무 하고 싶어. 왜냐면 한창 열심히 트위터 할 때 팔로우했던 최고로 유명한 무성애자 여성분이 갑자기 남친이랑 사귀셔서, 몰래 남치니랑 키스했다, 남치니랑 성애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했다 이런 거 매일 올리셨거든. 그래서 그때 스펙트럼을 안 믿게 되었는데. 그때 떡볶이 논란이 있었어. 무성애자인데 나는 연애결혼을 했다, 이런 글이었어. 나는 끊이지 않고 남자랑 연애했고, 여성이고, 결혼도 했고, 섹스도 자주 한다. 내가 결혼과 섹스를 한 이유는 그냥 제일 친한 친구와 영화관에 가고 떡볶이를 먹는 거랑 똑같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종종 떡볶이를 먹고 싶을 때도 있고, 떡볶이 먹고 싶을 때는 먹고 안 먹고 싶을 때는 안 먹고,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떡볶이를 같이 먹으러 가고 싶고. 이런 맥락이랑 성애는 같다. 그러니까 떡볶이 먹는 것과 성애는 등치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어. 나는 실제로 연애나 성행위를 정상성 수행 면에서도, 그리고 내가 진짜 A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해봤는데 이거는 진짜 못 할 짓이라는 걸 알았어. 진짜. 이게 어떤 거냐면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그런데 갑자기 이제 그러면 우리 너무 사랑하니까 귀를 맞대고 있자, 귀를 비벼보자 이런 거야.

버섯: 아바타에 나비족도 아니고.

망고: 그런데 그 떡볶이 논란 때, 대부분이 이 비유를 보고 너무 적절하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뭐 나는 로제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크림 떡볶이는 좋아하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유행했어.

유부: 이런 사람들한테 내가 고백 공격을 받는 거야.

망고: 나는 약간 부심이 있는데, 아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다 섹스 안 해봤을 거야. 나는 해봤고 못 할 짓이라는 걸 진짜 알거든. 귀를 맞대고 비비는 거라니까. 그래서 이 연애와 결혼이라는 정상성을, 진짜 A도 이 편의의 측면에서 엄청나게 수행하고 싶지만, 그냥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두 번 있었는데 실은 두 번 다 연애가 시작된 사실을 몰랐어.

버섯: 나 이 얘기 들은 적 있어.

망고: 몇 달 동안 몰랐어. 내가 정말 아끼는 친구가 사랑한다길래 나도 사랑한다고 했을 뿐이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사랑’이라는 거… 키워드 중에 하나잖아. 흔히 ‘사랑’이라고 할 때 이건 무조건 성애야.

버섯: 그러니까.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 안 쓰는 것 같아. 누가 나한테 얘기하는 것도 약간 못 본 척해. 엄마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해도 ‘나도’가 최선이야.

모음: 나는 별 생각 안 하고 있어. 누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면 나도 사랑해 이렇게 해주고 그래.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그 단어에 어떤 감정을 담아보거나 어떤 성적 의미를 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기호로 쓸 수 있어.

망고: 나는 그 시작된 줄 몰랐던 연애에서, 나는 인간적인 사랑, 성애는 아니지만 사랑이 맞았고 진짜 아껴주고 싶었고 그랬어. 그런데 그들과 헤어질 때는 결정적으로 내가 그들과 키스랑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였거든.

버섯: 진짜 중요하구나.

망고: 그런데 너무 이상했어. 너무 얄팍한 관계인 거야. 그런 어떤 접촉이 없으면 깨지는 관계. 내 기준으로는 정말 깊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내가 ‘미안하다’고 느끼는 게 너무 싫었어.

버섯: 나도 그랬던 것 같아.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대는 게 너무 싫었어. 지금도 싫어해. 예전에 연애했을 때도 말했어. 나랑 손을 잡고 싶으면 말해라. 말부터 하라고. 그런데 진짜 충격받았던 유성애자들의 사고 중에 하나가 ‘섹스를 안 할 거면 연애를 왜 해?’였어.

모음: 맞아. 나 이게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버섯: 나는 그래서 너무 궁금했거든. 내 주변 유성애자들은 그러면 진짜 섹스하려고 연애를 하나? 근데 또 모두 그렇진 않겠지. 그런데 왜?

모음: 우린 그걸 모르기 때문에 지금 모여 있는 거야.

버섯: 맞네.


*이어지는 대화는 <연세>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1] 트위터에서 리트윗(Retweet), RT는 다른 사람이 쓴 트윗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다시 한번 타임라인에 나타나게 하는 기능이다.

[2] 타임라인은 여러 사람의 게시물이 시간순으로 (혹은 해당 SNS 특유의 알고리즘을 통해) 정렬된 페이지를 뜻한다. 트위터에서는 탐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3] 이성애(異性愛)는 성별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끌림이나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성을 말한다. 영어로는 다름을 뜻하는 접두어 "hetero-"와 결합하여 Heterosexual(헤테로섹슈얼)이라고 한다.

[4]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이니셜을 따와서 만들어진 용어로, 성 소수자를 뜻한다.

[5] 퀘스쳐너리(Questionary)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로맨틱 지향, 성 정체성 등을 탐구중이거나 확립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6]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개방하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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