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편집위원 시후
평화롭게 교양 수업을 듣던 어느 날이었다. 이 수업에서 우리는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과 여러 철학자가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했는지, 그들이 생각한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인간 본성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아닌 대상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안된 인간 본성은 어떤 인간들을 포함하지 못하거나 인간이 아닌 대상도 가지고 있는 특성이었다.
강의 중-후반부에는 ‘미래의 인간’이 주제였다. 돼지를 이용해 사람의 장기를 만들어 아픈 사람에게 이식시키는 것, 어쩌면 미래의 인간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생명 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물리적-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만, 과학 기술의 불평등과 안전성 및 윤리 문제로 인해 많은 비판과 반대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고 나서 나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왜 사람들이 특정 행동과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지’와 같은 호기심 말이다.
이 세미나는 호기심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 만남에서 나는 ‘오랜만에 이과 계열에서 온 수습 편집위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호기심 중 생명과학과 연관이 있는 것이 있어 이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우선 LMO와 키메라가 무엇인지, 왜 여러 논란과 비판이 나오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먼저 LMO는 Living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약자로 우리가 흔히 아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생물체인 GMO에서 ‘살아있다’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Living을 붙인 것일 뿐이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횟집에 가서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콘치즈를 먹은 적이 있는가?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씨 없는 수박이나 바나나를 즐긴 적이 있는가? 혹은 ‘통일벼’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주변에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지인이 복용하는 인슐린은? 이 모든 것은 LMO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옥수수와 밀, 콩 등은 대부분 LMO이고, 감자와 토마토를 합친 포마토, 씨를 만드는 유전자를 제거한 수박, 그리고 부드럽고 껍질만 까서 먹을 수 있는 바나나와 빈곤하던 시절을 이겨내게 해 준 통일벼 모두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LMO는 돼지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 만든 인슐린일 것이다.(참조: 올바른 지식 쌓기-LMO편-, 한국부인회총본부, 2022.08.11)
그렇지만 LMO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다. LMO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던 유전자를 만드는 것이기에 생태계를 망가뜨리거나 유전자 pool을 교란할 수 있다. 만약 재배 중이던 LMO의 씨앗이 바람을 타고 숲으로 날아간다면 그 씨앗으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특정 제초제에 내성이 있는 작물들이 재배되는데, 그 씨앗이 바람을 타고 LMO를 사용하지 않는 농장으로 이동해 농장주가 기업에 강제적으로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것을 우리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영향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LMO는 앞으로의 식량 문제와 제삼 세계의 빈곤 문제 등 여러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 방법 중 하나이다.
키메라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하고자 한다. 아마 대다수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접하였을 텐데, 페가수스, 메두사, 그리고 켄타우로스의 생김새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유니콘이나 천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 모든 것들이 키메라의 대표적 예시이다. 키메라의 첫 번째 뜻은 ‘사자의 머리에 염소 몸통에 뱀 꼬리를 단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이고 두 번째 뜻은 ‘불가능한 생각이나 희망’이다.(출처: 옥스퍼드 영한사전) 과거의 사람들은 키메라의 첫 번째 뜻과 같은 여러 동물들을 상상했지만, 당연히 키메라의 두 번째 뜻처럼 이런 동물은 현실에 없다
생명과학에서 키메라는 ‘한 개체에 유전자형이 다른 조직이 서로 겹쳐 있는 유전 현상 또는 서로 다른 종끼리의 결합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유전학적인 기술’이라고 정의하는데, 쉽게 말하면 여러 생물들의 특징이 하나의 개체에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생명 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케이블 카 대신에 페가수스와 유니콘을 타고, 켄타우로스에게 수업을 듣는다면?
왼쪽부터 켄타우로스, 메두사, 페가수스의 사진.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을 말인 모습이며, 메두사는 사람의 몸에 뱀의 꼬리와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페가수스는 날개가 달린 말의 모습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은 아주 다양하다. 위의 신화 속 예시들 말고도 돼지와 소를 합쳐서 삼겹살과 차돌박이, 꽃등심을 모두 함께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돼지와 사람을 합쳐 사람의 장기를 생산해 낼 수도 있다. 다운 증후군과 같은 유전병의 고통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심지어 나에게 독수리의 유전자를 심어 내가 독수리의 날개로 날아 제주도와 독도를 여행하는 것과 같이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상상이 많다.
그러나 인터넷에 human chimera image를 검색하면 설레는 상상과는 다른 이미지들이 많이 나온다. 독자들이 검색을 해본 뒤 이 이미지를 보고 든 느낌을 잘 기억하고 계속 읽어 주길 바란다.
이 그림들은 검색 시 나오는 많은 사진 중 유명한 사진을 꼽은 것이다. 왼쪽 위 그림은 사람과 뱀 등 여러 종을 교배시키고 합쳐 만든 키메라이다. 꼬리는 용, 상반신과 하반신은 인간, 날개가 달려 있고, 머리는 6개가 달려 있다. 물론 상상일 뿐이지만 저런 개체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또한 왼쪽 아래는 호주의 한 화가가 상상한 인간과 돼지 사이의 키메라이다. 돼지가 사람의 얼굴과 손, 다리를 가지고 있고, 그 동물의 새끼들은 돼지처럼 부모의 젖을 빨고 있다.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특히 Patricia Piccinini의 작품 중에는 인간-동물 키메라에 대한 여러 상상도가 많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와 동시에 키메라에는 ‘안전성’이라는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기 위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유전자가 어떤 특징을 정하는지 이미 잘 알기에 적절한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면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유전자 가위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A,T,G,C의 네 개의 배열이기 때문에 이 배열을 잘라내거나 중간에 삽입하여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 인슐린을 생각해보면, 대장균의 유전자 중 일부를 잘라 낸 뒤에 돼지의 인슐린 생성 유전자를 삽입한 것이다. 유전자를 잘라낼 때와 삽입할 유전자를 만들 때 모두 유전자 가위가 사용된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서열을 인식해 그 부분을 잘라내는 도구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전자 가위는 ATTCGTA라는 서열을 인식하면 A와 T 사이를 잘라내는 작용을 한다. 이론상 이 잘라내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의도치 않은 서열이 잘릴 수도 있고, 원하는 부분에 유전자가 삽입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미나에서 질문을 던지기 전에 동료 편집위원들께 LMO와 인간-동물 키메라를 보여주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보았다. 모두 LMO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동물 키메라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누구는 ‘괴이하다, 역하다, 끔찍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지만, 다른 분들은 괜찮다는 의견을 내주셨다. 나도 처음 보았을 때는 ‘이게 도대체 뭐지’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교양 수업에서도 부정적인 반응과 괜찮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는데,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였었고 심지어 마치 공포영화처럼 혐오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LMO와 키메라는 윤택한 삶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둘 다 여러 비판과 우려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MO와 키메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서로 반대되었다.
인간-동물 키메라는 어쩌면 인간의 모든 물리적-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줄지도 모른다. 돼지를 이용해 인간의 장기를 생산하고, 다운 증후군과 같은 유전병을 유전자 가위를 통해 치료할 수도 있다. 앞에서 했던 상상대로 독수리의 날개가 우리 등에 장착되어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물고기의 허파 유전자를 이용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도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진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LMO보다 더 인간에게 유용할 수도 있는 것이 키메라인데 우리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는지가 바로 내가 던진 질문이다. 왜 사람들은 LMO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인간-동물 키메라에 대해서는 비교적 부정적으로 인식할까? 세미나에서 동료분들과 소중한 의견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먼저 ‘자연스러움’을 말씀해 주셨다. “산업사회로 사회의 구조가 변모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집단적인 가축화가 시작됐고, 그래서 인수공통전염병과 같은 질병도 생겼다. 실제로 신석기 시대에 인간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며 인간은 많은 전염병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러니 인수공통감염병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 애초에 동물들이 그렇게 집약적 가축 방식으로 길러지지 않았다면 몇몇 전염병이 안 생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떤 유전자 조작을 해서라도 본래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에 해당하지 않나?”라는 의견이다.
키메라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부자연스러움 논증’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키메라를 만드는 것은 종과 종 사이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그릇된 일, 행해져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이다. 일리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종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며 유동적이어서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있다. 즉, 오히려 종을 넘나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로 ‘부자연스러움 논증’은 비판받는다.
둘째로 ‘이름 붙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말씀해 주셨다. 우리가 앞에서 본 키메라 사진들에 이름을 알고 있는가? 사실 저 사진들은 모두 상상과 그래픽일 뿐이고 아직 현실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이 이미지화되어 있다. ‘독수리’, ‘고양이’, ‘강아지’, ‘자전거’,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것 말이다. 그러나, 키메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르다. 소와 치타를 이용해 키메라로 만든다면 그 동물은 소도 치타도 아닐 것이다. 말과 당나귀를 교배시켜 새롭게 만들어진 노새(사실 엄밀히 말하면 노새는 키메라가 아니지만, 인류가 최초로 행한 유전자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는 우리의 인식 속에 있지만, 원숭이와 돼지로 만든 키메라는 그렇지 않다. 이렇듯 키메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상반되기에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정의되지 않은 것과 새로운 것은 여러 논점과 딜레마를 제시하며 거부감을 낳는다. 만약 돼지와 사람을 이용해 키메라를 만든다면 그것은 인간인가, 돼지인가, 아니면 또 다른 것인가? 만약 또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법의 영향 아래 있는가 아니면 동물보호법이나 가축관리법의 영향을 받는가? 여러 해결하기 어려운 질문들의 폭포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도 거부감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것을 ‘도덕적 혼란’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부감은 더 나아가 혐오를 낳게 되며 우리는 발상의 전환 없이는 이상하게 생각하기 어려워한다. 단지 그 감정에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대상들을 임의로 정의한다. 당신은 ‘fish’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가? 흔히 ‘물고기’ 또는 ‘어류’라고 말할 텐데 이것은 축산업자와 돼지, 소가 같은 종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물고기라고 칭하는 것들은 단지 물에서 사는 공통점만 있는 것이지 사실은 서로 다른 종이다. (Lulu, Miller. (정지인 번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021.)
셋째로 키메라가 인간을 위한 또 다른 폭력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키메라를 이용해서 정말 많은 질병과 한계들을 치료하고 뛰어넘을 수 있겠지만 이것들이 문제에 택한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고도로 발달한 폭력이라는 입장이었다. 돼지를 이용해 사람의 심장을 만들어 심장을 이식한다면 그 사람은 살겠지만, 심장이 없는 돼지는 죽을 것이다. 심장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돼지와 인간이 무엇이 다르기에 돼지가 인간을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현대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돼지와 같은 동물들의 권리도 인정하며, 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키메라를 이용하는 것은 동물의 목숨을 인간을 위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단지 돼지가 우리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절대 ‘현대적’이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 역시도 또 다른 원인이라는 의견도 말씀해 주셨다. 물론 키메라를 통해서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삶의 질이 더욱 상승하겠지만, 이러한 이익보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결국 이 기술은 돈이 많은 사람들을 우선으로 적용될 것이기에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해질 뿐만 아니라 약자들이 강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실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아직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부작용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여러 의견들을 듣고 나는 키메라의 반대에 대한 원인으로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먼저 부풀려진 공포감이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LMO가 널리 퍼져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은 LMO가 처음 나왔을 때의 반대와 우려가 큰 문제가 아니어서 반대들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 반면 인간-동물 키메라는 아직 현실에 널리 있지 않기 때문에 LMO가 처음 나왔을 때 있던 반대들처럼 지금의 비판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조금은 과도한 반대의견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말이 인간-동물 키메라에 대한 낙관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로 적용했을 때 이론과는 다른 부작용과 악영향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그래서 지금의 반대와 비판들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또한 거부감과 혐오 역시도 큰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나는 혐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혐오란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기피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으로, 주로 고정관념에 의해서 생기거나 자신의 집단 외부의 대상과 만날 때 생기기도 한다. 사실 혐오의 시작은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 체계이다. 예를 들어, 조선에 전차가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으며, 어릴 때 강아지에게 물린 사람이라면 그 뒤로 강아지를 계속해서 피할 것이다. 유사하게, 인간-동물 키메라에 대해서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으며 인간-동물 키메라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기에 우리는 키메라를 인간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즉, 키메라도 우리에게는 불확실한 대상이어서 거부감과 두려움, 그리고 더 나아가 혐오가 생기게 된다. 다만, 이러한 혐오가 적절한지는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나의 이 문단이 현재 사회에 있는 여러 혐오를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 혐오, 여성 혐오 등과 같은 혐오는 비판받아 마땅하며 사라져야 할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 윤리적인 이유로 키메라를 반대할 것이다. 분명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만이 키메라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뿐만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들은 키메라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실험 대상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사람에게 안전하지 않은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으며, 이는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 반대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한번 상상해 보자. 슈퍼컴퓨터의 지능, 아이폰 카메라 정도의 성능을 자랑하는 눈, 개의 후각, 절대 미각, 고릴라의 근육과 팔, 치타의 다리를 가진 개체를. 우리가 저 개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과연 이 새로운 ‘탈인간급’ 개체와 우리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인간-동물 키메라를 허용하면 우리 인간보다 몇 배 이상 뛰어난 개체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 개체는 우리를 멸종시킬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과 생존 본능이 인간-동물 키메라에 대해 반대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동물들을 ‘지배’하고 있고 동물보다 인간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에 동물-동물 키메라에 대해서는 그다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보다 아래에 있을 테니.
키메라의 도입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위협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인간-동물 키메라는 인간의 지위를 낮추거나 동물의 지위를 높일 수도 있고, 인간과 동물 사이에 새로운 지위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의 우월함과 특별함이라는 환상에 금이 가게 된다. 우리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수학처럼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동료 편집위원분들이 말씀해 주신 것, 그리고 내 생각에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것들도 충분히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 가장 편한 방법은 키메라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생명과학도로서 키메라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체의 일부가 없던 아이, 교통사고로 장기가 다친 사람뿐만 아니라 방사능으로 장기가 손상된 사람까지도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 우리가 어려운 고민을 하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 척해도 될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인간상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렇지만 키메라에 대한 여러 비판과 논란, 반대는 충분히 곱씹어 보아야 한다. 사람을 도우려고 만든 과학 기술이 오히려 양극화를 불러오고 사람을 ‘비인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논란 중에 안전성 문제는 연구를 통해 해소할 수 있어 비교적 쉽지만, 사회-윤리적 문제와 사람의 감정과 본성에 의한 반대는 영구적인 딜레마에 우리를 빠뜨린다.
아직 어리고 생명과학과 심리학, 사회학, 윤리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에 매우 부족한 나이다. 그래서 내 질문도, 키메라에 대한 반대도 열린 결말로 남겨 둘 것이다. 그럼에도 세미나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내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인간의 감정과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만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과 자신의 연구에 대한 논란과 비판을 해소할 묘책을 찾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글을 읽는 시간이 독자들에게 후회되지 않는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사진 출처:
메두사 사진: [각본] 괴물시리즈 – 마주치면 돌이 되어버리는 메두사 -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네이버 블로그, 코코, 2023.3.29
켄타우로스 사진: BA.2.75는 '켄타우로스'? 누가 코로나에 괴물 이름을 붙였나, JTBC, 박민규, 2022.07.14
페가수스 사진: [재미있는 말이야기]페가수스, 서울경제, 박민영, 2016.05.13
키메라 왼쪽 사진: We've created human-pig chimeras — but we haven't weighed the ethics STAT, Lori Marino, 2017.1.26
키메라 오른쪽 사진: PATRICIA PICCININI/METAMORPHOSIS, Mad for Museum, 수오미수정, 2023.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