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야자수
여름날, 내리쬐는 햇볕 그늘 하나 없는 신촌캠퍼스 백양로를 땀 뻘뻘 흘리며 걷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나무 그늘이 하나도 없지? 나무들이 왜 이렇게 작지? 불만 섞인 바보 같은 질문에서 이 글은 시작됬다. 연세 춘추를 뒤적이던 중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하에 주차장이 있음을 자각했다. 백양로는 인공지반으로 이뤄졌다는 사실 말이다.
나무가 뿌리 내릴 수 있는 흙의 깊이. 토심. 우리가 매일 걷는 신촌캠퍼스의 백양로는 콘크리트 기반 토심으로 2m 정도 된다. 백양로의 토심, 즉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최대 깊이는 2m라는 것이다. 이에 2015년 연세춘추 기사에서 이경원 교수(문과대 영문학)의 말에 따르면, “이런 얕은 토심에는 은행나무가 자라지도 않을뿐더러, 지하구조물이 견디기에는 하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라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2022년 연세춘추 기사에서 서길수 교수 (경영대 경영정보시스템) 는 “콘크리트 지반때문에 큰 나무들이 뿌리 내릴 수 없었으며, 영양제를 투여해도 기존 은행나무만큼 잎이 자라지 않는다”, “백양로 안쪽의 나무는 키가 컸다”며 이전과 다른 캠퍼스의 모습에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2022년 위와 동일한 연세춘추기사에서 학교 측은 은행나무의 성장을 위해 다운슬래브(Down Slab)라는 건축공법을 사용해 친환경적으로 설계했고, 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콘크리트 기반에서 생장 최소 토심의 법정 기준 또한 75cm (대관목기준)이다. 하지만 2023년 연세춘추 기사에 따르면, 2023년인 지금까지 여전히 백양로의 은행나무는 재개발 때 바뀐 심토(유기물질이 적어 식생에 유리하지 않은 흙)에 적응하지 못해 무럭무럭 자라지 못하고 있다.
법은 지켜졌으나, 나무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써보자면 강제 철거-강제 이주의 서사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나무 649주 중 암은행나무는 냄새 때문에, 큰 나무는 이전 비용 때문에, 몇몇 나무는 별로 가치가 없어서 기둥이 아예 잘려 나가 469주의 나무가 죽음을 맞이했고, 180주는 본부 측에서 잠시 삼애/국제 캠퍼스에 이식한 다음 공사가 끝난 후 신촌 캠퍼스로 데려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결국은 토심이 부적합하여 끝끝내 돌아오지 못했거나, 돌아왔어도 부적응했다는 결말이다.
필자는 이전의 캠퍼스에서의 은행나무 키가 컸는지, 몸통이 두꺼웠는지, 그늘이 빼곡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 반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캠퍼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서 또 다른 모양의 캠퍼스도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인공지반 기반의 백양로에 심어진 은행나무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말이 많은데, 2013년 당시 캠퍼스 중앙 전체가 굴토 될 때의 학내 상황은 어땠을지 눈에 훤히 그려졌다. 상황 몰입을 위한 당시 캠퍼스 현장 사진을 몇 장 첨부하겠다. 그림1은 어느정도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현장으로,그림2는 “지하 구조층 상부 공사 콘크리트 타설과 지하 암반 파쇄 및 굴토 작업”이 진행중이다. 만약 당신들이 이 때 학교를 다녔다면?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혹은 난개발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을 톺아보기 위해 연세지 100호 <연사모 간담회>를 시작으로, 백양로 프로젝트를 반대하기 위해 모였던 ‘연세대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이하 연사모)’와 학생들이 발간한 책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2014)』, 백양로 프로젝트를 찬성했던 본부측에서 발간한 책 『연세대학교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건설지(2016)』, 그리고 개발 당시와 재개발 이후 꾸준히 쫓아간 소중한 연세춘추의 기록을 통해 2013~2014년대 연세대학교의 학내 상황을 들여다 보고자한다.
이 글의 목적은 첫째로 백양로 프로젝트의 논의 절차 과정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어떤 배경에서 개발하기로 했는지, 2년이라는 기나긴 공사 기간을 대비해 교직원 및 학생 의견 수렴은 며칠 동안 진행했는지, 900억이 투자되는 학내 중대 사안에 있어 어떤 소통 과정이 있었는지 등을 아는 것이다. 무조건 개발에 반대한다거나, 혹은 그 반대인 개발만능주의를 찬성하기보다는, 후세대인 우리가 할 일은 백양로 프로젝트 개발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고, 당시의 편집위원, 교수, 본부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그 사실을 아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이미 우리는 완공된 백양로를 걷고 있지 않나. 이제 와서 반대할 수는 없지만, 학내 대소사를 결정하는 ‘민주적인 소통’이라는 게 무엇인지, 혹은 반면교사 삼을 상황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실낱같은 희망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저항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거하는 방식 말이다. 백양로 토건 사업을 두고, 모두가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푸르른 잔디밭 위에서 하하 호호 웃는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는 누리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보냈다. 자신들의 의견표명을 위해 행해진 학생 자치활동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던 그때의 일상을 엿보고자 한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라는 명칭은 개발을 주도하던 학교 본부와 기업체들에 의해서 사용된다. ‘백양로 난개발’이라는 명칭은 소통 협의 과정이 부재한 본부 측을 비판하고 백양로를 위해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려는 연사모와 학생들에 의해 사용된다. 이 두 개의 이름만 알면, 우리는 벌써 이 이야기의 주인공 2명을 알았다. 추가로, 여기서 등장하는 교수평의회(이하 교평)는 교수회의 대의 기구로, 각 단과대의 교수회에서 선출된 평의원 86명과 임원, 간사, 분과위원장 13명, 총 99명으로 이뤄져 있다. 백양로 이슈에 관해서는 주로 공청회와 간담회를 주최하는 역할을 맡았다. 백양로 재개발은 쟁점이 극명하게 나뉘는 만큼, 각 측에서 발간한 자료에 나타난 사건 또한 관점이 아주 다르다. 어쨌든 역사는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것이니, 지면에 적힌 활자들을 보면 그들이 어떤 사실을 ‘역사’로 남길 건지 훤히 볼 수 있다. 다음 연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자료에서 공통적인 부분과 쟁점적인 부분을 담았으며, 작성할 때 참고한 출처도 함께 건설본부 책에서 인용한 글은 파란색으로, 연사모와 백양로난장이 책에서 인용한 글은 빨간색으로 표시하였다.
*파란색은 건설본부에서 발행한 책『연세대학교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건설지』68,91,279~280쪽 참고하였고, 빨간색은 연사모측에서 발행한 책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백양로 난개발 백서』 39~54 쪽 참고. 연표의 내용은 모두 각 책들의 직접인용임을 밝힌다. 모든 문장마다 인용표시를 달기 어려워 각 단행본 마다 인용면수 구간으로 대체함을 양해바란다
2012
3월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의 본격 추진을 위해 TFT 결성. 그 해 6월까지 사업 타당성 및 의견수렴을 거친 뒤 이사회의 최종 승인과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의 건축인허가 추진 (건설 본부)
5/9 창립 128주년을 맞아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기공식을 백양로에서 개최. (건설 본부)
6/4 11일동안 본부측의 이메일을 통한 백양로 건설 사업 여론 조사. 조사 대상은 재학생,교수, 직원, 동문을 포함한 26,481명 중 총 1,7700명 응답. (건설 본부)
8/17 백양로 재창조 사업 설계사 선정 평가 실시. 4일 뒤 건축설계사무소로 ‘(주) 간삼 건축’으로 선정 (건설본부)
9/12 공식 기구로서 백양로 프로젝트 건설 사업 본부 결성 (건설 본부)
9/25 본부는 건축기획위원회에서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 앞에 지상 1층, 지상3층 15,000평의 (주차대수 1000대)의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사업 계획안 마련. (연사모)
10/20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심의 접수(건설본부)
12/5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심의 보류 결정(건설본부)
본부는 백양콘서트홀과 제1공학관 앞까지 사업구간을 확장한 수정안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연사모)
2013
1/2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재심의 접수 (건설본부)
2/6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심의 통과 (건설본부)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백양로 사업계획안이 기존의 계획안(12월에 보류된 계획안)과 크게 달라진 것을 인지한 교평이 본부에 문제 제기. (교육, 연구 및 편의공간이 우선이었던 원안에서 지하공간의 70%가 주차장인 수정안으로 사업 내용이 바뀜.) (연사모)
2/14 교평은 해당 계획안이 2012년도 5월 종합 환경관리위원회에서 검토했던 기본계획안과 크게 달라졌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계획변경은 심층적인 심의 과정과 학내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되어야함을 역설 (연사모)
2/26 서을특별시 교통영향평가 접수 (건설본부)
4/1 서울특별시 교통영향평가 심의 통과 (건설본부)
4/8 교평 주최로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공청회’가 열리다. 70%이상이 주차장인 지하공간 배정, (주) 간삼건축의 현상설계자 선정 의혹, 사업비 충당의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본부는 공대타워와 신경영관 등의 신축건물에 따른 법정주차대수 확보를 이유로 공사 강행의 의지를 밝혔다. (연사모)
4/15 서대문구청 건축허가 접수 (건설본부)
4/19 교평의장은 행정대외부총장과 기획실장을 만나 협의체 구성을 촉구함. 이에 부총장은 ‘학내 공간 개발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안이므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어렵고 교책사업은 본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 피력 (연사모)
8/8 건설시공자로 본공사로 (주)한화건설, 아트홀 공사로 금호건설 선정 (건설 본부)
8/9 서대문 구청 건축허가 완료 (건설본부)
8/12 ‘연세 캠퍼스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 각 단과대 대표 10명이 모여 결성 (연사모)
8/21 백양로 재창조 착공 (건설 본부)
10/8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협의체(이하 협의체)’가 본부, 교평, 노동조합, 총학생회, 총동문회 대표(각 기관 2명씩)와 당시 제 17대 교수평의회 의장이 협의체 의장으로 구성되어 발족됨. 연사모는 논란 끝에 임의 단체라는 이유로 협의체에서 제외됨 (연사모)
10/15 조한혜정(문화인류), 서길수(경영), 이상호(토목공학) 교수가 제2차 협의체 회의 참석하여 백양로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서울시에 정보 공개 요청을 통해 연세대학교가 제출한 ‘연세대학교 신증축 교통영향 분석, 개선 대책’을 받아보다. 이에 따르면 백양로에 신설되는 1,080면의 주차장이 없이도 법정주차 대수는 충족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중 800면은 의료원 주차시설로 명기되어 있음이 밝혀지다. (연사모)
10/29 본부는 교평 대표 이창하(화공생명), 조대호(철학)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협의체 구성원들이 연사모 대안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협의체 해산을 선언한다. 이는 협의체가 다수결에 의한 의결기구가 아니며 1개월 동안 협의를 진행하되 필요하면 2~3주 정도 협의 기간을 연장한다는 협의체 구성준비 모임(10/3, 알렌관)에서의 약속을 파기한 것(연사모)
총5차례의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연사모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대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현실성과 효율성 결여로 채택하지 않음. 협의체는 최종적으로 전체 11명 중 교수 대표 2명만을 제외한 9명(의장포함)이 참여한 가운데 본부 설계안에 동의 (건설본부)
11/22 이날부터 26일까지 교평은 신촌캠퍼스 교수를 대상으로 본부안과 연사모 대안을 놓고 온라인 교수 총투표를 시행하다. (연사모)
11/23 본부는 “교수 투표의 부당성 및 위법성”을 주장하고 투표 불참을 종용하는 이메일을 전체 교수들에게 발송 (연사모)
11/27 총투표 결과, 신촌 캠퍼스 908명의 교수 중 436명(48.%)이 투표했으며, 투표자 중 86.47%(377명)가 연사모 대안을 지지했고 13.53%(59명)가 본부안을 지지함. (연사모)
연사모는 신촌 캠퍼스 교수들만을 대상으로 본부 대안과 연사모 대안에 대해서 인터넷 임의 전자투표를 실시함. 이 사안에 대한 투표참여율은 50%에 채 미치지 못함. (건설본부)
2014
3/28 백양로 공사 현장에서 도시가스 수송관이 파손돼 가스누출 사고 발생. 제 51대 총학생회 Solution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가스 유출 사고와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사고 추이에 대한 내용을 공지하였으나, “학교의 명예실추와 불필요한 논란의 확산”을 이유로 학교 관계자가 총학생회에게 해당 글 내려달라 요구 (연사모)
2015
10/7 완공기념 백양로 재장조 봉헌식 (건설본부)
사실 이 연표 또한 필자의 취사선택에 의해 걸러진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완전히 ‘객관적’인 지표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건에 대해 각 측에서 어떻게 다른 언사를 사용했는지 알아보는 작업을 하고자했다.
쟁점1. 주차장 위치에 관하여
두 주인공의 공통 분모는 ‘차없는 백양로, 걷기 좋은 백양로’ 였다. 백양로 가운데에 양방향 차도가 있어 하루 평균 출입차량이 과대해지고, 차량과 보행자와 섞이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되자 이를 구분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본부는 해당 책 74 쪽에서 “백양로 재창조 사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하차도와 주차장을 확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백양로를 보행자 중심의 만남과 소통의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것임을 명확히”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여론 수렴 과정에서의 문제는 본격적인 공사 시작 1년전 TFT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차없는 지상의 백양로, 지하공간 창출’ 정도의 설명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중앙 지하주차장 건설 규모에 대한 설명없이 ‘차없는 거리, 백양로. 찬성하십니까? 재창조 프로젝트의 긍/부정적 측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누가 반대하겠느냐. (자세한 설문조사 결과는 본부의 건설지 68~70 쪽에서 볼 수 있다.)
연사모 또한 ‘백양로를 보행자 중심의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 되는 것을 찬성한다. 하지만 2013년이되자 건설본부의 계획안이 달라졌다며, 즉 정문부터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 사이의 구간까지인 백양로 전체를 드러내는 작업을 굳이 900억까지 들어가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연사모와 백양로 난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더불어, 본부가 내놓은 방안은 법정주차면수에 초과해지어졌다며, 그렇게까지 많이 지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연사모가 내세운 대안으로는 연세대 각 건물에 할당된 법정주차면수를 지하 중앙으로 집중시키는 것(본부안)이 아니라, 캠퍼스 외곽의 지상 주차장을 더 만들어 차량을 분산시키자는 것이었다.
쟁점2. 백양로 공사 비용 거금에 관하여
또한 백양로 공사 비용 900억을 두고, 학교 본부는 학생들의 등록금이 아닌 기업과 동문들의 기부금으로 모았고 이 비용의 목적은 학교 공간 조성에 ‘궁극적 목적’을 두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교육적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의견표명을 본부측의 책 284쪽에서 밝혔다. 하지만 당시 연사모를 비롯한 교수들은 강의의 대형화, 신규 교수 채용의 재정적 어려움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어 지원을 요청했지만, 예산 문제상으로 지원해주기 어렵다는 본부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쟁점3. 의견조율과정에 있어서 합의에 관하여
연표를 보면, 본부측은 협의체 의사결정과정에있어 학생, 노동조합 등 다른 단위체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개입시킨것도 아니다.- 강한 반발을 하는 교수들을 적극적으로 배제시켰다. 특히 2014년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의 연표를 살펴보자면, 본부 측은 연사모가 교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무기명 투표가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한 교원 정보에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적이고, “제도화된 조직에서 임의적 투표로 공식 결정을 재심하는 것은 모순을 초래”한다며 부당성을 주장했다. 헤당 근거는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2014)> 202쪽에 실린 본부측의 공식성명서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백양로 건설TFT에서 진행한 온라인 여론조사가 조사대상 학생, 교수 교직원 26,481명 중 약 6% (총 1,770명)만이 투표 참여, 특히 교수는 184명만이 투표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수평의회가 주최한 온라인 투표가 조사대상 교수 908명 중 436명 (377명 찬성/59명 반대)의 여론을 수렴했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본부측이 내세우는 ‘제도-임의’라는 구도 속에서만 학내 의사 결정을 진행하면 목소리를 제한적으로 밖에 들을 수 없다.
필자가 구성한 ‘역사’ 말고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다면 두 권의 책 모두 다 읽기를 권하나, 특히 책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의 목차구성은 각 단체(본부, 연사모, 총학생회, 등등)에서 표명한 공식 성명서가 엮어져 있어 어떤 대화들이 오갔는지 이해하기 편리하다는 견해를 밝힌다.
백양로의 관점에서, 근 몇 십년간 가장 시끄러웠던 때가 언제 였을까. 대동제? 동아리 박람회? ‘소음’으로 인해 수업권 침해 소송에 걸린 청소노동자시위? 아마 나무가 뽑히고, 암반이 무너지고, 흙과 돌을 걷어내고, 동시에 그 위에서는 가장 다양한 구성원(다양한 학부의 교수, 학생, 졸업생, 환경운동가, …) 들이 모여 열렬히 싸우던 2013년 가을이 아니었을까. 파트1에서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냐, 백양로 난개발이냐 하는 논쟁을 읽고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어쨌거나 지금은 꽤 나쁘지 않은데?’ 맞다. 솔직히 이제 와서 본부의 졸속행정에 아무리 화가나도 백양로를 안 걸을 수는 없는 처지다. 그래서 파트 2에서는 그 당시 백양로 난개발을 외치던 사람들이 모여서 뭘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미 학내언론에서 후속 보도를 통해 백양로 재개발이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많이 언급이 되었지만, 그에 비해 어떻게 저항의 목소리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미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무엇이 진실이고-거짓이고 밝히는 논쟁은 지금 2023년도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당장 필요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힘이 꽤나 부치는 일이기도 하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파트 2는 생생한 이야기, 지금의 내가 한번쯤은 시도해볼 수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면적인 반대 성명서, 그 이상의 입체적인 일상들을 찬찬히 그려보자.
백양로 재개발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읽은 자료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단연코 연사모와 학생 단체들의 점거 방식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백양로 재개발’ 완전 반대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본부측에서 내놓은 ‘백양로 재개발’ 방안이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아 공사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무기둥을 베고 땅을 파는 순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항의는 물리적인 공간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시간 순으로 나열한 아래 행사들은 주로 학생 단체 ’백양로 난장이’, ’올디구디(Oldies but Goodies)’, ’다름에서 닮아가는 삶,닮’이 주최한 문화제의 활동이다.
벽화: 공사장 펜스로 가려져 있는 잘려져 나가는 나무의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벽화를 그림.
나무 위에 올라가기: 2013.9.6 서길수 교수(경영)와 이경원 교수(영어영문)가 백양로에 마지막으로 남은 막둥이 나무를 이식하려는 것을 막고자 둥치 위에 올라가 몸으로 막는다.
천막농성: 2013.9.6 본부가 나무를 운반하여 이식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연사모는 중앙도서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막둥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기 시작한다. 연사모들이 중앙도서관 앞에 하얀 천막을 설치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들려 상주한다. 이 곳에서는 백양로 재개발에 관한 반대 시위와 토론이 이뤄지는 곳이다.
위령제와 인도춤: 2013.9.7 잘려 나간 백양로의 나무를 위로하기 위해 ‘백양로 위령제’를 지냄. 현대 무용가가 인도춤인 오디시(Odissi)를 추고 학생들의 공연이 이어짐.
영화제: 총 네차례의 영화제 개최. 9/5 이영재 감독(생명공학 76)과 서현석 제작자(철학 75)가 만든 영화 <내 마음의 풍금(1999)> 상영 후 GV, 9/12 이용주 감독(건축공학90)의 <건축학개론(2012)>상영, 9/16 봉준호 감독(사회학 88)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 상영, 10/16 봉준호를 초청해 아마추어 영화감독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같이 감상하는 ‘연세 필름 컬렉션’ 중도 앞 공터에서 개최
천막수업: 9/10 서홍원 교수(영어영문)의 ‘서양고전강독’, 9/11 김진영 교수(노어노문)의 ‘러시아 문학 세미나’, 9/12 조한혜정 교수(문화인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이라는 과목으로 중앙도서관 앞 공사터에서 천막강의를 진행함.
플래시몹과 백양 열차: 2013.10.2 중도 앞에서 플래시몹을 한 뒤 ‘백양열차’라는 기차놀이로 행진한 후 본관 앞에서 댄스 퍼포먼스. 이후 백양로 사업의 재논의를 요구하는 서한을 총장실에 전달.
백양다방: 2013 가을학기 수업 <지구촌시대의 문화인류학> 수강생 15명으로 구성된 조모임. 10월 초부터 매일 오후 13~18시 중앙도서관 앞 공터에 위치한 천막 밑에서 상주인원을 배치하며 교수와 학생들을 상대로 오뎅, 커피와 차를 판매했다. 초기비용은 교수나 학생들에게 기부받고 판매수익으로 재료를 사서 운영했다. 낮말고도, 밤에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는 영상제, 노어노문학과 김진영 교수님이 주최한 작은 음악회에 함께해 사람들에게 커피와 차, 스프를 대접했다. 11월 13일 새벽3시, 천막은 건설사 한화의 포크레인에 의해 기습 철거되었다.
침묵시위와 행진: 천막이 기습철거되고 중도 앞 광장이 펜스로 완전히 봉쇄되었다. 그 다음날부터 1주일간 연사모 교수들과 학생들은 매일 정오 무렵 본관 뒤에 모여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백양로를 행진하였다. 사람들은 근조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의 점거방식은 가장 전통적인 형태인 시위, 농성, 나무 올라가기부터 문화제의 형태를 띄는 기차놀이, 벽화, 위령제, 무대 퍼포먼스, 다방, 교수들의 수업, 영화제까지 다양했다. 코로나 학번인 필자로서 학생 주최의 행사로 시끌벅적한 캠퍼스는 동아리 박람회 -근데 이 또한 공식단체가 아니면 단위체로 참여하기 어렵다- 말고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에 자료들을 따라 읽어가면서 낯설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시험기간 간식행사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기업 홍보용이거나, 일회성 나눔 행사이기 때문에 ‘학생 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학내 문화제의 역사는 2013년도뿐만 아니라 2008년도, 2010년도에도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는 촛불문화제도 있었다. 등록금인상을 반대하기 위해 백양로 삼거리에서 퍼포먼스와 OX퀴즈를 하기도 하고, 각 단과대측은 등록금 인상 반대를 위해 백양로에 현수막을 걸었다. 2008년 연세춘추 기사에 따르면 “무전유죄 유전무죄 학교에서 이런 것만 가르쳐줘요”(38대 법과 대학 학생회) “연대 경영방침은 허(虛) 경영”(45대 상경경영대학 학생회) “헉! 800! 우리보다 비싸면 나와봐!”(2대 국제대학 학생회) 와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이와 대비하여, 현재 백양로에 학생회측이 내거는 현수막은 연세대 출신 역사적 인물의 추모기념에 관한 내용만 있지, 학교 본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점점 학내 의사 결정 과정(학내정치)과 학생 자치에서 멀어져 가는 현상과도 완전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학생 자치’ 라는 단어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자치(自治)는 스스로 자, 다스릴 치 라는 한자어 뜻으로,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다스리고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총동아리 학생회, 총학생회가 흔히 생각하는 학생자치활동이다. 하지만 자치활동은 꼭 학과, 단과대, 총동아리, 총학생으로만 묶이지 않는다. 자신을 어떤 준거집단에 둘 것이냐, 어떤 의제에 관심있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자치활동은 다양하다. 예를들어 학과 행사에는 관심없지만, 노동에 관한 의제에 관심이 있다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식대책위원회’에서, 학내기부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더스피릿’에서, 마이너리티 의제와 연대하고 학내의 안전한 공간 운영에 관심이 있다면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에서, 기숙사 생활에 관심이 많다면 ‘사생자치회’-2014년도 이후로 사라졌다-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책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에 실린 ‘백양다방’ 조모임 보고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백양다방 또한 공간을 직접 기획 운영하는 자치 활동으로, ‘고작’ 학부생들의 조모임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는 보고서를 읽으면서 민주적인 소통과 ‘자치’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백양다방은 2013년 문화인류학 조한혜정 교수가 개설한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이라는 수업에서 지시문 수업을 하다가 13명이 꾸린 조모임으로, 공사 한복판인 중앙도서관 앞 천막에서 커피와 차를 판매한다. 합의된 프로젝트의 목적은 ‘우리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잠시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방처럼 머물렀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조모임 보고서의 관전 포인트는 13명 모두가 백양로 재개발 반대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열정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체 내에서 대화로 풀려고 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고 백양다방 상주도 자주 했지만, 누구는 이런저런일 때문에 빠지기도 하고 백양로 재개발 반대에 대한 관심도 적어 내적갈등과 미안함을 겪는다. 미묘한 긴장상태에서 ‘천막 강제철거’라는 사건은 내부갈등을 심화시킨다. 백양다방이 사라지고 공식적인 업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후속활동으로 적극적인 반대를 나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미안함과 부채의식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어떤 찝찝함도 남겨두려 하지 않았다. 학기가 끝나고, 대화 소모임과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의 소회를 푸는 자리를 마련한다.
백양다방팀은 철거다방조/일상다방조/모르겠조로 나뉘어 대화 소모임을 구성했다. 13명이 한번에 다 모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의 대화를 위해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대화 소모임 방식으로 진행했다. ‘철거다방조’는 철거 이후 백양로 재개발에 대해 가장 큰 관심도를 두고 연사모와 함께 공청회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한 4명이 모였다. ‘일상다방조’는 백양로 문제와 별개로 다방에서의 일상과 운영이 좋았던 5명이 모였다. ‘모르겠조’는 백양로와 다방 둘 중 하나만 선택하기 어려웠던 4명이 모였다.
보고서는 소모임 대화기록과 각자의 감상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다음은 각자가 백양다방을 참여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어놓은 부분을 발췌했다. 각각 일상다방조와 모르겠조에 속한 세 사람은 백양다방동안 변화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두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막막함이 아직 기억난다. 이것저것 챙겨오고 잔뜩 신이 나서 백양다방을 준비했다. 학교에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학교가 공사를 학기 위해 쳐놓은 펜스 안에서 다방을 열자니 악동들이 된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어느새 백양다방이 내 일상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 그러다가 백양다방이 철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정서가 백양다방 마무리에서 짙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종강을 하고 생각해보건대, 백양다방은 지난 2학기 나를 많이 바꾸어주고, 열어주고, 채워준 공간이었다. -269p, 희원의 <백양다방, 김희원이 응답한다>중에
팀별 주제에 흥미를 느끼고 온 것이라기 보다는 친해진 지인을 따라서 왔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백양다방의 공간적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사실 공사판 중앙에 설치되어 마치 휴전선에 놓인 것 같은 경계에서 다방을 꾸리는 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점차 경계라는 공간은 무색해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서의 백양다방이 굉장히 좋았다.
-273p, 성록의 <사람 냄새가 나는 곳> 중에서
포크레인이 들어와 학교를 뒤집어 놓았고, 어떤 악랄한 마술사의 마법처럼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나무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돼도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지러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때의 나는 그러한 반대의 움직임에 반대했다. 이왕 공사를 할 거면 빨리 끝내서, 내가 최대한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기 위해. (...) 나조차도 정확히 뭘 하려고 모른 채로, 백양로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백양다방 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한번 생각해보자고. 바쁘게만 걷지 말고, 학관 쪽에 있는 은행나무 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잠시 쉬어가자고. (...) 하필 이 불운의 시기에 이런 대접을 받으며 학교에 있다니.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또한 배움의 장이다. 용재관, 송도, 백양로까지, 문제를 달고 사는 이 역사의 한 순간에 내가 있었고, 이 변화의 순간에 내가 취했던 태도, 그에 따른 감수성은 지금의 나만이 겪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기억할 테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진행될지 모르는 프로젝트임을 안다. 그러나 돌 하나를 던지고, 던지지 않느냐에 따른 내 감수성은 달라질테니까, 나는 오늘도 돌을 던진다. - 277p, 주연의 <지키고 싶어 지킨다> 중에서
백양로 재개발에 관해 본부가 뜻을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무기력하게만 있지 않았다는 역사에 주목하고 싶다. 그 많고 많은 점거방식 중에서 특히 ‘백양다방’을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의 필자가 어쩌면 현재 학교현안과 학생사회에 무기력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일 수 있다. 학교 본부와 무언가를 협상하는 학생사회가 때로는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의제에 관심이 있다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 중에서 백양다방 보고서가 가장 충격적으로 읽혔다. 아, 그 때 재학생들도 백양다방이 처음에는 생경했고 두려웠구나. 큰 뜻이 아니라 백양로 굴토 과정이 안타까웠다는 작은 감정(?)만으로도 저렇게 재미난 일을 꾸릴 수 있구나.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점거했고, 마냥 손 놓고 멍하니 바라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큰 용기와 재밌는 상상력을 주었다.
1994년도 신촌과 연세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처럼, 2013년도의 신촌과 연세대를 배경으로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낭만 가득한 푸른 밭 잔디가 펼쳐진 캠퍼스는 배경이 아닐 거다. 먼지와 공사 소리, 시위 소리로 뒤섞인 일상들이 드라마 배경일테니. 이 글에서는 대학교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백양로 재개발 사건을 중심으로 알아봤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2013년 백양로의 역사에 2023년의 우리는 어떤 응답할 수 있을까?
십년이 지난 후, 지금의 백양로 위에는 정말 차가 없긴 하지만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먼저, 캠퍼스 내 차량과 보행자의 안전에 관한 문제다. 2023년도 2학기를 기준으로 백양로 삼거리(경영관 앞쪽 삼거리)와 학술정보관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백양관 앞 도로에 중앙선이 생겨 차량 전용도로가 되었다. 사실 본부의 계획안에 이 구간 또한 지상차량 통행구간이 맞았으나, 지금까지는 보행자와 구분 없이 지나다니던 구간이었기에 더 욱 더 각별한 주의와 안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 무엇이 친환경적인가에 관한 문제다. 본부 측에서는 대규모의 지하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지상의 아스팔트 비율이 56%에서 15%로 줄어들고 이용가능한 녹지공간은 5%에서 20%로 올리는 등 그린 카펫을 조성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차원적인 해결 방법으로, 대규모의 지하 주차장을 만들어 사람들이 차량 운전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 친환경일까? 주말만 되면 백주년기념관, 노천극장에서 외부 공연들이 많이 열린다. 콘서트가 끝날 시점이면, 백양로 삼거리에서부터 무악학사가 위치한 북문까지 나가려는 차들로 꽉 막혀 있는 걸 자주 보기도 했다. 물론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열리며 학교가 받는 대관비(노천극장/주말/본행사 1일 기준 2,400만원이다.), 외부차량 주차비가 학교 운영비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는 학교 경영 관점에서만 좋을 뿐 다수의 차량이 만들어내는 탄소까지 고려한다면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가 온전히 환경친화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Global boiling이라고 불릴 만큼의 기후위기를 맞이한 지금, 단순히 가시적인 녹지공간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바라봐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지금의 백양로가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냐 하는 문제다. 이 말은 단순히 보행하기 좋은 길 이상으로, 학생들이 마음 편히 휴식할 수 있고, 자치활동을 쉽게 상상하고 기꺼이 실행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학생과 학교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학생들의 역량에 달려있고, 학교 본부가 얼마나 경청할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건설사 시안에 따르면, 원래 중앙도서관 앞 잔디 공간은 ‘진리 광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조성된 공간으로, 잔디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이미지도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잔디를 밟으면 안 된다는 팻말이 우두커니 서있다. 물론 곳곳에 벤치들이 있지만, 많은 학생 수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은 결국 신촌 로데오로 나가 카페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쉬는 등, 공공의 공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17년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STANDBY 선거본부는 ‘백양로 지상 공간 잔디 개방- 한글탑 잔디 및 중앙 도서관 앞 잔디’라는 공약을 내걸 만큼, 학우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잔디를 개방하고 있지 않아 불편함을 겪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고려대의 중앙광장 잔디밭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다) 백양로 건설사업 본부의 책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백양로는 단순히 연세대 학생들의 통학로가 아닙니다. ‘길’이기보다는 연세대학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광장’이었고, ‘장소’라기 보다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의 무대’였습니다. (...) 우리에게 백양로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대의 광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광장’은 상징적으로만 존재할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
과연,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백양로는 어떤 백양로인가? 과거 백양로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가을에게, 2023년 가을이.
ps. 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 되서야, 딱 십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알게 모르게 의도한 것 같아 신기하네요.
-단행본
연세대학교 백양로 건설사업본부, 연세대학교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건설지(2016)
연사모,백양로 난장이, 백양로 대안은 있었다:백양로 난개발 백서(2014)
-연세춘추 기사
2023.09.18 “우리대학교 신촌캠, 보행친화적일까?”
2022.11.20. “더 나은 소통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
2015.11.01. “완공된 백양로, 연세의 품으로 돌아오다”
2008.03.29. “촛불문화제 현장스케치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