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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Feb 09. 2024

<137호> A 2편

편집위원 한풀

위아래이 검은색,흰색,회색,옅은보라색띠가 둘러져있다. 가운데는 'A 2편 -LGBTQIA의 A는 무성애자입니다=라고 적혀있다.

*1편은 <연세> 136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편(https://brunch.co.kr/@yonseiji/172)을 먼저 읽기를 추천합니다.


LGBTQIA의 'A'는 무성애자입니다

[사회의 모든 무성애자에게 (그리고 유성애자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무성애 또는 에이섹슈얼(Asexuality)은 남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현저하게 낮은 경우, 또는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아예 없는 것을 말한다.

출처: 페미위키


이 글은 무성애자 4명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모여 ‘무성애’에 대하여 실컷 떠드는 대화록이다. ‘모음’, ‘유부’, ‘망고’, ‘버섯’이 대화에 참여하였다.


무성애자는 평생 혼자 사나요?


버섯: 섹스는 뭘까?

모음: 그러니까 정말 사전적 의미로 그게 뭘까가 정말 궁금했어. 근데 그거를 나는 용감하지 않아서 내 몸을 던져서까지 알고 싶지 않아.

유부: 나는 실은 섹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항상 머릿속에 재생되는 이미지는 약간 예쁜 몸을 가지고, 근육질의 몸을 가진 페니스를 지닌 남자가 결합하는 그런 장면밖에 생각이 안 나. 나는 어렸을 때 제일 충격적이었던 게 엄마 아빠가 날 낳았다는 게… 내가 좀 큰 다음부터는 아예 셋이 싹 다 각방을 썼거든.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이 자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나중에 보니까 엥? 싶은 거지.

모음: 나도 우리 엄마가 평생 무성애자라고 항상 생각해 왔거든.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놀라지 않은 이유가, 자기도 막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였던 거라고 그렇게 추측을 했어. 왜냐하면 엄마는 그냥 결혼할 때가 됐는데 결혼하자는 남자가 나타나서 그냥 좀 만나다가 결혼했다고 하거든. 그때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근데 엄마도 한평생 연애를 안 해보다가 딱 28살에 아빠가 나타난 거야. 만나보자고. 그랬대.

유부: 나는 처음에 정체화를 했을 때 제일 먼저 집에 얘기를 했는데, 그냥 편하게 ‘나 무성애자인 듯.’ 했어. 아빠가 그때 한겨레에서 ‘누가 커밍아웃을 하면 이렇게 해라’ 이런 칼럼을 읽었었나 봐. 그래서 그대로 하셨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해?’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이게 너무 배운 입력값인 거야.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좋으니까 그때는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했었지. 엄마는 별로 주의 깊게 듣지 않으셨던 것 같아. 얘기를 했었는데도 엄마가 ‘야 너는 대학까지 갔는데 남친 없냐?’고 하셔가지고 ‘나 무성애자라고 했잖아?’했더니 ‘그랬냐?’ 이러시는 거야. 무성애자가 뭔지 실은 지금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아.

모음: 내가 나는 결혼 안 할거라는 말을 숨쉬듯 하면, 아빠는 ‘결혼하면 좋은데 왜’ 이러시고… 엄마는 결혼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하셔(ㅋㅋ).

망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이제 무성애자를 입력해버리는 우리가 재밌는 거야.

버섯: (ㅋㅋ) 우리 엄마는 이제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으니 네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얘기를 하시거든. 그런데 이제 결혼하지 않으면 외롭지 않겠냐는 말을 하시지. 엄마가 무슨 말을 해줬냐면, 우리 언니가 이제 엄마가 결혼했을 때 나이가 되었는데, 언니는 결혼을 할 거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거야. 아이를 안 키울 거면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대. 너무 신기하지 않아?

망고: 신기하다.

버섯: 신기하지. 결혼의 목적이 아이인가봐.

유부: 나는 근데 혜택 받고 싶어서라도 내가 결혼할 수 있으면 할 것 같은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동의하는데, 그보다 더 신기한 거는 애를 안 낳는 결혼이 진짜 많잖아. 그러면 또 그 결혼의 의미는 뭘까 하고 짐작하게 된다는 거야. 이제 재생산의 목적이 없어. 그럼에도 결혼한다는 것은 뭘까?

모음: 그런데 나는 내가 형성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있어.

유부: 나도. 약간 집성촌처럼!

모음: 맞아. 성이 같지는 않지만. 커뮤니티 있잖아.

유부: 근데 실은 엄마가 매번 걱정하는 부분이, 나는 완전히 혼자야. 식구가 없어. 그래서 엄마 아빠가 사라지면 그게 너무 걱정이 되나 봐 이제는. 그래서 같이 공동체를 꾸릴 누군가를 찾으라는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아. 아무튼 나도 늙어가면서 아니면 지금도 혹여나 아프다면 어떤 돌봄 공동체가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

모음: 그런데 나는 만약 살더라도 지금 한번 혼자 나와서 살아보니까 누군가랑은 절대 같이 못 살 것 같아.

유부: 그러니까 옆집에 살아.

버섯: 그러니까 이게 집에 들어가는 문이 달라야 해.

유부: 화장실이 달라야 해.

모음: 같은 집에 다른 공간 이런 거 안 돼 안 돼.

유부: 그리고 서로의 집에 들어올 때 어느 정도 예의는 있어야지.

버섯: 그러니까.

유부: 그래서 이런 게 ‘느슨한 연결’이구나를 느꼈는데, 실은 느슨한 연결도 솔직히 말해서 계속 느슨해지면 끊기기 마련이잖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무나 막 이런 게… A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관계의 깊이를 어디까지 적정 마지노선을 유지할 건가인데, 연애하는 인간들은 본인들을 서로 동일시해.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걸 생각을 안 하잖아. 우리는 어떤 적정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왔다 갔다 움직이는 건데.

모음: 힘들다.

유부: 힘들다 싶긴 하더라고. 그냥 뭐 결혼하면 결혼해서 ‘네가 죽을 때까지 내가 보살펴줄게’하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그건 싫고.

망고: 우리는 그렇게 못하는 몸으로 태어났다니까. 인정을 해야 돼. 

유부: 진짜로. 그러니까 이게 사람은 언젠가 누구한테 의존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데, 그 순간에 내가 누구한테 과연 부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좀 되게 큰 이슈인 것 같아. 

망고: 나는 A지만 혼자라고 느낀 적은 없고 친구가 많아서. 너희들도 다 친구 많아. 내가 진짜 깊은 관계를 맺었던 동성 친구들 특징이 그거야. 나는 이 친구를 잠재적인 무성애 연방 가입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는 게 진짜 헛된 기대더라고. 이 친구는 언젠가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나 좋아하는 사람 생긴 것 같아’ 이런 대화를 나누고. 이때 우리가 필수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사회성이, 내가 아무리 관심이 없더라도 ‘완전 재밌다. 얘기해줘.’잖아. 그런데 이 얘기를 어디를 가도 못하는 이유가, 그러면 ‘내 얘기도 불편하려나?’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내가 언제 한번 유부랑 같이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 그런데 유부가 나랑 똑같은 반응을 하는 거야. 그때 너무 좋은 거야. 이제 외롭지 않은, 그 따뜻한 감각.

버섯: 유성애자의 무성애에 대한 감각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

모음: 망고는 우리가 친구가 많다고 얘기했는데, 나도 많다고는 생각해. 그런데 이게 일반적인 수준에서 많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 왜냐하면 일단 깊은 관계를 맺는 친구가 많이 없어. 내가 생각했을 때 내 인간관계가 너무 협소해. 그게 좀 중요한 것 같아. 내가 나를 정의하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연락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 내 친구는 몇 없어.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들이, 유성애자들이 내 앞에서 쉽게 자기 연애 얘기를 하지 않아. 그게 너무 ‘고마워’. 그래서 내가 그들의 연애 얘기를 알게 되는 건 연애 시작했어, 헤어졌어 딱 이 두 개야. 그리고 나한테 연애 얘기를 하는 사람은 딱히 내 친구가 아니야.

버섯: 아, 나는 오히려 친구를 넓게 정의해버렸어. 아까 유부가 말한 관계 깊이의 적정선처럼. 개개인마다 내가 느끼는 친밀도는 다 다른데, 그냥 난 그 사람이랑 ‘이 정도’면 되게 친한 거야. 이렇게 그냥 생각해버려. 물론 내가 나도 이제 손에 꼽자면 정말 얼마 안 되겠지만, 그냥 너랑 나는 이 정도 관계로도 나한테는 정말 친한 친구다. 1 대 1로. 그냥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면 친구가 되게 많겠지. 나는 그게 더 편한 것 같아. 나와 내집단이 될 수 있는 사람, 이런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생각하는 게 편해.

유부: 그 집합들이 많이 뭉쳐 있을 경우에는 절친이 되는 거지.

버섯: 그렇지. 바로 그거야.

모음: 네트워크 이론의 현실판이네.



무성애자는 사랑하지/사랑받지 못하나요?


유부: 나 고백 공격받은 적이 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는데 이게 대학 들어와서 처음 받았던 공포의 고백 공격이야. 물론 그 이후로도 다른 퀴어한테도 고백을 받고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가장 편견 어린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에. 그 사람도 신입생이고 나도 신입생인데, 예전에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 만났다가 연락이 안 됐다가 같은 대학에 입학한 걸 알고 만나자 해서 만난 남자애가 있었어. 그때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내가 뭔가 얘기를 할 거리도 없고 그래서 그냥 그 친구가 말하는 걸 주로 들었어. 근데 항상 나한테 고백을 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특징은, ‘들어주는 나’를 너무 사랑한다는 거야. 그 사람들은 별 이유 없어. 그냥 말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근데 그게 나인 거야. 그래서 다들 고백을 하는 거지.

모음: 세상에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그래. 

유부: 맞아. 사회가 잘못된 건데 아무튼 그래가지고 걔가 그렇게 고백을 해서 너무 당황스러워가지고… 물론 ‘기류’가 느껴지긴 했어. 그래서 답장도 엄청 늦게 하고, 원래도 늦게 하는데 더 늦게 하고 그랬는데. 눈치를 못 채고 고백 공격을 해버렸네.

버섯: 그래서 어떻게 됐어?

유부: 그래서 내가, 나 무성애자잖아. 무성애자 뭔지 알아? 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어. 다 설명을 해주고, 이래서 나는 안 사귄다고 말했더니 갑자기 걔가 눈물을 똑똑똑 흘리면서 “그러면 사랑을 못 받는다는 거잖아.” 이러는 거야. 완전, 사랑을 못 받는 네가 불쌍하다고 그러는 거야. 그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좋은 거고, 막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버섯: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랑을 받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지? 무슨 말이야?

모음: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정말 성애만을 가리켜서 그래.

유부: 그치.

버섯: 아. 내가 또, 내가 또 세상에. 그동안 인생에서 받아온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지? 이렇게 생각했어. 그게 아니라 완전 성애를 말하는 거구나. 이제 이해했어.

모음: 그러니까. 정신 차려.

망고: 나도 이제 고백 공격 얘기를 듣고 비슷하게 얘기할 게 있어. 고3 여름방학 때, 저랑 반에서 제일 친한 남자애였어요. 이 친구는 수학 1등이고 나는 국어 1등 이런 식이었어. 친구로서 나는 되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고 너무너무 좋았어. 그런데 이걸 두고 ‘쟤네 사귄다’ ‘쟤네 서울대 가서 커플 과잠 입을 거잖아’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 거지. 나는 진짜로 이게 왜 이런 장난을 하지? 했는데 그게 재밌었나 봐. 그걸 계속했어. 근데 문제는 나는 그 친구도 별로라고 생각할 줄 알았어. 그런데 걔는 좋았던 거지. 그래서 얘는 몇 차례의 고백을 거쳐가지고 나한테 파이널 고백을 했어. 이게, 싫다는 말을 못 알아들어. 눈치가 없어. 첫 거절을 했을 때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그럼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야. 걔 입장에서 굉장히 로맨틱한 순간이었겠지? 그런데 나는 엄청 상처받았거든. 왜냐면 내가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였잖아. 그런데 그 친구가 이 관계를 일방적으로 바꾼 거잖아. 이 모든 게 나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어.

모음: 나는 이렇게나 현대적인 개념인 연애라는 게 이렇게 단시간에 퍼진 것도 이해가 안 돼. 

유부: 진짜 그렇긴 해 진짜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버섯: 주변에 이제 연애하는 애들을 보면 가끔 진짜 진지하게 혼자 고민해 볼 때가 있어. 그러니까 쟤는 쟤가 마음에 드는 거고 쟤는 쟤가 마음에 드는 건데 뭐가? 그 사람이 별로라기보다 그런 관계라는 걸 하나 더 형성할 굳이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서로를 정의해 놓는 거지? 귀찮지 않나?

모음: 그러게.

버섯: 그런데 나 나름대로 자부하는 게 있어. 나 연애 상담 되게 잘해줘.

망고: 나도 진짜 잘해줘. 난 무당이야. 이제 내가 왜 이렇게 연애 상담을 잘해주는가에 대해서 흥미로웠던 적이 있어. 포인트는 애초에 그 관계에 관심이 없어서야. 왜냐하면 내가 어느 한쪽에 더 감정을 많이 이입할수록 못 해주잖아.

버섯: 맞아.

망고: 근데 애초에 난 그 관계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럼 네가 좀 이렇게 해봐.’ 이런 거 서슴없이 막 할 수 있어. 그리고 사실 궁극적인 만능 해결 방법이 있어. 바로 헤어지라고 말하는 거야(ㅋㅋ).

모음: 근데 나 여러분의 고백 공격 이야기를 듣고 되게 궁금했던 게 있는데, 나는 인생에 한 번도 고백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어. 

유부: 그것도 의외다.

모음: 나는 그거를 뭐라고 생각했냐면 난 내 주변에 무성애자가 없었어서. 나는 내가 무성애자의 대변인인 것만 생각해 왔단 말이야. 나는 그래서 이성애자들은 본인이 어떤 연애 안 함의 아우라가 풍겨서 남들이 어떤 성향적 접근을 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버섯: 와. 뭔 말인지 알 것 같아. 

모음: 그치. 근데 여러분의 그 고백 공격 얘기를 들으니까 이것도 뭔가 되게 특수한 경험인 건가?

버섯: 근데 혹시 당신도 뭔가 놓친 건 아니에요?

유부: 가능해. 누구는 입력값을 눌렀는데 저기서 처리가 안 됐을 수도 있어.

모음: 아니야. 왜냐하면 나한테 그런 배타적이고 집요한 연락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유부: 아니 그냥 시도를 했는데 차단당한 걸 수도 있어.

버섯: 근데 방금 말한 연애를 하기 위해, 마치 사냥 모드처럼 되는 그런 거. 약간 예를 들면 저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지나간다고 하면 뭔가 거울을 본다거나, 약간 이런 거 있잖아. 그런 게 없어서 난 편해. 나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걸 생각한 순간부터 되게 편해진 것 같아.



무성애자로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버섯: 한창 A가 뭘까에 대해서 되게 궁금해했던 시절이 있어. 그때 주변 유성애자들이 훨씬 더 이거에 대한 대답을 잘해줄 것 같은 거야. 그들도 퀴어였으니까, 사회가 만들어낸 어떤 ‘정상성’을 갖춘 연애가 아니라 되게 숙고의 시간을 갖고 퀴어라고 정체화한 사람들의 연애는 뭘까? 그들이 ‘난 이 사람을 사랑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얘기하는 그 사람은 뭘까? 그럼 나는 그걸 가지고 사랑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물어봤어. 그러니까 사람을 사람으로 좋아하는 거랑, 이 사람을 사랑하는 유성애적으로 사랑하는 게 차이가 있느냐.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유부: 진짜 궁금해. 근데 너무 A다.

버섯: 너무 궁금하지 않아? 너랑 나랑 친구인 걸 넘어서 왜 사귀고 싶은 건데? 사귀는 게 뭔데? 다 떠나서 누군가를 내가 그렇게 사랑한다는 감각이… 그런 질문들을 막 했는데, 기억에 남는 대답은 없는 것 같아.

모음: 근데 그래서 그게 사랑인 것 같아. 명확하지 않은, 그냥 약간 감정적인 행위인 거지.

유부: 나는 라벨링이란 개념에 대해서 진짜 예전부터 엄청 고민을 했었어. 그러니까 어떤 범주화 자체가 결국 누군가가 부르기 편하려고 만든 게 라벨링이잖아. 그래서 라벨링을 함으로써 물론 나도 편해졌고 내가 조금 더 내 어떤 특성을 이해하기에 다른 사람들도 이러이러하니까 어떤 클러스터일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굳이 내가 나를 그렇게까지? 싶은 거야. 그럼에도 난 유성애자랑 구분은 되고 싶은 거야. 왜냐하면 유성애자들은 너무 다수니까.

버섯: 그건 맞아.

유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나의 세상이 분명 존재하는 거지.

망고: 맞아. 맞아.

유부: 그래서 아무리 모든 분류가 사라지고 하는 걸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한다고는 해도 아무튼 이들이랑은 그게 좀 분리가 되고 싶은 거야. 그게 좀 안전할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라벨링이라는 건 결국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고, 지금 라벨링의 그 세세한 범주화가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망고: 이제 나는 퀴어 다수 문화를 진짜 싫어하거든. 물론 무지개 있으면 반가워. 스티커 있으면 반가워. 그런데 무성애의 상징색이 엄청 칙칙한 이유는 사랑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유성애자들은 무지개 쓰고 예쁘고 밝은색 막 쓰면서… 무성애자는 왜 까만색이냐고.

유부: 맞아. 우리는 매일 양철 인간이고 케이크만 먹어.

망고: 내가 퀴어임을 아는 내 친구가, 비혼주의자 친구가 최근에 남친을 사귀고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하고 있더라는 말을 해줬어. 둘 다 대학생이니까 미숙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둘 다 엄청 진지하게 생각하는 현실적인 애들이더라. 그 어떤 되게 진정하고 깊이 있는 사랑 때문에 비혼주의자였던 애가 이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좋아 보였다. 이러는 거야.

유부: 진정한 사랑(ㅋㅋ)

버섯: 진정한 사랑을 관철했다는 얘기예요?

모음: 비혼주의자가 결혼을 고려하게 됐다?

망고: 미숙한 자들이 서로 진정한 사랑을 만나서 결혼을 고민하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얘기를 들고 온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안 됐어. 막 변명하더라고. 근데 나는 일단 이 비혼주의라는 신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냥 결혼을 안 하는 거지 무슨 비혼 ‘주의’야. 어떤 ‘주의’가 사랑으로 꺾일 신념이면 그 시점에서 이미 아닌 게 아닌가. 그냥 사랑을 하면 결혼을 하는 거지, 우리는 그걸 그냥 ‘정상인’이라고 불러요. 진정한 사랑 이야기를 인상 깊다고 봐야 하나? 얼마나 사람들이 유성애라는 어떤…

유부: 근데 유성애자들 특징이 자기들 연애 이야기만 안 하면 되는 줄 알아. 왜냐하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면서 보낼 테니까 본인의 일상 얘기를 하려면 그것도 필요하겠지. 그래서 어느 정도는 즐겁거든. 그래서 그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막는다기보다는 그냥 좀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 유성애에 대한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을 좀 한 번 고민해 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고려 없이 연애 이야기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해.



무성애자라서 좋은 점이 있나요?


모음: 사람들이 날 소수자로 안 보는데 나는 소수자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다른 소수자한테 쉽게 감화가 돼. 그래서 좀 더 내가 재수 없게 굴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방파제가 된다는 점은 참 긍정적인 것 같아.

버섯: 좀 슬픈데?

모음: 진짜 이렇게 생각해. 만약 소수자성이 없었다면 사실 좀 더 재수 없는 인간이 됐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뭐 이런 거?

유부: 퀴어 집단 내에서도 워낙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퀴어가 존재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퀴어들이 존재하는데. 그런데 아무튼 그 다수 집단에서 활동하는 퀴어들조차도, 너희들도 이 집단에서는 나름의 다수야! 라고 이야기를 하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어. 그래서 날 화나게 할 때 너희들이 유성애자라 그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버섯: 언제 그랬어?

유부: … 많이 그랬지. 그냥 레즈랑 게이랑 바이랑 다 싫어!

망고: 나 너무 행복해! ‘레즈랑 게이랑 바이랑 다 싫어!’

망고: 사실 나는 성애가 기본적으로 있는 게 이상하고 이것 때문에 다들 사리 분별을 잘 못하는 것 같아. 맨날 헤어졌다고 울 때마다… 무성애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제일 좋은 건, 성애적인 관계가 아닌 타인을 대하는 인간적인 능력이나 역량이나 아니면 어떤 감정의 섬세함이나 깊이 이런 면에서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리고 그게 내가 A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버섯: 그치. 망고는 훌륭하지.

유부: 맞아. 관계의 깊이에 다채로움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내 생존을 위해서라도.

모음: 이 마지막 멘트에 너무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 좋다.



어떤 영화를, 어떤 책을, 어떤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있을 테다. 그리고 어떤 영화를, 어떤 책을,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을 테다.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성애도, 연애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섹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 누군가와 섹스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유성애가 있다면, 무성애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한 유성애 중심 사회에서 무성애자는 너무도 쉽게 당연하지 못한 존재가 되곤 한다. 그러고는 무성애자를 둘러싼 오해가 빗발친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냐, '이성의 맛'을 못 봐서 그런 것 아니냐, 사랑할 줄 몰라서 그런 것 아니냐, 다른 성소수자들에 비해 편하긴 하겠다, '정신적인 문제' 아니냐, 독신주의/비혼주의와 뭐가 다르냐, 아직 '운명의 상대'를 만나지 못해 그런 것 아니냐,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니 슬픈 일이지 않냐.

되려 질문하고 싶다. 왜 귀를 비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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