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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나에게로의 초대

나가며

by 평범한 직장인

우리는 생각을 말로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언어가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모두 담지 못합니다. 나의 생각을 말로, 글로 표현하는 순간 나의 생각과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논리를 기반으로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논쟁에 지고 와서 방에서 곱씹어보면서 왜 그 말을 못 했는지 한탄하며 이불 킥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패배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논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 사람 말이 진리가 되고, 진 사람 말이 거짓이 되지는 않습니다.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단지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논리가 꼬이게 만드는 스포츠라는 인상이 강할 뿐, 정말 본질적인 논의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는 어렵습니다.




글은 조금 더 생각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글을 통한 토론을 하는 경우, 즉각 반응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표현할 수 있고, 조금 더 자신의 생각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름 나의 생각을 다듬어 글을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1막을 내리려 합니다.




공대해 진학하여 교양 수학으로 초반에 배운 것이, 제목만 기억이 나고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입실론 델타입니다. 마치 대학 수학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의 귀에 들어올 수 없는 내용을 모든 이과 계통 학과에서 처음에 가르치는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이후에는 단순히 고교 때 배운 수학의 심화 과정을 가르치는 것을 보아, 잘은 모르겠지만 이과생들이 학문을 하는 탐구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입실론 델타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극한을 더 엄밀하게 정의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터무니없이 기본적인 개념부터 의심하고 정립해온 것이 서양에서 시작된 과학과 수학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 방법에는 같은 조건에서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며, 결과가 다르다면 단순히 그 사람의 권위 만으로 옳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대 학자가 새로운 개념의 논문을 내더라도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것이 과학의 큰 장점입니다. 물론 과학계에도 권위에 의한 착시가 많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불합리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동양의 수학과 과학이 서양보다 훨씬 발달을 하였다고 합니다. 동양 철학 역시 마치 현대 과학을 꿰뚫는 것 같은 통찰을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 동양의 직관이 매우 뛰어난 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직관적으로 당연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의심하고 끝없이 탐구하여 쌓아 올리는 과정은 매우 느리지만, 그 지식이 쌓여서 생기는 발전 속도는 어느 시간을 지나면서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직관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을 수학과 과학으로 정립하여 공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도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을 의심하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정치 분야에도 이런 면이 더 적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여론몰이와 가짜 뉴스에 현혹되거나, 본질적인 것이 아닌 내용으로 토론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을 그냥 재미로 하고, 공정한 사회를 더욱 추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는 과학의 정확한 증거처럼 선악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또한 과학과 같이 특정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권위와 현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묘히 왜곡된 정보로는 사실 판단이 어렵고 편견과 아집 속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실 정치와 사회는 절대선과 절대 악을 나누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털어서 먼지가 안 나기는 매우 어려우며, 특히 정치 집단 구성원 모두가 성인의 삶을 바랄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집단이 되었던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혐오에 빠져서 단지 세상 욕만 하며 살기 쉽지만, 결국은 바보처럼 보이지만 머리가 좋은 정치인들에게 득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우리가 정치 혐오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정당도 내 생각과 같지 않고,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럴 것입니다. 나는 분노를 하지만 사실 내 분노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정치인이 어이없는 부정을 저질러도 나는 욕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클 것입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존재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절대로 내 생각대로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정이 없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모두가 성인인 사회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수많은 표 중에 한 표밖에 행사할 수 없는 일반 시민은 개개인이 더 현명해져서 휘둘리지 않는 눈을 지니려 노력해야 합니다. 단순한 몇 가지 사례를 보지 말고 전략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길게 보아야 민주주의의 장점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만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장 반대하는 세력을 이기는 세력을 지지"하는 전략적인 생각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최대의 표를 얻는 집단이 가장 강력해지게 되며, 보통 큰 두 개의 유력 세력이 격돌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개의 세력 중 하나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하는 행동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정말 최악의 세력을 고르고, 이를 이길 수 있는 세력을 지지하여 최악의 세력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최악의 세력이 제거가 된 후에는 반드시 다른 유력한 세력이 생길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또 최악을 가려내고 이길 수 있는 세력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최악의 세력이 과거에 지지하던 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치열하게 서로의 약점을 들춰내려는 정치인의 말과 뉴스만으로는 우리가 진실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가장 나쁜 세력부터 하나씩 없애 나가는 마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싸워나가야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부패하는 것의 가장 큰 책임은 그들에게 휘둘려서 판단을 잘못하는 국민에게 가장 크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현대 사회가 모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고달픈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하여 경제를 잘 알아야 하며,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고달프지 않게 세상을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살면 언제나 이용당하고 손해 보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 모든 구성원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제도이며, 구성원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수준에 세상이 맞춰지는 제도입니다.




이러한 바쁜 사회에서 어쩌면 삶의 의미를 찾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일하기만도 바쁜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고 있지만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누구나 죽는 것을 확실하게 알지만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인간의 존재를 과학의 발달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아직까지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의식의 존재 여부 등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직까지 완전한 내 삶의 의미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이런 탐구가 일단 현재는 저의 삶의 일차적 의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지치지 않고 틈틈이 생각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멋있는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삶을 영원히 산다고 가정하면, 정말 무시무시한 삶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누군가의 관계를 통해서 행복을 비롯한 각종 감정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삶의 의미가 아닐지라도.


적은 글로 모두 표현이 되지 않은 삶과 죽음, 나와 우주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생각은 더 정리하여 다시 나에게로의 초대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리며 나에게로 초대 1막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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