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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Oct 22. 2023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착각

524 악법은 고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확실히 나이가 든 것 같이 느껴져 조금 슬프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는 정말 거의 모든 국민이 스포츠에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 스포츠 관객은 요즘이 더 많으니 정확히 말하면 스포츠라기보다 국가 대항전이라고 할 수 있죠. 제 기억에 있는 국제 대항전은 88 서울 올림픽부터입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한 나라에 둘러 쌓여 고통받는 약소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주입받은 세대이기에 스포츠 각 분야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면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경기를 보다 보면 분통이 터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오심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으로 인해 불이익이 생기면, 특히 그 오심이 경기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순간이라면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 끝까지 치솟게 되곤 합니다. 올림픽에서 오심이 나오는 경우에도 화가 나지만, 월드컵의 경우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올림픽은 여러 종목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관심이 분산되는 것에 비해 단일 종목에 1점만 먹혀도 승패에 치명적인 월드컵 경기에 나오는 오심은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들죠. 물론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에 오심이 아님에도 오심으로 생각하고 분노를 하기도 합니다.


요새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오심이 나오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어릴 적에는 왠지 뭔가 멋있는 이 말에 수긍을 하며 분을 삭이곤 했습니다. 심판도 드라마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니 좀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비디오 판독 같은 기술에 대해 연맹에서 단호하게 적용을 거부했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라도나가 명백한 핸들링으로 골을 넣었음을 인정했음에도 판정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신의 손'이라는 별칭이 붙으며 레전드의 중요한 에피소드로 다루어지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심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대로 공정한 룰을 만드는 입법부가 있고, 룰을 어긴 사람을 심판하는 사법부가 있고, 룰대로 진행을 할 수 있게 집행하는 행정부가 있죠. 그런데 잘못된 룰이 있거나, 잘못된 심판을 하거나, 잘못된 진행을 할 경우에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지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회 질서 유지 측면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따르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잘못된'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룰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룰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닐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스포츠를 볼 때 오심이 아님에도 오심으로 판단하고 흥분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특정 룰을 딱 잘라서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래서 '악법도 법'인가 봅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한 말도 아니라고도 하고, 독재 정권에서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말도 있지만 소크라테스가 잘못된 판결에 저항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것을 보면 와전은 됬지만 아주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찜찜합니다. 악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니 말입니다. 사실 이는 완벽한 법이 없다는 가정하에 계속해서 논의와 수정의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의와 수정을 하는 과정 중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소급 적용을 할 경우 법 원칙이 흔들린다는 점 때문에 안타깝지만 기존 룰을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필수적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한 논의와 수정을 이루어나간다는 전제가 없다면, 악법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며, 법의 권위는 점점 떨어질 것입니다. 스포츠에서 오심은 심판이 열심히 뛰어다녔음에도 못 본 경우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공정하게 판정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음에도 이를 활용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잘못된 룰을 고수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며,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수에 의한 오심은 독재를 위한 법, 특정 계층을 지키기 위한 법과 비슷하며,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결국 심판의 권위를 깎을 뿐 아니라 스포츠 종목 유지마저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 질서를 혼란하게 만드는 사람은 룰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제대로 심판하지 않으며,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룰이 개정되는 도중에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이해를 해도, 그런 상황을 방치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룰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리된 세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짜고 특정 계층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룰을 바꾸고 적용한다면 룰은 권위를 잃어야 정상입니다. 누구도 혼란스러운 사회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더러운 세상 망해버려라'라고 외치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있다면, 불손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런 발언을 하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인지 생각해 볼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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