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사람을 범주화시킬 때 생기는 오류
셀 수 없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쁜 재벌, 권력자와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정의로운 주인공의 대립 구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왜 항상 이런 구도로 작품을 만드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재벌이 착하게 세상을 사는 이야기나 돈 없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며 계속 돈 없이 사는 이야기는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부터 사람들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스토리에 열광해 왔고, 때문에 그런 구도의 작품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다 보면 생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강자는 나쁘고 약자가 정의롭다는 마음입니다. 생각해 보면 뉴스에 나오는 대부분의 문제는 강자들이 발생시킵니다.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걸리면 약자들에게 뒤집어 씌워 분노를 하게 만들죠. 소위 꼬리 자르기라고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자주 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분노만 할 뿐, 딱히 바로잡히는 경우도 많이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정의롭지 않은 약자들을 보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약자가 강자보다 더 정의롭다는 과학적인 근거나 통계는 딱히 없을 뿐만 아니라 강자인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는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약자와 강자를 정의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막연히 가진 약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 사람의 생각이 급변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기존의 믿음에 대한 배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강하게 반대 생각을 자리 잡게 만들죠. 약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강화되고, 강자에 대한 존경심이 극도로 올라가게 됩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사실 돈이 없는 사람이 착하게 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말이죠. 가난할수록 더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으며, 추한 싸움도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들의 싸움은 뉴스에 보도가 될 정도로 크지 않을 뿐이죠. 강자들의 불의에 화를 내던 사람이 변하는 것은 이런 약자들의 추잡한 싸움을 몇 번 목격하면서 부타일 것입니다. 집회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기에 시위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전문 시위꾼의 행태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편의점에서 갑질을 하며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는 사람은 사실 누군지 모를 수밖에 없는 약자가 대부분이죠. 얼마 안 되는 부모의 재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법정 싸움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무원들을 가장 심하게 대하는 악성 민원인 중에는 기초 수급자가 많다고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하다 보면 오히려 큰 일을 하다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스트레스 속에서 갑질을 하다 과도하게 비난을 받는 부자들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오히려 존경스럽게 생각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은 너무 극단적으로 반대쪽으로 기운 모양새입니다. 약자가 정의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강자가 정의롭다는 말이 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약자와 강자의 정의도 애매합니다. 약자는 누군가에게는 강자가 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사람을 약자와 강자라는 카테고리로 편을 을갈라놓고 생각하니 한쪽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약자나 강자나 똑같은 사람이고, 크고 작은 정의롭지 않은 일들은 어느 부류에나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약자의 불쌍하고 힘든 점에 공감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지원을 유도하거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강자의 부정이나 갑질을 봐줘야 한다는 생각 모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공감만으로 판단을 하면 안 됩니다. 단순히 화가 나는 이유로 하는 주장이 적용되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약자를 돕는 이유는 약자가 정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돕는 것이며, 그 정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토론을 하고 의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약자가 저지르는 추한 행태는 당연히 처벌해야 하며, 강자가 저지른 부정은 현재 그 사람의 위치와 상관없이 더 크게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자가 저지른 부정으로 강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사람이 약자가 되었을 것이며, 더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위치이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분노는 자연스럽지만, 분노가 전부여서는 안 되며 이성적인 의견이 우선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