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정부에서 가짜뉴스, 괴담을 잡겠다고 난리입니다. 사실 가짜뉴스가 주는 부작용은 상당합니다. 회사 메신저로 자주 소위 찌라시가 돌곤 하는데, 어떤 사람이 조작해서 찌라시를 퍼트렸더니 30분 만에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새삼 정보가 퍼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A.I를 통해서 얼마든지 쉽게 가짜뉴스를 그럴듯하게 조작할 수 있으니 정부에서 우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가짜 뉴스고 어떤 것이 진짜 뉴스인지 판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메이저 언론사나 공중파 방송이 믿을 만한 '진짜 뉴스'만을 내보낸다고 생각하면 좋은데, '기레기'라는 단어가 생긴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공신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진짜 뉴스'를 정의한다면 이건 현대판 용비어천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박사나 교수들의 글과 말을 '진짜 뉴스'로 정의하자니,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많고, 그중에서도 돈에 의해 오락가락하는 지식인이 많은 것도 현실이죠.
어린 시절 친구들과 서로 우기며 싸웠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손오공이랑 프리더랑 누가 이길 것인지." 같은 작가가 그리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쓸데없는 것으로 많이 싸우곤 했는데, 대부분 이기는 쪽은 누군가의 권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형이 그랬어.", "어느 방송에서 그랬어." 같은 말을 할 경우 반박할 수가 없어지고 논쟁은 종료가 되곤 했습니다. 복잡해진 어른 세계에서는 맞는 것, 아는 것의 기준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때문에 정부에서 '가짜 뉴스'를 잡겠다고 하면 먼저 어떤 식으로 검증 과정을 거친 뉴스가 '진짜 뉴스'인지 정의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상 검증된 사항을 진짜라고 정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사회생활이 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때문에 당시까지의 진짜라고 정의되어 있는 사실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를 보완해 주는 시스템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안다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니다. 세상에 어떤 절대적 진리도 언젠가 부정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 과학 혁명이 일어나던 20세기 초에 과학자들은 상당히 자신감이 넘쳤었고, 얼마 안 가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을 꺾는 새로운 이론이 계속 발견되면서 현대의 과학자는 누구도 100% 맞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어른들을 보면 어린 시절 철없이 우기던 것보다 더 심하게 자신의 주장만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쨌든 늘 학습을 해야 하고, 반성도 하곤 하지만, 어른들은 닫힌 생각 속에서 더 이상 학습도 반성도 없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모두 배척합니다. 모두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사회의 갈등이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많은 심각한 갈등은 모두 자신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에서부터 나오게 되니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생각의 프레임이 있으며, 모두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잘 들어야 합니다. 갈등이 비교적 심한 남녀갈등이나 정치갈등의 토론을 보면 애초에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딴소리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신의 앎이, 삶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워져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확증편향이 강해집니다. 자신의 사상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해 인생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많이 보입니다. 모두가 아는 것이 없는데 그런 신념이 중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생각해 보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이 본인의 시야를 더 넓혀줄 텐데 아쉽습니다.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고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혹시 너무나도 강한 자신의 삶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