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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Dec 16. 2023

위해서라는 착각

529 사유를 멈춘 사회

영화 '오펜하이머'의 오펜 하이머는 '국가를 위해'라는 신념을 가지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습니다. 나치 전범으로 유명한 아이히만 역시 '국가를 위해' 충실히 싫어하지도 않는 유대인 학살을 위한 이송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정치인들은 항상 '국민을 위해' 선택을 했다 합니다. 강압적인 직장상사는 '회사를 위해' 어쩔 수 없다 합니다. 방구석에서 심한 악플이나 다는 사람도 '정의 구현'을 위한다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있죠.

 



사람의 천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는 예부터 치열한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그 논쟁의 결론을 제가 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분명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복잡해서 누구나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선한 사람이 되기도,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이에게는 선한 사람이 되기도, 어떤 이에게는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혼란스러운 가치 판단의 세계에서 사람은 나름의 주관을 만들어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주관의 근거에는 "~를 위해서"가 깔려 있습니다.


행동의 영향력이 클수록 더 큰 정당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큰 일을 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를 하게 되는데 본인의 확고한 정당성이 있으면 선한 자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곤 합니다. 때때로 누가 봐도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정당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독재를 행하는 정치인은 항상 자유를 강조하고, 부패한 정치인은 정직을 강조합니다.




사실 사람은 무언가를 위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 부모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지구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살죠. 이게 없으면 사실 사는 의미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회 문제가 이 위하여에서 나오게 됩니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뇌물을 쓴 기업인이, 자신의 회사를 위해서, 수많은 직원들의 생계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 왠지 동정이 갑니다. 부정을 저지른 정치인이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들고 나오면 덮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원을 혹사시키는 상사는 회사를 위해서라는 말을 당연스럽게 합니다. 위해서라는 말을 적용시키면 많은 행동이 정당화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발전을 위한다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억압해 온 역사에 살아왔고, 살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서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치에 대해 언제나 사유하지 않으면 않는 순간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회사의 이익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 회사에서 부정한 돈을 건네도록 시킨다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을 명할 경우 가치 판단을 해야 합니다. 시켜서 했고, 회사를 위해서 했다고 항변하는 것은 나치의 아이히만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와 방향이 맞는 정치인은 누구라도 지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치인이 권력을 남용하고, 큰 부정을 덮는 작업을 하는 것이 보임에도 "위해서"라는 변명만 듣고 지지하는 것은 사유를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원래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불편해 하기 마련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말을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아이는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을 가지고 반항을 하게 되고, 이를 사춘기라 부립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하게 되면 수치스럽게 느끼며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인터넷 사회가 되면서 이는 더 넓은 세대에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뮤니티에 속해서 사유 없이 자신의 옳음만을 확인합니다. 토론은 없고 싸움과 논쟁만 있습니다. 과거에는 소위 배운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전문가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온통 사이비 전문가 투성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사유를 멈추고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대한 조롱과 분노만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유는 사유를 멈춘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사유를 멈춘 사람이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오늘도 계속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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