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 재산이 그 사람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오너 일가가 지배를 하고 있고, 월급 사장을 고용하여 운영을 합니다. 사장부터 임원, 정규직, 계약직 직원까지 모두 월급을 받고 일을 하고 있으며, 회사가 망하더라도 해고를 당하면 당했지 자신의 돈을 손해보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월급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직급은 상당히 큰 차이를 만듭니다. 사장의 한마디에 임원들은 꼼짝을 못 하고, 임원의 한마디에 일반 직원들은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요? 이런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회사에서 사장과 임원들에게 부여한 단 하나의 권한, 바로 인사권에 있습니다. 사장은 임원의 목줄을 쥐고만 있는 것 하나만으로 누구도 반항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돈줄을 쥐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현대 사회는 돈은 사회를 통제하는 거의 유일하고 강력한 수단입니다. 윤리를 어기더라도 돈이 되는 일 때문에 저질렀다고 하면 점점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재벌의 경우 법을 어기더라도 용서를 받고, 오히려 법을 정당하게 집행하려 하는 사람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벌은 큰돈을 좌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돈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받들여 모시는 것을 많이 봅니다. 힘으로 민중을 누르면 튀어 오르지만, 돈으로 누르면 이해를 합니다. 과거 노예 제도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큰돈을 주면 자발적 노예가 되어 24시간 충성을 다합니다. 설사 그 때문에 몸이 망가지고, 심하면 죽는 경우까지 생겨도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돈이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위인은 장군,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가가 대부분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추앙을 받습니다. 남과는 차별적인 선택을 해서 큰돈을 번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금본위제가 폐지된 후 큰돈을 버는 방법을 보면,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과학자보다 조폐 국장 자리에 더 진심이었던 아이작 뉴턴이 금본위제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전부터도 돈은 단지 교환 수단이었고, 대응되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즉 돈을 은행에 가져갈 경우 은행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금을 내어주어야 하는 법을 정지시키면서 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은 얼마든지 큰 가치를 매길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코인처럼 말이죠. 돈이 코인처럼 심하게 가치가 등락하지 않은 이유는 국가에서 보증하고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장 안정적인 가치를 지닌 돈을 기축통화로 지정하게 됩니다. 바로 잘 아는 달러죠. 하지만 미국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기축통화가 아니라면 미국의 인플레가 심해졌겠지만, 이 경우 전 세계로 인플레이션을 수출할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기축 통화의 위치를 점유하는 한, 미국의 위기는 곧 세계의 위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의 실질적인 가치가 없어지자, 금융이 득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을 모두 합치면 실물 경제 가치의 수십 배 이상의 돈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돈을 무한에 가까이 찍어낼 수 있다 보니, 과거 노동이나 경영을 해서 얻어낼 수 있는 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큰 부를 이룬 사람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는 노동력의 대가로 돈을 벌고, 경영자는 자본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돈을 벌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금융은 한도가 없으며, 돈이 돈을 버는 구조다 보니 점점 더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압도적인 부자들의 돈놀이가 계속될수록 돈의 가치는 더 떨어질 것입니다. 노동을 해서 열심히 돈을 버는 사람은 손해만 보고 바보가 되는 상황입니다. 사회의 문제지만, 사람들은 돈으로 이야기가 돌아가면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못 버는 자신을 탓하고, 자신에게 많은 자산을 못 주어서 뒤처지게 만든 부모를 탓하게 됩니다. 과거에 불합리하게 지배 계층이 권력을 부당하게 휘두르면 큰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심해지면 혁명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불합리한 사회적 제도로 큰돈을 벌어간 사람을 존경하고 찬양합니다.
이 사회의 제도는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불만이 있어도 제도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한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개돼지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휩쓸리지 않으면 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돈만 벌면 인정받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면서 만들어집니다. 돈은 중요하지만, 다른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을 추구한 인생의 끝을 생각하면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인생은 원래 허망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런 가치 없는 돈에 모든 것을 투자한 삶과 자신을 지키며 가치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을 추구하는 삶은 그 끝의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