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그래, 생각난다. 나는 원래 장난을 좋아한다. 소심하지만.
끊임없이 장난을 친다. 그렇다고 큰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소심하게 장난을 쳐놓고 오버하며 반응하는 아빠를 보며 킥킥 웃어댄다. 아기를 통해 잊고 있었던 내가 계속 보인다. 나는 점잖은 척 하지만 사실 장난을 엄청 좋아한다. 사실 재미주의자라고 칭해도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진지한 것을 싫어하고, 포멀 한 자리를 싫어하지만 눈에 띄는 건 싫어서 싫은 척하지 않는, 나는 태생적으로 소심한 장난꾸러기다.
장난을 치며 웃는 아기를 보면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나 싶다. 그냥 즐겁게 장난치고 킥킥대며 웃으면 좋을 것을 사람들은 뭐 그리 삶에 집착하며 싸우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음이 이렇다 보니 요즘 유명인에 대한 지나친 올바름 강요에는 좀 불만이 많다.
어린 시절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직업을 생각하다 보니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재능은 전혀 없는 것을 알기에 꿈조차 꾸지 않고 바로 포기해 버렸지만, 여전히 개그맨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다. 요즘 한 가지 바람으로 개그에 지켜야 할 선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매체에 따라 지켜야 할 선은 있을 것이다. 공중파는 공중파에 맞는, 유튜브는 유튜브에 맞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스탠드업 코미디에 맞게 선을 지켜야겠지만, 합의된 자리에서 구사하는 그것이 차별이든 패드립이든 재미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개그를 구사했다고 개그맨의 이미지가 상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국가의 검열이 불만이었다. 검열 때문에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어려운 사회가 싫었다. 특히 정치 개그를 못하는 사회를 자유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검열이 없어진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더 심하게 검열하고 옭아매게 되었다. 무슨 개그를 해도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유명인이 조금 실수하면 매장당하는 건 순간이다. 정치색을 밝히는 건 보통 결심으로 못하는 일이 되었다. 덜 재미있는 사회가 된 것이 재미주의자인 나에게는 못내 아쉽다.
요새 아이돌을 보면 춤, 노래, 무대가 완벽한 데다가 인성도 좋다. 팬들 앞에서 잠시 표정만 굳어도 논란이 되기에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고, 라이브 인방등을 많이 하니 한 순간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물론 연예인들이 인성이 좋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연예인도 좀 설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반항적인, 논란도 일으키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친구들이 통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분포에 양 끝단을 잘라내고 가운데만 남겨놓는 것 같다. 양 끝단에 있는 친구들이 보여주는 빛을 못 보는 것이 좀 안타깝다.
장난치고 킥킥 웃는 아기가 계속 그 마음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아기가 클 때쯤 세상이 좀 더 재미있어졌으면 좋겠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소 삐뚤어짐도 허용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자격지심이 없어져서 위트 있는 개그로 자신을 비하해도 너그러이 웃어줄 수 있는 사회면 참 좋겠다. 타인에 비난하는데 쏟는 시간에 조금 더 즐거움을 찾고 만들어내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 바람이 나만의 바람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