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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31. 2023

보건대학원생의 삶 톺아보기

Feat.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졸업한 지 4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이 브런치의 정체성을 위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보건대학원을 선택한 것은 나의 20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봉사단원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발도상국의 보건 이슈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목표로 보건대학원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막연한 시작에 비해 결론적으로 연구는 나의 성향과 꽤나 잘 맞았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를 더해가고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이 좋았다.

국제 보건 분야에 대한 나의 백그라운드와 관심을 이해해 주셔서 함께 연구주제를 고민해 주신 지도 교수님의 배려 또한 내 흥미를 높일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며 대체 어디서 막힌 건지 알 수 없어 코드 하나하나를 다시 되짚어가며 오류를 찾는 소위 말하는 삽질의 과정도 돌아보니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들이었다.

통계 결과로 나온 가설을 과학적 메커니즘과 레퍼런스들을 통해 증명하고, 논리적 구조로 하나의 이론을 도출해 내는 일련의 과정들은 음표 하나하나가 화음을 이루어 하나의 악보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같았다.


사실 그냥 수업만 듣고 시험으로 졸업하는 대학원 생활이었다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직장 생활을 잠시 스톱하고 온전히 풀타임 연구생으로 올인한 것이 처음엔 잘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연구자의 삶을 온전히 경험해 보고 나의 적성을 맞추어보기엔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한편 아쉬웠던 점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연구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연구가 안 풀릴수록 더욱 연구에만 몰두했다. 나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졸업할 때쯤에는 연구에 대해 좋았던 순간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과 마음만이 남아있었다.


대학원은, 연구는,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졸업 후 일하게 된 직장에서는 정기적으로 보건 이슈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는데, 아주 오랜만에 레퍼런스를 찾고 리포트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들에 정신없이 몰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아, 그랬지. 나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논문이 얼마 전 출간되었고, 이제 잠시 스톱했던 두 번째 논문의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두 번째 논문이 끝나갈 때쯤에 연구에 대한 나의 포지션은 어디 지음에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땐 나를 몰아붙이지 말고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연구와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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