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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드는 사람 지민규 Aug 09. 2020

언제나 마냥 순수하고 싶은 나

한 가수의 공연을 매년 일고여덟 번 찾으며

나다운 것은 순수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고, 어떤 거짓도 말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마냥 착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별 뜻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누군가의 분명한 잘못을 내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으며, 그 사람을 비난하고 무안하게 만드는 형태가 아닌 식으로 말하며 살고 싶다.


순수함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다. 사실 세상,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본질이 순수하기에 어려운 성질인 것 같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친구 사이에서,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굴라고 권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도 같지만, 궁극에는 틀린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외롭고 괴로운 우리 삶을 구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순수한 사랑의 힘밖에 없지 않나. 나를 위해 적당히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순수한 사랑의 형태가 맞나. 이기적임은 삶에 때때로 필요한 마음가짐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되도록 그 마음을 취하고 싶지 않다.


마음은 이렇다. 마음은 이런데, 나이 들어서 어른이 되어 일하고, 돈 벌고, 먹고살아야만 하는 문제가 찾아오다 보니, 사회에서 맺은 많은 관계 속에서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이 너무 쉽지 않다. 어떨 때는 내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특정한 누군가가 싫어진다. 누구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또 어떨 때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누군가를 봐도,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그냥 못 본 척, 모르는 척 넘기고 말자 하기도 한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런 나약한 나를 끊임없이 순수로 이끌어주는 한 가수의 음악이 있다. '처음 느낌 그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봄'과 같은 노래를 부른 가수. 슬픈 노래를 많이 불러 누군가에게는 마냥 우울한 가수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노래는 항상 순수한 사랑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노래를 오랜 시간 듣고 또 듣다 보니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가수를 너무나 좋아해서 한 해에 열 차례 공연이 있다면 일고여덟 번은 간다. 그러기 시작한 지 벌써 여러 해가 됐다.


그 가수는 노래가 삶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노래는 곧 그녀의 삶이기 때문에, 그녀가 노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볼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순수한 모습으로 노래를, 삶을 대할 수 있지. 숙연해지고, 슬퍼지고, 숭고해지고.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상을 살다 보면 내 마음은 저만큼 기울어져 순수에서 벗어난 방향을 향해 있곤 한다. 그럴 때 나는 가만히 멈춰 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더는 가지 말자고 한다. 그러다 공연 소식이 들리면 반드시, 여러 차례 찾아 그녀와 같은 마음의 시간을 보내고, 내 마음이 가야 할 방향을 온전하게 다잡는다.


2019년 12월 29일. 작년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그날. 노래를 마치고 무대를 떠나는 그녀를 조용한 박수로 떠나보내며, 객석에서 일어나 이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정말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런 거짓도 말하지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마음을 일기장에 적고, 머리에, 마음에 적어 나의 순수가 흐트러지려 할 때마다 소환하며 또 올해를 살고 있다.




집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가수이지만, 그녀는 10년 넘게 거의 매년 새로운 공연을 해주었다. 덕분에 내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기울기 전에 공연을 찾아, 이만큼 멀리 가 있던 것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항상 그 가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언제나 정제된 순수의 기운을 주어 나를 나답게, 내가 나다웠으면 하는 모습으로 이끌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 공연 때마다 그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기로 작정한 뒤로는 매해 그 가수에게 편지를 전해 왔는데, 올해는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로 공연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아 이런 글로나마 고마움의 마음을 전해보고 싶었다.


또 그 가수의 노래와 공연을 글로 되짚어 보며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이었으면 하는지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었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나는 언제나 마냥 순수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말하기에는 너무 허무한 말이기도 하고, 또 너무 머쓱한 말인 것도 같아서. 말하는 나보다도 듣는 사람을 너무 머쓱하게 만드는 말인 것 같다. "응. 그래....... 그러렴." 정도 말고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어. 무엇보다 내가 마냥 순수한 모습만 보이며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아니까. 입 밖으로 꺼내기에 민망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자신 있게 못 해왔던 말. 꽤 자주 못 그러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마냥 순수하길 원한다는 그 말. 이런 글로나마 적어 알려본다. 그래서 그새 또 얼마간 잃어온 나의 순수의 마음을 착실하게 가다듬어 내가 계속 나다운 모습으로, 나답길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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