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에게 수줍은 부탁을 하나 해왔다. 동원이가 공연을 하는데 티켓팅을 좀 해줬으면 한다고. 평생 안 보던 공연이 다 늙어서 보고 싶어진 것도, 코로나 시국에 공연을 보러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것도 민망하다며 적잖이 겸연쩍어하는 엄마에게 나는 영혼을 갈아 티켓팅해보겠노라 대답했다.
엄마가 어린 트로트 가수 정동원을 좋아한 지는 꽤 됐다.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동원이를 본 날부터 살금살금 '덕질'을 시작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고향 집에 내려가면 동원이가 광고하는 동원참치가 부엌에 한가득,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는 동원이 머그컵도 한가득, 냉장고에 붙어 있는 동원이 마그네틱도 한가득이었다(치킨도 동원이가 광고하는 호식이두마리치킨만 시켜 먹더라는).
내가 아는 엄마는 성당만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필사하는 것 외에는 딱히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는 더욱이 없었던 엄마가 갑작스레 (격렬한) 덕질을 이어가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덕질이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엄마의 덕질을 언제나 지지했다.
마음으로만 지지해오던 것을 이제 행동으로 보여줄 때.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동원이 공연 티켓팅 날 연차를 쓰고 동네에서 가장 빠른 PC방에 갔다(본래 티켓팅에 진심인 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는 공연을 대신 티켓팅해주는 건 이상하게 더 떨려서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행히 10년 넘게 이소라 공연 다니며 다져진 금손 실력(나는 1열 정중앙 좌석이 아니면 이소라 공연에 가지 않는다)이 발휘돼 꿀자리를 예매해냈다. 1층 세 번째 줄 거의 정중앙 정도의 좌석.
동원이의 인기가 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해서 넓디넓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전 좌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과연 이소라 공연 티켓팅과는 비교가 어려웠는데, 내가 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니…! 나는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피켓팅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당 당 하 게' 전하고, 공연 날까지 컨디션 관리 잘하고 있다가 서울에 조심히 올라오라고 일러줬다.
3주 정도가 지나 찾아온 대망의 공연 날. 엄마는 뚜비색 마스크에, 뚜비색 머플러에, 뚜비색 블라우스를 입고 등장했다(동원이 팬클럽 색깔이 뚜비를 닮은 형광 초록색이다). 조금 머쓱했는지 검은색 코트로 뚜비스러움을 반쯤 가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코 숨겨지지 않는 뚜비 착장에 "엄맠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당 미사 때 입을 수 있을 만한 무채색 계열의 얌전한 스타일만 고수하던 엄마가 난데없이 뚜비가 되어 나타난 모습에 한참을 깔깔거리다가 예약해둔 한정식집에 갔다. 미리 주문한 코스 요리를 먹는 내내 엄마는 이번 공연에 동원이가 무슨 노래를 부를 것 같다, 오케스트라랑 함께한다는데 동원이 목소리랑 오케스트라 연주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동원이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가수 중 최연소라더라 등등 나에게는 한편 TMI인 말들을 쏟아내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여덟 코스 요리보다 동원이를 향한 엄마의 덕심을 더 배부르게 먹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공연장에 가까워질수록 뚜비스러운 기운이 점진적으로 느껴지더니, 공연장 로비는 그야말로 뚜비 세상이었다. 운동화 끈까지 뚜비색으로 매치하신 분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뚜비색 풀착장을 하고 계신 분까지 수많은 동원이의 뚜비 팬분들이 계셨다. 엄마는 다양한 뚜비 친구들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검은색 코트를 휙 벗어 나에게 넘기고는 뚜비로 하나 된 세상을 만끽했다.
나는 충실한 수발놈이 되어 왼팔에 엄마의 코트를 가지런히 걸고, 예매해둔 티켓을 얌전히 수령하고, 엄마가 혼자 왔다면 꽤 헤맸을 것 같은 복잡한 모바일 문진표를 깔끔하게 작성하고, 입장하는 공연장 문까지 찾아준 다음에, 문제없이 자리를 찾아 앉았는지 카톡으로 확인까지 하고서야 근처 카페에 가 휴식을 취했다.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앵콜이 길어지는지 2시간으로 예정된 시간에서 30분은 더 지나 공연이 끝났다. 상기된 표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뚜비분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 뚜비를 어렵사리 발견해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냥 가기는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엄마를 공연장 앞 벽면 가득을 채우고 있는 동원이 공연 포스터 앞에 세워 인증샷까지 야무지게 남기고 나서야 택시를 타고 나의 서울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엄마와 나는 간단한 야식을 시켜 맥주 한 병 두고 나눠 먹었다. 야식을 먹는 내내 엄마는 오늘 무대 위에서 동원이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공연의 감상을 털어놓기 바빴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유튜브와 동원이 팬카페에서 오늘 공연 후기를 한참이나 찾아보더니 아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엄마는 잠에 들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나는 집 근처에 특별히 맛있는 일식집에서 초밥을 시켜 엄마에게 점심을 마련해주고, 마찬가지로 집 근처에 특별히 맛있는 카페에서 아인슈페너와 크로플을 시켜 디저트까지 즐기게 했다. 그러고 조금 쉬다가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엄마를 데려가서 버스에 잘 태워 고향 집으로 무사히 보냈다.
엄마를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서 괜히 나른해지는 길 위에서 나는 부모 자식 간에 존재하는 보호자의 역할이 이제 고스란히 뒤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들으면 "쟤 뭐라니"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아마 하겠지만), 1박 2일간 엄마에게 실로 융숭한 수발을 제공한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일고여덟 살 때 전봇대에 붙은 서커스 공연 포스터를 보고, 엄마에게 서커스를 보고 싶으니 티켓을 예매해달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서커스를 볼 날까지 몇 밤이 남았는지 세며 하루하루 잠에 들다가, 드디어 찾아온 공연 날 엄마가 데려간 레스토랑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던 기억이, 그러고 공연장에 들어가 별세상 같은 서커스 공연을 입을 떡 벌리고 봤던 기억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대단히 좋고 근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내가, 내가 번 돈으로 엄마에게 공연 티켓을 예매해주고, 한정식 코스 요리를 사주고, 여기로 저기로 시간 딱딱 맞춰 이동시켜주며 엄마의 하루가 대단히 좋고 근사할 수 있게 했다. 20년도 훌쩍 지난 과거의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던 역할을 이번에 내가 고스란히 한 셈이다.
어린 내가 엄마에게 선물 받았던 행복한 하루를 훌쩍 큰 내가 갚기도 하면서 이렇게 삶은 나아가나 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효도는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바로바로 하자는 정신이 잡혀서 다행이다. 일 많아서 바쁜데 나한테 이런 거까지 부탁하냐고 엄마의 수줍은 부탁을 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차피 해줄 거면서 귀찮다고 툴툴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의 수발로 엄마가 특별한 추억 하나를 가지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하여 나도 좋다.
엄마가 고향에 내려가고 며칠이 흐른 뒤 큰누나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무채색으로 가득한 엄마의 옷장 가운데 가지런히 걸려 있는 뚜비 블라우스와 뚜비 머플러 사진이었다. 깨끗하게 세탁해 곱게 걸어둔 뚜비 블라우스와 뚜비 머플러를 보며 나는 조금 웃다가, 엄마가 언제든 다시 한번 뚜비로 변신할 수 있게 녹슬지 않는 티켓팅 금손 실력을 유지해야겠다는 퍽 진지한 다짐을 마음속으로 했다.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살아~ 내 손가락 관절이 온전할 때까지는 동원이 공연 티켓팅 얼마든지 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