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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ylor L Oct 24. 2021

살아 있다

고통으로 삶을 증명하는 잔인한 모순

감정을 인지하고 관조하고 또 다스리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감정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이든, 어떤 인체내의 변화든, 그 원인이 결국 내 안에서 시작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고없이 엄습하는 감정 변화와 기류는 번번이 낯설기만 하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몸 속 어딘가 작은 스위치 하나 내려 감정의 전원을 꺼버리거나 적어도 감정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화학물질이 비어져 나오지 못하게 구멍을 막아버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어쩐지 내 몸이, 내 맘이 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예전 같으면 손쓰지 못하는 감정 앞에서 하루고 이틀이고 헤어나오지 못한 채 무력하게 나를 맡겼을테지만 그나마 요즘 내 자신은 적어도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는 알고 있는, 재수 삼수생의 삶 같다고 할까. 예전에 비해 실력이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요령이 늘어서인지, 경험 때문인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나이 탓인지 조금은 노련해지고, 익숙해져서 처음처럼 크게 조바심 내거나 마냥 속수무책이지는 않은 상태. 몇 년간의 수험생활 동안 정리해놓은 오답노트에 빼곡히 적힌 내용에 따라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내 감정의 원인을 돌아보고 내 감정이 부당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일까지 순서대로 해본다. 하지만 노련함과 익숙함이 결코 좋은 성적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처럼 (그럴거면 모든 수능의 1등은 재수생 삼수생이어야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번번이 시험처럼 다가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비참한 성적표를 받아쥐고는 허탈하다 못해 비참함이 밀려온다. 차라리 몰랐기에 무력했던 시절이 나았다는 자조적인 생각까지 든다. 


평탄한적 없던 내 삶에 지금 이 순간이 나를 유독 힘들게 할 특별한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어쩌면 이렇게 힘든 감정은 한꺼번에 단 하나의 원인을 꼬집기도 힘들게 단단하고 밀도 있게 뭉쳐서 다가올까. 원래부터 한 덩이었던 것처럼 차곡차곡 쌓인 상처들은 돌덩이처럼 가슴 한 켠에 던져진다. 묵직한 돌덩이를 맞으면서 어떤 것들이 돌덩이를 이렇게 단단히 만들었나를 고민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저 돌덩이를 맞아서 내가 이렇게 아프구나, 어쩔 도리가 없구나 하고 우는 수밖에. 그래서 요며칠 나는 울었다. 아팠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돌덩이가 그리 크고 단단해졌는지는 알 것 같기도, 또 잘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그저 아팠고, 그래서 울었다.

 

아픔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자는 이미 죽은 것이라고 했던 한 철학자의 말처럼,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생에 대한 의지를 버리고 싶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픔을 느낌으로써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삶의 모순 앞에서 난 오늘도 살아 있다.


*1년이 넘게 찾지 않던 브런치에 쓰는 생존을 알리는 글이 너무 어두워 발행하지 않을까 하다가 내보내기로 결심한다. 나의 생존을 증명하는데 치열하게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일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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