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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ylor L Jun 01. 2022

마흔 즈음에

뒤돌아보면 나의 서른은 쉽게 오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야간 자율학습과 첫사랑의 열병, 인생 최대의 쫄깃함과 좌절을 연이어 안겨준 수능시험 두 번을 거치고 보니 소리없이 나는 스무살이 되었다. 허나 서른살까지 가는 길은 길고도 복잡하고 소란스럽고 거칠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기대수명이 짧던 이전 세대의 고민을 담은 노래, 지금의 서른살은 그저 스물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며 남은 청춘을 애도하지 않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철 들면 죽는다'는 말을 어깨에 문신 새긴 것 마냥 나와 내가 어울리던 무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욕망에 충실한 어린 아이처럼 보냈다. 술이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셨고, 흥청망청 취해야겠다고 생각되면 그리했다. 거칠 것이 없었고, 나름 괜찮은 청춘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가시에 이곳 저곳 찔린 채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서른을 맞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서야 나는 이십대 후반과 서른의 문턱을 지나던 그 때의 나를, 그 때 나의 삶을 사무치게 위로했다. 제대로 된 신발도 신지 못 한 채, 내 발길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위태롭게 한 발 한 발 내딛던 그 때의 내 모습이 더없이 짠하고 안쓰러웠다. 알 수 없는 이 길 끝엔 조금은 덜 불안하고, 지루하더라도 안정된 어른의 삶이 기다릴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틀렸다는 것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그렇게 아프게 맞이한 나의 30대는 예상치도 못한 일들로 끝없이 소용돌이쳤다. 나를 다치게 하는 일들도,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들도 쉼없이 벌어졌다. 죽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을 해내기도 했고, 당연히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일들을 하지 못해 좌절하는 날들도 많았다. 평생 연애나 하고 살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실상은 연애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하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무리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 무식할 만큼 한 우물만 파던 내가 7년을 넘게 버텨온 일터를 떠났고, 학창 시절 전학 한 번 가본적 없던 나는 30년 넘게 살아온 내 나라를 떠났다.


그 많은 소요와 사건들을 겪어내다보니 나는 어느 새 훌쩍 중년이 되어 있었다. 나의 마흔은 그렇게 왔다. 스물이 되던 것보다 더 소리 없이, 그냥 갑자기, 문득. 눈에 띄게 떨어진 체력과 부쩍 늘어난 흰 머리, 얼굴 곳곳에 제법 깊게 패인 주름들과 함께 그냥 그렇게 나는 마흔이 됐다. 나의 스물과 나의 서른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나의 마흔이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다. '중년'이란 타이틀에 맞게 일생의 중간 쯤을 관통하는 자 특유의 안도와 설렘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이 시기를 맞게 될 줄은 몰랐다. 낯선 나라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당장의 내일조차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불안하고 스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어디선가 들었던 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나도 마흔이 처음이니까 몰랐던 게 당연하지. 조금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나는 사실 이 나이가 어색하고, 버겁고, 두렵다. 50대에 접어들 무렵에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지금 보지 못했던 다른 것들이 보이려나. 40대도 버거운데, 50대라니. 시간을 10년 단위로 묶어 생각하는 걸 보니 정말 늙긴 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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