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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ylor L Aug 02. 2020

정서적 흙수저를 위한 변명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고 노력해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언제든 깨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나의 유리멘탈에 대해서는 이미 언젠가 한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깨어질 뻔했거나 와장창 깨어져 버린 순간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털어놓자면 박찬호가 부담스러워 도망갈 만큼 쉼없이 떠들 자신이 있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얼마나' 역치가 낮은 인간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번번이 상처받고 바닥을 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무디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애초에 주어진 것들로 인해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사는 이들을 '금수저'라 부른다. 금수저가 그렇지 못한, 통상 '흙수저'로 지칭되는 이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금수저가 금수저가 된 건 그저 타고난 팔자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흙수저가 흙수저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른 하나는 제 아무리 노력을 해서 금수저가 되려고 해도 타고난 금수저를 넘어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줄기차게 머리에 주입된 만트라는 '최선을 다해 살 (다보면 노력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이었는데 애초에 타고난 자원의 간극을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가 없다니.



흙수저의 이같은 무력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사람들은 그래서 흙수저도 노력하면 금수저가 될 수 있는 공정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이야기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공정사회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세상인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어쩐지 여전히 개운치 않다. 금수저는 그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반면, 흙수저는 흙수저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아등바등 '노력'까지 해서 금수저가 되어야 하다니.






단순히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타고난 정서와 각자의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에 있어서도 분명 금수저와 흙수저가 존재한다. 사소한 일에 조마조마하고, 누군가의 한 마디 말에도 온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을 설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만사 평온한 이들이 있다. 감정표현이 서툴러 의도치 않게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치동에서 일타 강사에게 인성 전문 과외라도 받은 사람처럼 인간관계가 매끄러운 사람이 있다. 비교와 자책이 일상이 되어 다른이의 시선으로 내 삶을 살아내느라 지치고 고단한 이가 있는 반면, 독야청청 제 마음가는대로 살면서도 당당하고 외롭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대부분 전자보다는 후자의 삶을 원하고 지향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도서, 명상, 요가 등의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정서적으로 평온하고 마음이 편안한 후자들보다는 매사 서툴고 조마조마하고 상처 투성이인 가슴을 부여잡으며 사는 전자들이 세상엔 더 많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자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은 어쩐지 평온하고 당당하고 매끄러워 보인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후자로 보인다. 



많은 경우 가난이 개인의 탓이 아니듯, 마음이 가난한 전자들 역시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심하고 깨어지기 쉬운 사람으로 '자라난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금수저를 물고 자란 이들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깨닫는 것처럼, 전자들은 본인이 정서적으로 유약함을 후자들과의 비교를 통해 처절하게 깨우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마음이 넉넉한 이들 가운데 쉼없는 마음 수련으로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환경이 그를 그렇게 성장시킨 경우도 많다. 마음의 곳간에도 흙수저와 금수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살고도 남은 것이라곤 한 줌 가난 뿐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좀 더 노력해서 가난을 벗어나라'는 말은 한가롭고 무책임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서툴고 다치기 쉬운 마음을 갖고 자라난 사람일수록 알고 보면 자신을 돌아보는 횟수가 잦다. 끊임 없이 남들과 비교도 해야 하고, 번번이 다친 마음도 보살피려면 누구보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노력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성장해 버린 이들이 마음의 틀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덜 고달프게 하려면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라는 조언과 충고는 고맙지만 고단하다. 이렇게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노력까지 하라니 자꾸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서적으로 금수저를 물고 자란 이들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마음 깊은 곳의 상처까지 다스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편히 가져라,' '별일 아니다' 라는 말은 한가롭고 무책임하다.




예상했겠지만, 그렇다. 나는 정서적 흙수저다. 자라고 보니 상처 투성이인 마음을 가진 흙수저였던 거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넉넉한 남편과 살면서 그나마 소심한 마음이 많은 위로를 받으며 산다. 그런데 번번이 인간관계의 돌부리에 넘어지면 크게 다치고 마는 내게 남편이 건네는 위로를 듣던 어느날, '나는 왜 이 사람처럼 평온하게 살지 못할까.' 습관처럼 남편의 여유로운 마음과 나의 유리멘탈을 견주어보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편은 피나는 노력 끝에 세상 쿨하고 여유로운 남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자라고 보니 그런 인간으로 성장했던 거였다. 본인이 정서적 금수저란 사실도 흙수저인 아내 덕에 깨닫게 된 눈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삶이 어쩐지 억울하다는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번번이 노력해도 늘 같은 돌부리에 넘어져 주저 앉는데 특별한 노력 없이도 부처님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니.



어떤 사람에겐 죽도록 노력해도 너무 힘든 일이 다른 이에겐 노력없이 자연스레 되는 경우가 있다. 타고난 천성이 다르고, 자라난 환경이 달라서다. 그런데 천성도 환경도 불리하게 자라난 것도 억울한데 노력까지 해야 하다니.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한다고 해도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자란 이들을 따라잡을 수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흙수저로 태어났다면 이번 생은 안녕, 금수저로 태어날 때까지 환생..이런 답도 없을 비관론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금수저들도 노력없이 얻은 것인 만큼 흙수저도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금수저로 자동 업그레이드 해달라고 생떼를 쓰려는 것도 아니다. 이 두서없는 글의 진짜 목적은 결핍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험해 본 이들에게 부과된 '노력'이라는 것이 주는 고단함에 대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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