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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Aug 31. 2023

바티칸 변호사가 말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익숙하게, 관성처럼 들어왔던 말. 여러분도 많이 듣고 자라셨죠? 마치 하나의 공익 캠페인 같은 이 말에는 하나가 빠져있습니다.


바로 '왜?'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거예요. 그만큼 우리는 어떠한 목적과 이유 없이 주입식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서 과학적인 이론을 들어 설명하곤 하지만, 그마저도 독서 행위를 정당화하기엔 마음으로 와닿진 않았죠. 


하지만 삶의 밑바닥에서, 먹구름 낀 하루에서 독서를 유일한 인생의 도피처로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요? 그 사람이 바티칸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변호사라면 더 귀 기울일 수 있겠죠?




바로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의 한동일 교수님의 어릴 적 몸소 겪은 애잔한 이야기랍니다.





출처 :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저는 제 밑바닥을 흔든 최초의 공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성적이 좋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무기력하게 지냈습니다.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고, 그저 가난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제 현실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늘 저를 초조하고 조급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두렵게도 했습니다. 술, 담배,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일탈이라는 걸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저 같은 사람의 삶을 궁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그저 공부뿐이었죠. 당시에는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힘든 삶의 도피처, 공부


그러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세상을 만났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친구의 형 방에는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책들로 가득했습니다. 주로 법학, 철학, 사회과학 책들이었습니다. 그중 사회과학 서적에 담긴 낯선 용어와 사상들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논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책 저 책 마구 읽어 내려갔는데,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부지런하게 일하는데도 나의 어머니는 늘 가난한가?”


항상 품고 있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그 속에서 어렴풋이 찾은 듯했습니다. 가난이 부모님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도요. 부지런한 어머니가 새벽부터 일해도 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걸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 머리는 새로운 지적 자극에 완전히 무장 해제되었습니다. 종일 친구 형 방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빌려와서 집에서 읽기도 했습니다. 그 책들은 당시 제 암담한 현실을 어느 정도 잊게 만드는 마취제나 진통제와 같았습니다. 그땐 노력해도 좀처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학교 공부보다 어려운 책을 한 권, 한 권 독파하는 게 훨씬 더 성취감이 컸습니다. 대부분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었고,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새로운 관점과 해석이 저를 계속 끌어당겼죠.


사춘기에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한 경험은 이후 삶의 이면을 관찰하는 눈을 갖게 해줬고 한층 더 공부에 매진하게 만든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저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어렴풋이 보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심하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저와 조우할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줬습니다. 이후 독서는 제 공부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습니다. 학교가 만든 시간표 외에 긴 공부의 역사와 늘 함께했던 독서의 이정표가 이때 처음 만들어진 겁니다.


목적이 아닌 과정을 추구하는 삶


독서는 인내심과 끈기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겠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 하는 생각보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이렇게 살아가야겠다’와 같은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그 결과 직업이 무엇이 되었든 그 직업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치를 실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학과 공부를 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책을 읽었습니다. 방학 때는 정독도서관에서 철학책과 역사책을 봤습니다. 글씨를 읽는데 지치면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그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Quid tam bonum est quam litteris studere.

퀴드 탐 보눔 에스트 쾀 리테리스 스투데레.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냐?


도미누스 플레비트 경당의 정경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가 울었다는 도미누스 플레비트Dominus Flevit 경당을 내려와 예루살렘 도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성문의 좌우에 사자 부조가 새겨져 있는 ‘사자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가 죽은 곳이라고 해서 스테파노 게이트Stefano gate라고도 부르는데, 예루살렘 구시가를 둘러 싼 8개 성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예수의 수난 과정을 묵상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나타나는데, 이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초입에 새겨진 문구



“O vos omnes qvi transitis per viam, attendite et videte si est dolor sicvt dolor mevs.”

“오 보스 옴네스 퀴 트란시티스 페르 비암, 아텐디테 에트 비데테 시 에스트 돌로르 시쿠트 돌로르 메우스.”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이 아픔이 있다면, 그것을 보라.”


이 문장 앞에서 저는 발길을 멈췄습니다. 거기에는 예수의 고통을 느끼며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바라보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스스로 용서를 위한 제물이 되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예수의 고통은 어디에도 비할 길이 없을 겁니다. 그런 고통을 묵상하며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본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출처 :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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