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해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엄마의 반응은 간단했다.
7개월간의 여행에 내가 나름대로 정한 예산은 1000만 원이었다. 무조건 최저가의 숙소에서 묵고, 비행기는 최소한으로 이용한다. 직접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화로운 음식에 미련이 없으니 여행 중에는 끼니를 때우는 것에 만족하자. 패키지 여행 상품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이용하지 않고,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 점프와 같은 액티비티는 정말 하고 싶을 때만 해야지. 어디까지나 내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곳을 가고,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가을 학기를 마치고 학교에 휴학계를 낸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사무실을 퇴근하면 바로 동네 카페로 달려가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안녕하세요, 카페베네입니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소장님이 사주셨고 저녁은 카페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따로 나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매달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을 쓸 시간도 없었다) 휴학 전에 이런저런 일로 모아 둔 돈을 합치면 8월의 출발 전까지 목표한 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대략 7개월간 그렇게 사무실과 카페를 오가는 생활을 했다.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 간간이 계획을 짜고 그림을 연습하면서 가슴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몇 개월간 일을 하자니 엄마와 아버지도 아들의 여행 계획을 점점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 돈으로 반 년 넘는 여행이 가능하긴 하냐, 어디는 위험하지 않냐,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하냐. 엄마의 걱정은 새로 발견한 우물처럼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리고 여행 출발이 한 달 남짓 남아 있던 7월의 어느 주말에 아버지는 나를 할아버지 산소로 데려가셨다. 아버지와 나는 북어포를 뜯고 종이컵에 소주를 한 잔 올렸다. 아버지는, 손자가 장도(壯途)를 떠나니 잘 보살펴주시라 하셨다. 산소를 다녀온 날 저녁 엄마의 표정은 잔뜩 심란하다.
여행 출발일은 K의 전역 일주일 뒤.
나와 K는 각자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하고, K가 휴가를 나오는 날에 만나 의견을 나누며 여행의 전반적인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아프리카와 호주, 러시아, 북미를 제외하는 경로에 합의했다. 중국에서 출발해 육로로 베트남 북쪽의 국경 도시까지 이동하고, 동남아시아로 들어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 태국까지 가자. 마침 경로에 있는 인도와 이집트에 가서 타지마할, 피라미드를 보고 이집트에서 튀르키예행 비행기를 탄다. (육로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이스라엘, 시리아와 레바논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튀르키예에서 버스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가 연말까지 어떻게든 포르투갈에 도착하자. 해가 바뀔 즈음에 유럽의 서쪽 끝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미 대륙으로 향한다. 브라질의 해안 도시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내려가서, 시계 방향으로 칠레를 돌아 올라온다. 볼리비아로 들어가 우유니 고원의 소금 사막을 꼭 가보고, 페루로 나와서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찾아보자. 그리고 페루에서 인천행 비행기가 가장 싼 곳에서, 아마도 리마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여행 경로는 어렵지 않게 정했지만 긴 여행을 위해 실제로 준비해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구청에서 여권을 갱신하고,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가 장티푸스, 황열을 비롯한 몇 가지 예방 주사를 맞아야 했다. 해외에서 사용이 편리한 카드를 신청하고, 가격이 조금이라도 낮을 때 미리 몇 개의 비행기 표를 사놓았다. 첫 목적지인 중국에 가려면 미리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리고 7개월을 메고 다닐 배낭, 침낭, 챙겨 갈 옷과 신발, 세면도구, 실과 바늘, 각종 상비약 등의 목록을 정하고 없는 것을 하나씩 사 모았다.
이외에도 준비하고 알아봐야 할 것은 끝이 없었다. 각국의 환율, 현금 인출 방법, 지역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 목적지마다의 숙소, 도시 간 이동 방법, 볼거리, 유명한 먹을거리…. 패키지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알아봐야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숙소에서 하롱베이의 선베드가 있는 배의 갑판까지 가는 방법을, 인도 뉴델리의 터미널에서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의 입구까지 가는 길을, 그리스 아테네에서 자킨토스섬의 난파선이 있는 해변까지의 경로를, 타국의 대사관에서 볼리비아 여행 비자를 신청하는 절차를 알아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K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중국에 두 개의 숙소만을 예약하고 일단 가보기로 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는 뭐, 그곳에서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예약해 둔 숙소가 없다거나 예약한 숙소마저 찾지 못한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길에서 자면 그만이다. 미리 사놓은 비행기 표 두 장을 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정도 없다. 자세하게 계획을 세워 놓은들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실패할지라도 크게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가서, 그곳의 길 위에서 모든 것에 부딪쳐보기로 했다.
그리고 8월 4일. 출발하는 날, 부모님과는 집 앞에서 작별했다. 집 문을 나서며 나는 멀리 나오지 마시라고, 건강히 다녀오겠다고 했다. 마침 동생은 학교에서 지원한 교환 학생에 합격해 다음 학기를 네덜란드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연말에 암스테르담에서 보자며 동생은 얼른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나는 8장의 속옷과 사계절용 침낭이 들어 있는 50리터의 빨간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1년도 되지 않아 돌아올 여정이었지만, 마음만은 남미 대륙을 향한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체게바라와 같았다.
나와 K의 치밀하지 못한 성격은 시작부터 빛을 발했다. 중국에 입국하려면 여권에 사증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중국 비자 발급에는 최소한 사흘이 필요했다. 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에 서류와 여권을 맡기고 비용을 지불하면 3일 후에 사증이 붙은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비자 신청을 미루고 미루다 정확히 출발 3일 전에 중국 대사관에 찾아갔다. (왜 미루었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생각나는 이유는 없다.) 사정을 들은 대사관 직원은 여권을 받아 들고, 일단 출국일에 찾아오라고 했다. 장담할 수는 없어요.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젊은이’들이었지만, 우리에겐 용기만 있고 여권이 없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를 떠날 때 여권이 있었을까.
여행 당일, K와 나는 명동역에서 만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중국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대사관이 업무를 막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직원들은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봤다. 정작 우리는 평온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3일 전에 여행 비자를 신청했는데요.” 직원은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더니, 할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갑자기 서류를 뒤적거렸다. “여기, 여행 비자 신청하신 것 나왔네요.” 나와 K는 중국을 한 달간 여행할 수 있는 사증이 붙은 여권을 받아 들고 대사관을 나왔다. 등에 멘 커다란 배낭이 아니었다면, 어디로 보나 세 시간 내로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여행자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공항에는 나와 K의 (그 당시)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여자친구와 같이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셨다. 공항 출국장 카페의 커피는 기대보다 괜찮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곳에 다시 오자고 우리는 약속했다. 나도 그녀도 콘크리트와 같은 확신을 갖고 한 약속은 아니었다. 안녕.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 거야. 곧 다시 보자. 응. 중간에라도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그냥 돌아와. 여자들이 말 걸면 무시하고. 그녀는 아쉬움이 섞인 눈으로 작게 웃었다. 이제는 게이트로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출국 심사장의 줄은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제시간에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왜 언제나 내가 배정받은 게이트는 탑승동의 맨 끝에 있을까. 안내 방송에서는 연신 나와 K의 이름이 불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게이트에 도착해 중국 여행 비자가 단단히 붙어 있는 여권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우리는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휴. 좌석에 앉아 기내 방송도 듣고 차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남기고 떠나야 할 것들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는데. 나는 땀을 말릴 시간조차 없이 허겁지겁 안전벨트를 찾아 채웠다.
비행기는 한참 속도를 올리다 불현듯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여행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출처 : 『되는 대로 낭만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