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통장잔고는 줄어들지만 나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만 간다.
빛과 색깔에 민감하고, 소리와 촉감에 예민하고 향, 맛,온습도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정체는 스파이더맨인가.
타인의 감정, 공간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린다. 사운드가 휘어지면 잠시 공간이 휘어지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감각은 경계 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곧잘 당이 떨어지고 풀방전된다. 죽어야 끝날 생각공장은 24시간 365일 돌아간다. 인과와 논리에 목을 매고 직관을 가장한 망상에 능하며 이분법적 사고는 오랜 친구다.
내가 얼마나 작고 나약하고 불안한지
얼마나 쓸모없는 나르시시스트인지
얼마나 쉽게 사람을 유혹하고 조정하는지에 대하여, 그 디스거스팅한 부덕함에 대해 얼마나 만천하에 고하고 싶은지 숨을 거듭할수록 알아간다. 더 알면 다칠 것 같지만 계속 알아간다. 아니 이미 다친 것 같지만 멈출 수 없다. 퇴고를 거듭하면 제법 정상궤도로 들어오는 글들은 점점 덜 부끄럽지만 이미 다른 생명체같이 느껴진다.
부모의 부덕과 나의 트라우마를 엮어 에세이화 된 욕을 10000자씩 지껄이고, 수년이 지난 사진들을 탈탈 털어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다. 돈이 되지도 않고,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 쓸모없는 일들을, 그냥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하고 있다. 내내 그 무가치함에 죄책감을 느끼며 고집스럽게 하고 있다.
수호자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작고 불안하고 행복한 기생충처럼 살고 있다. 나의 쓸모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변호하지 않기 위해 늘 그렇듯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최정예 사람들로 방어막의 기둥을 세워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 혈육하나, 친구하나, 그리고 나의 수호자로 이루어진 세 개의 기둥은 높고 단단하다. 그 트라이앵글 속에서 서성거리며 요리 조잘, 저리 조잘대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나는 스타도 아니고, 선동가도 아니며, 지도자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라는 것을 오랜 시간을 들여 알아가며 그 삼각지대 안에서 점점 예술가로 살아간다. 오늘도 웃음도 눈물도 우울도 혼란도 헤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