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다시 책상 앞에 앉다

by 나무

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패션을 전공했지만,

마우스와 포토샵으로 생계를 고민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해진 집안, 나의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되던 그 밤들.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학원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때는 몰랐다.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펼쳐질 줄은.




수업 첫날, 설명이 시작되고 실습이 들어가자마자 설렘은 스쳐 지나가고 나의 멘탈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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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선생님은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사(助詞)만 들렸다.
나머지는 외계어 같았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마우스 클릭 소리가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모두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움직였지만, 나의 마우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를 클릭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시험지 커닝하듯 양옆 모니터를 훔쳐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의 컴퓨터 실력은 자판만 잘 다룰 수 있는 정도.
Ctrl+C, Ctrl+V조차 몰랐던 나였다.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불안과 두려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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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저장하세요.”
분명 저장 버튼을 눌렀는데, 저장한 이미지가 사라졌다.
몇 번을 다시 해도 마찬가지.
이건 분명 컴퓨터가 문제일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나였다.




어디에 저장되는지, 확장자가 뭔지도 모른 채 수업을 따라갔다.
기본적인 디폴트 지식이 있다고 전제된 수업은 나에겐 외국어 강의 같았다.



매일, 나는 혼자 바보가 되는 기분을 견뎌야 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워 수업을 들었지만
이게 나아지고 있는 건지, 진짜 웹디자이너가 될 수는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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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밀려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클라이밍을 하며 가장 크게 배운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내가 나에게만큼은 지지 말자.’

그래서 나아가기로 했다.




앞뒤옆 가리지 않고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먼저 다가갔다.
간식을 사가서 나눠주고, 밥도 자주 샀다.
수업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우면서도, 나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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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늘 냉정했다.
어느 날, 학원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저장한 이미지 찾는 것도 아직도 헤매시는데… 그냥 포기하시는 게 어떠세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하지만 울면 내가 지는 것 같아서, 목 뒤로 꿀꺽꿀꺽 삼켰다.

학원문을 나서는 길, 오기가 솟구쳤다.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피곤해서 만근 같은 몸을 이끌어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과제물은 항상 선생님이 낸 것의 두 배를 했다.
2개 제출하라고 하면 4개를, 10개면 20개를.
그렇게, 정확히 두 배씩.
6개월 동안 한결같이.



마지막 날, 커피 한 잔을 들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때, 포기하라고 하셨던 말… 기억하세요?”
“그 말 덕분에 저는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아이 둘을 데리고, 매일 밤마다 포기라는 단어를 지울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커피를 받아 들고 웃으려다 표정이 굳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려 보이셔서 그런 상황인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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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커피 한 잔. 그 한마디 사과. 그리고 나의 오기.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를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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