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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Nov 26. 2020

만약 십 년 전에 엄마를 시작했었더라면...

엄마를 막 시작한 나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육아의 신세계로 한 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신기하고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그런 나를 먼저 헤아려주는 나의 오래된 친구들은 기꺼이 그녀들의 십여 년 가까이 지난 육아 소장품을 “그래도 아직은 쓸만해”라는 덕담과 함께 보내주기도 하고 틈틈이 수다와 격려를 섞은 경험담을 전해 주었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집에는 친구들의 오래된 육아 소장품들이 이방 저 방 창고까지 꽉꽉 채우고 옷장 서랍은 오래된 언니 오빠들의 옷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이렇게까지 알뜰한 면이 있었었나 싶을 정도로 다들 엄마가 되니 쓸만한 것들을 죄다 허투루 버리지 않고 이담에 태어날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꽁꽁 싸맨 채로 다들 한 십 년 넘게 소장하다가 뜻밖에 너라는 친구에게 줄 줄이야….라는 말들을 하며 전국 각지에서 기쁜 마음으로 주소를 불러 달라고 했다.      


집안에 미끄럼틀이 생기고 보행기가 돌아다니고 잠자리와 나비 모빌이 달려 돌아가곤 있지만, 다들 색감이 바래고 모서리가 닳았다거나 이것이 작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 서버린 것인지를 자세히 관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바래진 색감은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고 닳아진 모서리와 천천히 돌아가다 가끔 멈춰서 있는 모빌은 나름 안전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내 주변인들은 거의 나와 동시대인들이거나 연장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그 속에서 자란 우리 아이는 시대만 앞서갈 뿐, 십여 년 전의 육아 환경에서 키워지는 셈이었다.


엄마가 옛날 사람이다 보니 엄마의 대부분 친구도 옛날 사람들이라 ‘다들 그땐 그랬었는데….’라고 더구나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는 달리 아는 아이 또래 엄마들이 없었으니, 막연히 남들도 다들 이렇게 키우겠거니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엔 맘 카페라는 인터넷 육아 신지식카페들을 가보지 않았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들어가 보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온종일 아이의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몸과 마음이 휘둘리는데 틈틈이 휴대전화로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다닐 여력까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맘 카페에 가입하면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육아 정보가 쏟아진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아마도 우리나라 엄마 중 아마 내가 제일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저귀를 하나 선택할 때는 나보다 먼저 결혼해 조카를 키우는 동생의 어깨너머로 흘깃 보았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의 기저귀 한 종류만 무조건 샀다. 맘 카페 엄마들은 여러 후기를 올리고 비교·분석해보고 내 아이에게 최적화된 기저귀를 공동구매로 저렴하게 구매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런 것이 세대 차이인가, 아니면 성격 차이인가를 새삼스레 고민하기도 했다.      


기저귀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나와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냇동생이 막 태어나고 우리 집 마당에 긴 빨랫줄이 쳐진 장면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영화에서 가끔 멋진 연출용으로 등장하는 명장면처럼 널찍한 마당에 긴 빨랫줄이 늘어져 있고, 햇살 좋은 날 기다란 하얀 천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남을 만큼 펄럭거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선 그 장면에 대략 잘생긴 남자 주인공과 펄럭이는 하얀 천 뒤에 가려졌던 아리따운 여주인공이 나타나며 서로를 보며 웃음 짓는 남녀를 클로즈업하며 장면이 넘어가지만, 내 기억 속 하얀 천은 기저귀 만들 천이었으며 내가 찾아야 할 상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오줌싸개 막냇동생이었다.   

   

어느 날 맘 카페를 둘러보던 중 “군기저귀”를 공동 구매한다는 글을 보며 나는 ‘요즘은 군대에서 나오는 기저귀도 있나 보다. 세 제품인가? 별의별 게 군대에서 다 나오네’라며 무심코 지나쳤지만, 며칠 후 나는 동생을 통해 그 “군기저귀”가 군대에서 따온 “군”이 아니며 일본산 기저귀 브랜드라는 걸 알고 나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요즘처럼 종류별로 제각각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홍보하는 기저귀들 사이에선 정말 눈감고 아무거나 골라도 옛날에 천 기저귀를 빨아서 쓰던 그때보다는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무얼 저리도 또 비교하고 비교하냐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육아 환경은 아날로그적으로 천 기저귀의 장점인 통기성과 안전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그에 따르는 불편함은 오롯이 엄마가 온몸으로 감수하며 살았었다면, 지금은 본질적인 장점은 최대한 확보하면서도 엄마의 편리함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검색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또한 진정한 슬기로운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 그래도 좁디좁은 신혼집은 여기저기서 얻어온 아이 장난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그동안 쟁여둔 육아용품이 있다고 하면 절대 사양하지 않고 선뜻 감사히 받아 집안 곳곳에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집은 아이가 놀 수 있는 최적의 공간, 키즈 카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나, 정작 내가 한숨 돌리며 차 한잔이라도 할 공간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연히 어린이집 엄마에게 들었던 장난감 도서관이란 곳을 처음 방문했던 날,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신세계가 있는데, 이 동네에서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몇 배는 더했으리라. 


요즘은 나처럼 많은 육아용품을 집안에 가득 쌓아두고 살지 않아도 도서 대여와 반납이 자유로운 공공 도서관처럼 육아용품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굳이 빌리러 가지 않아도 집 앞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사설 장난감 대여점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지인들에게 받은 대대로 물려받아 썼던 육아용품을 다른 엄마들에게 준다고 하면 그들이 그렇게 완고한 거절의 답을 했었던가 싶다. 그렇게 대대로 물려받지 않아도 따끈따끈한 신상 장난감들을 대여할 수 있는데 굳이 뭐하러 그렇게 빛바랜 구형의 짐스러운 것들을 넙죽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바로 회원등록을 하고 그때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아이 장난감을 대여했다. 비싼 가격으로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 장난감을 우리 집으로 데려온 날, 마치 흑백사진 배경 속에 뚜렷한 색감의 장난감이 한껏 도드라져 보였다. 그 후 우린 장난감 도서관의 단골 회원이 되었다. 장난감 도서관은 일정 기간 사용하다 아이의 관심이 떨어지면 다시 새로운 것으로 바꿔줄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거실 마루가 방안이 짐으로 가득 차지 않아도 되고 최소한의 것들로만 채워져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과거의 다다익선의 소유욕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공유와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의 신 육아 아이템인 것 같다.     


내가 만약 십 년 전에 결혼했었더라면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시대에 뒤처진다는 느낌 없이 이런 좌충우돌을 겪지 않고 제법 똑 부러지고 여러 가지 정보에 익숙한 그런 유능한 주부 9단 엄마가 되었을까’라고 스스로 물어본다. ‘지금의 내 모습이 단지 내가 늦게 시작한 탓일까’라고 말이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나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마 내가 십 년 전 혹은 더 일찍 엄마가 되었더라도 나는 나일뿐. 아마 그때도 함께 엄마를 시작하는 친구들 속에서도 여전히 허둥대고 서툴기 짝이 없는 어린 엄마가 되었겠지 라고 말이다.      


늦게 시작한 엄마도 일찍 시작한 엄마도 시작한 나이보다는, 본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향대로 아이를 키우고 직장 일을 해내고 가정이라는 신세계를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그것들이 단지 늦게 시작해서 더 서툴거나, 일찍 시작했다고 더 유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후덜 거리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나는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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