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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Nov 18. 2020

다음 생에는 혼자 살래?


누가 만약 ‘다음 생엔 혼자 살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고 생각에 잠기다가 기어들어 갈 만한 목소리로 끝내 ‘아니….’라고 답을 할 것 같다. 이 장면을 남편이나 딸이 함께 본다면, 대답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기꺼이 결혼하겠다는 강한 긍정의 모습보다는 주저주저하다 마지못해 그렇게 한다는 모습에 실망하지 싶다.



어떤 엄마는 가정에 헌신적이고 자신의 모든 열정을 모조리 아낌없이 쏟아부은 나머지 다음 생에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고 멋지게 독신으로 살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나름 고개가 끄덕여지며 수긍이 간다. 또 어떤 엄마는 혼자 살아보진 않았지만, 이래저래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게 좋지 않겠냐며 다음 생에도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가고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주저주저하다가도 끝내 결혼이라는 삶을 다음 생에도 택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십 년 동안 요리를 담당했었는데, 엄마가 제일 못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 딸은 음식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진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의리로 먹어 준 걸까?


보통 십 년이라는 세월은 어떤 분야든지 열심히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수련을 한다면 숙련된 전문가가 되고도 남을 법한 시간이었지만, 나의 요리실력은 전혀 뜻밖의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고 나의 다른 재능이 워낙 뛰어나서 음식은 상대적으로 뒤처져있는 현실이란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데, 자의 반 타의 반 따져봐도 그럴 가능성보다는 십 년 동안 나의 음식을 먹어본 단골 중의 단골은 맛이 아닌 의리로 맺어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가족은 재능이 아니라 의리로 맺어진 가장 기본적인 집단인 내 편인 것이다.


일단 현관문만 들어서면 언제나 든든하고 완전 편파적인 내 편이 나를 맞아준다는 상상만 해도 세상 슬픔의 반은 줄어든 기분이 들것이다. 이제껏 현관문 바깥으로만 향하던 나의 온 신경들을 이젠 이 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분 좋게 쏟아부을 수 있다면 나는 새로운 천국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다음 생에도 가족을 이루고 살고 싶은 나의 개인적인 제일 큰 이유인 것 같다.      


부모가 되면서 내가 꾸린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나는 좋든 싫든 조금 더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어린 자녀와의 문제부터 남편인 중년 세대까지 사회적으로 또는 집단 내에서 중요시되는 승진이나 권력 또는 돈에 관한 문제보다는 기초적이고도 인간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게 되었다.


내가 자식의 입장이었을 때는 부모님께 늘 수동적이고 요구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와 방관자의 태도를 보였으나, 내 아이와 남편의 문제에선 더욱 적극적이고 절대 포기나 방관의 태도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육아의 세계는 늘 철학과 도덕이라는 이원적인 체제를 가지고 고민하게 되고, 남편과 공생 관계 또는 상생 관계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논쟁의 중요성을 늘 상기한다. 그럼으로서 내 삶은 다양한 자극으로 생각의 폭이나 깊이도 한층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은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늦은 결혼, 연상연하, 고령 출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시작한 나의 결혼 생활


흔히 성인이 된 자녀가 결혼 문제로 고민을 할 때 부모로서는 사회적 관례와 이제껏 인지하고 있던 상식선에서 결혼이 당연한 것으로 말하지만, 젊었을 땐 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늦은 결혼, 연상연하, 고령 출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시작한 나의 결혼 생활 십 년은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위에 언급한 두 가지 든든한 미덕 덕분에 오늘도 나는 이 공간에서 행복해하며 다음 생에도 그렇게 잘은 못하지만, 때론 내 부족함으로 가족 구성원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든든한 미덕을 쉽게 포기를 못 할 것 같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왜 결혼을 늦게 했어? 이왕 늦은 거 혼자 그냥 쭉 살 생각은 없었어?”라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더듬더듬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늘 생각해본다.


내 앞에 길이 두 갈래 있었는데 하나는 내가 이제껏 걸어왔던 길이라 익숙했었지만 다른 길은 풀숲이 우거지고 낙엽도 많이 쌓인 그래서 걷기에 그다지 편치는 않은 길 같아 보였다. 익숙한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래서 나에겐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보인 그 길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작은 동경심 같은 것이 그 순간 내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었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 앞에서 늘 조금 더 편안하고 익숙한 길로만 찾아가기보다 조금은 생소하더라도 그래서 내가 새롭게 배우고 더 노력해야 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보이는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이 말이 곧 운명의 상대를 만나 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었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과 운명 옆자리에 괜한 나의 도전정신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건 나만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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