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서점에는 “괜찮아”로 시작하는 제목의 책이 많이 나온다. 무심코 서점가를 들러 보다가 실수하고 잘못해도 괜찮아 또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는 뜻의 따뜻한 위로의 제목의 책을 보면 저절로 손이 가서 한 번쯤은 들춰보게 되는 건 아마도 지금 나도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전해지는 위로가 절실한 때인 것 같기도 하다.
"괜찮다"라는 짧고도 진심 가득한 한마디의 마법
나는 평소에 “괜찮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괜찮다”라는 말은 별로 나쁘지 않고 보통 이상이라는 뜻으로 탈이나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다는 국어사전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뒤뚱뒤뚱 걷다 넘어진 아이를 보고 달려간 엄마가 상처를 살피고 “괜찮아, 엄마가 호~하고 불어주면 이제 괜찮아. 다시 한번 걸어볼래?”라고 하면 아이는 다시 일어서 걸어볼 용기를 내지 않는가.
누구나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쳐 때론 울고불고 걸려 넘어지고 힘들어한다. 그때마다 상처 받은 마음에 상처에 붙이는 반창고처럼 우리들의 진심 어린 괜찮다는 주문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땅에 세우고 어디 붙잡을 것이 없는지 손을 허우적대게 만드는 그런 용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간단하고도 진심 어린 "괜찮다"라는 마법이 없었다면, 넘어졌을 때 누군가 ‘넌 이대로 끝이야. 절대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라고 한다면 그리고 곧장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면, 우리의 인생 드라마는 기승전결 구조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을 이룰 수 없었으며 이야기의 시작과 전개 단계에서 바로 끝나버리는 "넘어진 사람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마무리가 지어질 것 같다. 인생이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가 아니라,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나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햇볕 따뜻한 봄날 학교 담장 위 흐드러진 개나리꽃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노란색의 학원 버스들, 아이들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여러 대의 노란 버스 속으로 쏙쏙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체험, 삶의 현장』 은 점점 더 치열해져만 가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거쳐 안정적인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의 삶은 점점 낭만을 잃고 피폐해져만 간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생활을 앞으로 10여 년은 넘게 참고 반복해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자라 어른이 되면 그동안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한 공부 말고는 세상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도대체 아는 게 없는 건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 아닐까. 그렇게 어른이 된 어느 날, 내 딸도 서점에서 이 책 저책을 둘러보며 위로를 구하지는 않을까.
딸아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꼬맹이도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서점에 들러 “괜찮아”라며 토닥거려주는 에세이를 읽으며 삶의 애잔한 아픔을 달래고 가슴이 텅 빈 그런 어른이 되도록 내가 열심히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을 쫓으며 가슴이 텅 빈 사람으로 내가 열심히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열심히 살아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옆 사람들만 보고 달리는 사람으로 키우는 건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 이 서가에 있는 책들이 들려주는 행복에 관한 알찬 정보들을 지금부터 속이 꽉 차게 읽고 알고 있을 수 있다면, 살면서 그렇게 후 달리는 일이 적어졌으면 하는 엄마의 작은 바람이 피어났다. 물론 이런 따뜻한 메시지는 글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채워지는 시간 속에서 싱그러운 바람과 따뜻한 햇볕, 그리고 한바탕 깔깔거리는 웃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만한 나이가 되었긴 하다.
이제껏 살다 보니 내 마음대로, 내가 계획한 대로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세운 계획이 허술하거나 턱없이 욕심을 부린 경우도 많겠지만, 대체로 세상은 그리 쉽게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이가 계획을 잘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고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더욱 향상해주려고 조기교육부터 시작해서 연중 노란 버스를 태워 학원으로 학교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그 많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상처를 견디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내가 가르쳐주고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을 체득해야 할 것이고 엄마인 나는 그저 바로 달려가 득달같이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고 지켜볼 뿐 온전히 아이의 시간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자식의 입장에서 바로 달려와 주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거나 도움을 청한 적이 많았었지만, 엄마라는 자리에 서고 보니 바로 달려가는 것보다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는 게 몇 곱절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멀리서 큰 소리로 응원하고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세상 그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하는 팬이라고 말하며 힘껏 안아주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