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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30. 2020

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내 행동은 따라 하지 마!

M. 스캇 팩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 나오는 문장이다. 

몇 년 전 어린이집 엄마로부터 선물 받았던 책이었는데 책의 글씨 크기도 좀 작고 두께도 있어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한동안 장식용으로 책장에 꽂혀있던 책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시간과 마음이 다소 한가로워진 어느 날 무심코 펼쳐보게 되었다. 첫 장에는 자녀의 훈육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저자의 견해를 따라 책을 읽어 나가던 중, 나는 부모가 된 후로 가장 나에게 칼날 같은 문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부모인 내가 말한 대로 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는 하지 말라고 하는 부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도 엄마가 된 후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이 아이를 어떻게 앞으로 키워야 하나 하는 본질적인 고민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듯 직접 적으로 묘사한 문장을 보지 못했었다. 이제까지는 두리뭉실하게 좋은 부모가 어떤 것이라는 식으로 느끼고 있었던 나에게 이 문장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할 때 단지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종합해서 부모랍시고 말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만 하고, 아이가 내 행동은 보지 말고 오직 내가 알려준 지식의 파편이 시키는 대로만 해 줬으면 하고 바란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슬픈 일인가 하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식의 파편들로 어우러진 잔소리들만 남발하는 경우, 아이들은 부모가 보여준 행동을 떠올리며 엄마 아빠가 말하는 것과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더는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진정성 없이 말로만 떠드는데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어떻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화를 잘 낸다. 때론 아이가 있을 때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를 때도 많다. 아이가 크면서 그 꼬맹이가 나를 닮아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화를 잘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아차 싶었다. 흔히 아이는 부모의 발뒤꿈치를 보고 자란다거나 머리 위에서 부은 물이 발끝까지 간다라는 여러 성현의 말씀을 알지만, 그건 그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종이책 속 지식이었다. 나도 이제껏 아이에게 조그마한 일에 너무 크게 화를 내지 말라는 나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고 대신 내가 화를 자주 내는 행동은 결코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하고 살아왔다. 


행동보다는 말이 쉬우니까 깊은 성찰이 없는 나 같은 부모들은 자신의 행동을 교정하기에 앞서 말만 남발하고 살고 있지 않을까.   

   

옆에서 남편을 관찰해보면, 남편도 나와 같은 부류의 부모였다는 사실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한 예로, 남편 본인은 밤늦게 치킨이나 다양한 야식 메뉴를 즐기지만, 아이가 어쩌다 늦은 시간 출출하다고 말하거나 기름진 치킨이나 간식을 좋아하는 걸 보면 이 시간에 이런 걸 먹으면 어떡하냐면서 아이에게 잔소리 폭탄을 투하한다. 자식의 올바른 식습관과 건강을 위하는 부모의 고귀한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전형적인 내가 말한 대로 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는 하지 말라는 부모이다. 


늦은 시간 야식을 먹지 말라는 아빠의 말은 새겨들었으면 좋겠지만, 어제 그 늦은 시각 야식을 먹었던 아빠의 행동은 따라 하지 말아라 

      

이 못난 부모 조합을 어찌할까? 남편에게 책을 펼쳐 밑줄 쳐진 부분을 읽어주며 우리의 현재 상태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처음엔 남편도 이 문장과 자신의 연관 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못했지만, 나의 나쁜 예를 들으면서 본인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에 순순히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모습은 매의 눈으로 잘 파악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어쩌면 잘 모르고 지나가거나 필요 이상의 이해와 관용을 베푸는 존재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서로를 도와주기로 했다.      


부모가 되면서 아이 덕분에 내 삶이 조금 더 온전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더구나 아직 나보다 키가 작아 엄마라는 존재가 아래서 위로 올려다봐야 할 존재일 때는 내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후로 화가 날 때 나도 모르게 순간 버럭 대고 소리가 질러질 때, 난 내 딸이 앞으로 살면서 만약 이런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나처럼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소리를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든지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다든지 해서 그 순간을 현명하게 넘기고 다음 순간에 차분하고 이성적인 장면을 맞이하길 바란다면 나는 딸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한 번도 화를 다스리는 행동을 본 적이 없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화를 참으려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아이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이런 각고의 노력까지는 하지 않았을 리라 생각한다. 적당히 나 자신과 타협을 하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이 명제 자체를 회피했으리라. 왜냐면 어른이 된 지금 이런 문제가 먹고사는 데 그리 중요하지도 않을뿐더러 50여 년간 구축해온 나만의 틀을 지속해서 개선, 보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이를 위한 부모 마음 아니면 어렵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부모가 되어서 얻은 선순환


조직과 관계 속에서 어느 순간 상처 받거나 위축되는 나를 발견할 때, 예전 같으면 혼자 견디거나 자기 비하 또는 자기 연민에 스스럼없이 빠져들 때, 내 딸이 나를 보고 있고 나의 행동을 아이가 따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생각의 틀을 거슬러 올라오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에게 말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나 자신에게 하고 그로 인해 나의 행동이 바뀌어서 아이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선순환인 것 같다.      


내가 화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만 아이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아이가 지금 화를 막 낼 때 그 감정과 공감을 할 수 있는 내 모습과 좀 더 차분해지려는 내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안 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 등을 가지고 아이와 솔직히 얘기하면 서로 도와주면서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함께 발전하는 파트너십 같은 것을 맺었다. 


엄마도 같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현재 진행형 어른이라는 것을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 후로 어린 딸이 나보다 발전 속도가 더욱 빠르다. 눈치와 센스 있게 상황을 대처하며 나에게 간간이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엄마의 권위를 버린 대신 진정한 조력자를 얻은 셈이다.     


부모가 되고 나서 내 아이가 TV 드라마에서 상류층이라고 나오는 좋은 학벌과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았으면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마 그건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삶이라 만약에 그리 바라더라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고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나는 선하고 여유로운, 곧잘 웃는 사람이 되어 그리 풍족하진 않지만, 때론 다른 사람도 생각해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겪어봤었고,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삶이라 부족한 면은 조금씩 고쳐나가고 넘치는 것은 조금씩 덜어내면서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사회 경제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위인이나 의인도 있지만,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웠던 많은 멋진 것들을 장착해서 나도 이제부터라도 나를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서 먼 훗날 딸이 기억하는 말보다는 행동을 기억하는 엄마로 남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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