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늘 길 앞에 서면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더 크긴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 엄마 칠순이라 우리 4남매가 모처럼 시간과 체력을 모아봤다.
우리 엄마 70년을 사는 동안 나와 52년을 함께 했고 동생들과도 최소 45년을 함께 한 사이니까.... 누군가의 제안에 선뜻 연차를 내거나 각자의 가족 내 대소사를 조정하고 출발일 아침에 다들 들뜬 표정으로 만났다.
어른이 되면서 흩어져 각자의 삶을 꾸려가느라 명절에 만나면 새로 꾸린 우리 가족의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만나던 우리가 한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일명 "엄마 새끼들만"으로 팀을 꾸려 여행을 가는 것이다.
엄마는 믿기지 않는다며 손주들이 빠진 빈자석을 돌아보면서 연신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 엄마가 준비한 커다란 음식 포장용기... 시골로 갈수록 포장되는 곳이 잘 없다며 코로나로 걱정스러운 식당 사용에 해결책도 준비해오셨다. 그걸 본 우리들은 너나없이 "역시~우리 엄마네!"를 외치며 막내 남동생의 승합차로 옮겨 탔다.
허리 아플 나이가 된 우리들... 나는 우리 중에서도 허리 통증으로 걱정 많은 동생을 위해 우리 딸아이가 사용하던 커* 의자를 챙겨갔다. 장시간 차 안에서 허리가 반듯하지 않으면 허리 통증이 많이 온다는 동생을 위해 전날 밤 딸에게 빌려 현관 앞에 내놓았다. 혹시나 까먹고 갈까 봐.
우리의 여행을 위해 홍삼을 준비해온 동생... 그 덕분인지 여행 내내 쉽게 지치거나 피곤하지는 않아 실컷 웃고 놀 수 있었던 거 같다. 남동생은 여행 바로 앞에 우리의 여행지인 강원도로 출장을 다녀왔다고 피곤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길도 훤히 알고 있다며 자신하던 모습이 지금도 든든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도착지까지 내내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지만 쉼 없이 깔깔거리고 웃었던 것만 기억난다. 손주 녀석들이 빠진 자리에 늙은 엄마 새끼들이 앉아서 지금은 홍삼을 먹으며 허리 복대를 차고 있지만 그 2박 3일 동안은 우리가 아이들 못지않은 "귀요미 엄마 새끼들"이었다.
난 요즘 우리 집에선 아미인 우리 딸 덕분에 늘 BTS 노래를 듣지만 오랜만에 들어본 8090 가요를 틀자 너도 나도 떼창을 ㅎㅎ. 엄마도 아이들이 한창 부르던 그때의 노래들은 지금도 가사 그대로 훤히 알고 함께 떼창을 하셨다. 오랜만에 목청껏 소리를 질러 보니 몇 곡 안 부르고 바로 목에서 피 냄새가 난다며 또 까르르 웃고 홍삼을 건네는 손에 또 한 번 까르르 웃고.
우리 엄마는 정선 5일장에서 배추를 3통이나 사셨다.
"엄마, 놀러 와서 웬 배추를 사요? 어찌 다 먹으려고"
"이 배추가 맛있게 보이네. 겉절이 해 먹으면 맛있어"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준비하는 우리 엄마.
나도 남편이랑 딸이랑 여행을 가면 자연스레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지만 그날은 주방보조로 이것저것 심부름을 했다.
우리 엄마 양념통에는 각종 양념과 액젓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아마 우리 새끼들에게 가을배추로 겉절이를 해주실라고 단단히 계획하고 오신 것 같다. 오는 길에 엄마가 꽉 잠근다고 잠근 액젓 통에서 액젓이 새어 나와 우리 모두의 후각을 사로잡은 건 안 비밀..ㅎㅎ. 옛날 우리 엄마는 손아귀 힘이 참 셌는데 엄마가 잠그면 못 열었었는데 지금은 잠근다고 아마 꼭 잠그셨을 텐데... 새어 나온 액젓이 세월만큼이나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하루에 거의 배추 한 통씩을 겉절이 해서 다 먹어 치웠다. 우리 엄마가 나 어릴 적도 이렇게 음식을 잘하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우리 엄마의 요리 솜씨는 지금도 나날이 발전하나 보다. 내가 이제껏 먹어봤던 겉절이 중 단연 최고! 우리 엄마 말씀이 배추 겉절이로 먹으면 여행 가서 화장실도 잘 간다는 꿀팁과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구운 고기 또는 삶은 수육과 아님 뜨거운 밥과 먹는 배추 겉절이는 우리 여행 내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도 캠핑을 자주 하는데 늘 비비고 와 밀 키트에 의존해 왔던 나의 음식들이 참 초라해지고 아이와 남편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비법 소스를 전수받아 나도 캠핑 갈 땐 옆자리에 속이 노랗고 겉이 새파란 싱싱한 배추와 함께 갈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저녁 장을 보는 마트 안에서 남동생이 소주 진열대 앞에서 이것저것을 고르고 있었다. 만원이 넘는 소주를 들었다 놔두고 옆에 일반적인 소주를 골라가는 모습을 보며 누나들이 오늘 같은 날은 비싼 거 먹으라며 한 병에 만원이 넘는 소주를 카트 안에 넣어주며 또 까르르 한바탕 웃음을 짓는 누나들.
아직 초등학생인 손주 녀석들이 없으니 우리끼리 애들 눈치 안 보고 먹고 싶은 거 다 사라는 우리 엄마. 덕분에 우리는 라면,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엄청 주워 담았다.
저녁 후엔 어른 놀이인 화투를 모두 못하는 관계로 우린 "도블"이라는 보드게임을 준비해 갔다. 우리 딸이 즐겨하는 게임인데 나이 들어가는 어른들을 위한 집중력 강화엔 더없이 좋은 게임이었다. 그림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당황하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게 보이지 않는.. 우리 인간의 속성을 이용한 게임인 것 같았다. 한판에 만원씩 걸고 하는 도블 게임은 치열했다. 처음 해본 다는 우리 막내 남동생이 우승 두 번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우승을 했고 나머지 우리들은 옆에서 계속 모여서 연습한다고 까르르. 우리 엄마의 치매 예방으로 하자고 했는데 정작 우리 엄마가 1등 해서 돈을 다 가져가셨다.
돌아오는 길.. 지금도 여전히 우리 엄마로 그 자리에 당당히 계신 우리 엄마가 참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5남매를 키워내신 우리 엄마. 그리고 지금도 게임하면 돈을 다 쓸어가는 우리 엄마가 참 좋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지고 바르게 커줘서 고맙다고 하셨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 주신 엄마를 사랑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다시 일상으로... 남편과 딸아이에게 돌아오면서 나는 어떤 엄마, 아내가 되어야 할까를 다시 한번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여행을 시작할 때의 설렘은 많이 느껴봤지만 막상 여행에서 돌아올 땐 역시 내 집이 최고다라는 보금자리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서기 솔직히 많이 아쉬웠다.
왜냐하면, 이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나는 다시 어엿한 한 사람의 독립된 성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까마득한 어린 시절, 우리 5남매 깔깔거리고 웃고 싸우고 뛰어놀던 그때.
그때는 우리 엄마도 무척 젊고 아름다웠다.
짧았던 2박 3일 동안 우린 잠시나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왔던 거 같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언제 다시 갈까를 정하는 물음에 남동생이 장난스럽게 "1년에 한 번씩 가자.. 너무 힘들다"라고 하자 우리 엄마 "그러면 난 몇 번 못 간다" 장난스러운 농담 속에 괜스레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또 자주 가기로 했다. 누구든 출발 깃발을 들면 그 아래에 모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