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땀에 흠뻑 젖어 눈을 떠보니 늘 아는 시간..
새벽 2시 반..
언젠가부터 시작된 나의 갱년기 증상 중 하나다.
젊었을 때..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육체와 정신의 노화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언젠가부터 나에 관한 무언가를 설명할 때 자연스레 말머리에 붙여 쓰고 있다.
정말 젊었을 때는 한여름에도 땀 한 방울 나지 않고 목욕탕 사우나에 들어가 앉아 있어도 늘 뽀송뽀송 말라서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사람을 부러워 한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땀이 잘 나야 살도 빠지고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고 생각하며 나의 땀구멍이여 열려라~를 얼마나 소원했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냥 앉아 있어도 땀이 후끈하게 온몸에 순간 나는 걸 느낀다.
밤에는 늘 새벽 2시 반에 한번 깨서 여름엔 샤워를 하던지 아님 위에 옷을 갈아 입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그날은 여느 때와 같이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선 잠이 선뜻 깨버렸다.
거실을 서성이다 무심코 켜본 TV에서 한 음악방송에서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도망가자..... 우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그 깊은 밤 거실에 서성이는 한 갱년기 여성의 무딘 가슴에 그만 철렁하고 안기도 말았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뜬끔없이 터진 내 눈물은 곧 울음이 되어 깊은밤 내려앉은 거실의 정적을 깨고 흐느끼고 있었다. 귀에 들리는 숨죽인 내 울음 소리가 더 마음이 아파 울음은 이내 통곡에 가까울 정도로 온몸을 휘감았다. 노래가 먼저 였는지 내 울음이 먼저 였는지는 모르겠다. 한바탕 실컷 울고 나니 TV 화면속 청중들도 각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모두 눈물의 이유야 다르겠지만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만큼은 모두 현실에서 도망가는 꿈을 꾸고 있지 않았을까.
도망가자... 우리...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나는.
2년여 지속되는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 아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두기로 섬을 만들고 집콕과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도 이젠 도망가고 싶다.
어느 날 난데없이 시작된 나의 갱년기로 세상 처음 겪어보는 몸의 여러 변화들 그리고 여러 감정들의 널뛰기를 모두 끌어안고 꾸역꾸역 그냥 집콕만 하고 있기엔 내 갱년기가 너무 불쌍하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을 겪고 있는 지구촌 모든 이들이 힘들고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어 이런 유치한 투정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늘 엄마라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도 지금은 많이 힘들고 아프다.
도망가고 싶다. 어디로 갈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연인과 영원한 사랑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백년을 넘어 살아온 나의 마음과 몸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아 답을 알 수 없는 이 질문에 언젠가는 답을 찾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길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다.
오늘 하루도 갑갑한 마스크 속 숨이 많이 차지 않기를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