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최초의 자발적 지적 호기심이 샘솟다
오~ 이런 거였어? 그렇다면 이건 뭐지?
나만 몰랐던 설탕에 관한 이야기를 써본다.
며칠 전 다 써가는 올리고당을 쳐다보다 '이번엔 또 뭘 사야 하지?'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나름의 여정을 시작했었다. 며칠 걸려 도서관에서 관련 책도 몇 권 빌려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자료들도 얻어서 나름 전문가적인 지식은 아니지만, 아주 얕게나마 내가 앞으로 양념 진열대 앞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고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었다. 그리고 올리고당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금이나마 알고 나니 그 원조가 되는 설탕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아주 신기한 자발적 지적 호기심이 생겼다.
올리고당 진열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설탕들. 우선 색깔별로 눈에 들어온다. 엄마가 된 후로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딱히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흰색의 정제된 백설탕은 왠지 건강에 안 좋을 거 같다는 그런 마음으로 황색 설탕을 사곤 했다. 너무 까만 흑설탕은 좀 부담스러운 까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면 참 중요한 문제인데 그걸 만드는 과정은 너무도 단순하게 처리해온 사람인 듯하다.
나처럼 색깔에 이끌려 설탕을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백설탕에 비해서 흑설탕이나 황설탕이 건강에 더 이로울 거 같다고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와 함께 간단하게 한 번만 알아보고 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설탕에 관해서라면, 설탕의 재료가 사탕수수라는 말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얗고 고운 이 가루가 어떻게 옥수수같이 생긴 식물에서 만들어지는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딱 한 번만 알아보고 가고자 한다. 사탕수수라는 단어를 듣고 우리나라 수수를 떠올리는 건 나뿐이려나... 그래서 찾아봤다. 우리나라 수수는 한 1m 정도로 자라는 곡식인데 사탕수수는 2~6m 정도로 자라는 식물이다. 이 사탕수수의 즙을 끓이고 햇볕에 말려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 최초의 설탕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이 최초의 설탕은 마치 조청처럼 통곡물을 분해해서 그 곡물 안에 있는 여러 복합적 물질이 정제 과정 없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설탕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정설은 이러한 사탕수수즙에서 여러 복합적 물질들을 모두 정제해 버리고 단맛의 원료인 자당만이 들어있는 정제 설탕이 우리 음식에 너무 많이 들어가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정제 설탕은 사탕수수의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모두 제거된 식품으로 우리가 먹었을 때 지나치게 빨리 흡수되어 혈당대사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사탕수수를 고아서 최초로 결정화된 것이 어두운 갈색을 띠는 흑설탕, 단계별 정제 과정을 거쳐 이물질을 조금 더 뽑아내면 황설탕,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탕의 성분인 자당을 제외한 모든 성분을 제거한 백설탕이 만들어진다.
흑설탕과 황설탕에는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자당과 그리고 사탕수수의 영양분인 당밀이 함께 포함되어 있지만 백설탕엔 당밀은 없고 단맛을 내는 자당만 있다. 자당만 있는 정제 백설탕은 보기도 좋고 잡맛도 없고 수분함량이 낮아 쉽게 눅눅해지지 않아 장기간 보관이 쉬운 장점이 있다(양념은 약이다 - 박찬영 지음- 에서 발췌).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정제 과정을 통해 원하는 단맛을 내는 자당만을 추출해서 먹는다고 특별히 몸에 나쁜 것이 있을까?
기타 다른 부족한 영양소는 다른 식품을 통해서도 섭취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천연 상태의 먹거리를 통째로 먹는 것과 특정성분만 분리해서 먹는 건 인체에 작용하는 과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정제된 백설탕은 섭취 시 빠른 흡수로 혈당치를 상승시켜 인체 내 인슐린 과다분비와 같은 혈당 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정제된 백설탕의 여러 문제점 부각이 되자, 자연스레 황설탕과 흑설탕으로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1kg에 4000원 정도 하는 국내산 흑설탕은 백설탕으로 정제되기 전 원당에 가까운 게 아니라, 정제 설탕에 캐러멜 색소를 입힌 것이라는 사실을 여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설탕회사에서는 백설탕에 열을 가해 노랗게 변색시켜 "황설탕"을 그리고 캐러멜 색소를 입혀 "흑설탕" 만들었다. 그리고 각설탕의 종류에 따른 용도를 아주 쉽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나만의 막연한 추측으로 설탕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트 진열대에 있는 흑설탕이 사탕수수로부터 온 원당이라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렇게 혼자 착각하고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황설탕은 내 멋대로 사탕수수 원당과 백설탕 중간지대 어디쯤으로 스스로 정해놓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마트 진열대 앞에서 색깔로 설탕을 고르듯이 설탕회사도 나 같은 소비자를 상대로 색깔별로 설탕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처음에 서운하고 놀랍고 왠지 모를 배신감 따위를 느꼈던 감정이 이젠 자기반성으로 내가 새롭게 깨우쳤던 지적 호기심에 대한 결과를 쓰고 있다.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꼭 무농약과 유기농을 고집하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자연산과 최고급의 식재료들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는 덜 정제된 수입 원당을 사서 사용하기로 했다'라고 끝을 맺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나의 자발적 지적 호기심의 결론은 아니다. 내가 정말 새롭게 알아차린 것은 황설탕과 흑설탕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달은 것이다. 사실 각각의 용도는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고, 이런 것은 인터넷 창에서 아주 쉽게 바로 검색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이번에도 나만 여태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를 외치며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어디 나 같은 사람 없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집 황설탕은 어제처럼 오늘도 그대로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바뀐 인식으로 인해 양념통 속에 가득 찬 황설탕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안녕 황설탕, 이제 너를 어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