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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Aug 08. 2022

마트 간장 진열대 앞에서 잠시 버퍼링이 올 때

 그냥 지난번에 먹던 걸 살까 아님 세일하는 걸 사야 할까?

  이 크나큰 지구별 수많은 사람 중에서 정말이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주 작게나마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바람으로 끄적이지 않나 싶다. 때로는 조심스럽게, 아주 가끔은 은밀하게나마 나의 작은 글을 띄우고 남들이 내 글을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내 글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가 닿기를 바라며 밤낮으로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번에 이은 양념류에 관한 내 글들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바라기보다는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에 한 부끄러운 고해성사에 가까웠으며, 널리 많은 이들이 함께 읽기보다는 정말 나와 같은 무지함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말로 하면, 무지함 순서로 줄을 선다면 딱 내 뒤에 있는 몇몇 안 되는 분들과 함께 정말 은밀하게 나누고 싶은 심정으로 글을 쓴다.




  주방에 양념들은 수시로 바닥을 드러낸다. 몇 주 전 올리고당을 시작으로 지금은 간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엄마가 된 후로 내가 버린 간장병은 수십 통에 이르지만, 아직까지 나의 간장을 고르는 기준은 그저 대기업과 가격순이다. 내 기준에 들어온 간장으로 손을 뻗는 순간, 옆에 있던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엄마 간장이 뭐야? 이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아이는 묻지 않는다. 이 아이도 커서 나처럼 대충 대기업과 가격의 기준으로 간장을 고르고 먹고 살아갈까...


  이것저것 몸에 해롭고 유익한 것을 알고 따진다고 한들 우리가 먹는 것들은  여기 내 눈앞에 있는 마트 진열대에 줄지어 있는 것들 중에 어차피 한 병을 고를 예정인데,  첫째줄 아니면 둘째 줄 또는 맨 앞 아니면 맨 끝에 있는 것 아닌가. 뭘 그리 예민하고 피곤하게 세상을 살아, 그냥 손에 잡히는 거 싼 거 사자라고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살던 어느 날, "잠깐! 나 여기서 뭘 골라야 하는 거지? 오늘 저녁 간장 불고기에 넣을 간장이란 액체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원초적인 물음이 밀려왔다.


  양념류에 관한 책들을 읽고 검색을 하면서 느낀 첫 소감은 이 세상엔 양념류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따지고 살피는 현명한 구매자가 엄청나게 많고 조금만 관심만 가지면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나는 굳이 이 모든 것들을 애써 모른척하고 살아온 반대편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제 더 이상 간장 진열대 앞 버퍼링에 시달리지 말고, 내가 고른 간장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이거 말고 다른걸 고르고 싶다면 다시 고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정보만을 나누고자 한다.


다음 보기에서 양조간장과 관계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양조라는 말은 미생물의 발효에 의하여 주류나 간장, 된장, 식초 등을 만드는 일     

 ②조선간장(국간장)     

③ 왜식 간장     

④ 산분해 간장      


나는 이제껏 양조간장이라는 말은 왜(식) 간장, 일명 시중에 진간장으로 시판되는 달짝지근한 간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서양의 "양"과 만든다는 "조"가 합쳐서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간장이 양조간장이 아닐까 또 혼자서 그리 착각과 오해의 숲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양조"라는 말 자체가 양조장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생물의 발효로 술이나 장을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메주를 만들고 짚푸라기에 있는 미생물(바실러스균)을 이용해 콩을 발효시켜 만든 조선간장, 흔히 국간장이라고 일컫는 우리 전통 간장은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양조간장이었다. 산이나 염기 등의 화학처리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발효식품을 뜻하는 것이니, 콩을 발효시켜서 만들어진 조선간장은 당연히 일등 양조간장인 것이다(답 ④).


반면 간장 불고기나 감자조림에 사용하는 간장은 왜간장 또는 양조간장이라는 통상적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세대가 지날수록 왜간장이라는 말보다는 양조간장이나 진간장으로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콩으로만 만든 메주와 소금물만을 사용해서 발효시키는 국간장과 달리 양조간장은 메주를 만들 때 콩 또는 식용유등을 짜로 남은 탈지 가공 대두 등과 밀을 함께 사용한 개량식 메주를 장기간 발효하므로 이때 밀이 분해된 포도당으로 더욱 달짝지근한 맛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간장에 사용하는 사용하는 탈지대두는 대부분 수입산으로 식용유를 짜고 남은 것을 이용하므로 가격이 저렴하다.


우리가 마트 진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간장에 대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혼합간장

② 산분해 간장

③ 맛이 깔끔하고 값이 저렴하다

100%  양조간장


 위 문제 보기 중 하나로 나온 산분해 간장이란 국간장, 왜식 간장의 양조간장과 달리 미생물을 사용하지 않고 탈지 가공 대두(콩 단백질)를 식용 염산을 사용하여 아미노산액을 얻고 간장의 맛과 색을 위해 식염, 인공감미료, 캐러멜 색소 등을 첨가해 양조간장과 유사하게 만든 제품이다. 먼저 설명한 두 가지 간장은 두세 달에서 많게는 일 년 넘게 발효기간이 소요되지만, 산분해 간장은 이삼일이면 간장이 뚝딱 만들어진다고 한다. 제조과정에 관한 여러 논란으로 100% 산분해 간장보다는 산분해 간장에 양조간장을 혼합한 혼합간장이 유통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간장이라고 한다. 이들 진간장의 뒷면 라벨을 살펴보면, 식품유형이란 칸에 "혼합간장"이라고 정확히 표기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괄호 열고 산분해 간장 70, 양조간장 30 괄호 닫고라고 적혀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진간장이라고 하는 건 양조간장만으로 진하게 만든 게 아니라 산분해 간장과 7:3 또는 8:2로 섞어서 만든 혼합간장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답 ④).


  이번 기회에 나는 처음으로 메주에서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과정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간단히 옮기자면, 콩을 삶아 찧은 후 덩어리 모양으로 만들어서 지푸라기로 매달아 30여 일을 따뜻한 곳(30도 정도)에서 발효시킨다. 이때 짚 속에 있는 미생물(바실러스균)이 메주 속으로 들어가 흰색 또는 노란 곰팡이가 메주 속까지 실처럼 퍼지게 된다고 한다.  유용한 미생물인 바실러스균에 의해 콩 속의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이다. 잘 발효된 메주는 이후 소금물에 넣어 40여 일을  발효 숙성시킨다. 이때 메주 속에 있는 당성분과 아미노산의 화학반응으로 색깔이 검게 변한다고 한다. 간장이 검은색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지점이었다.


  메주 속의 효소가 녹아 나와 콩 단백질에 작용해 서서히 분해가 일어나고 콩 단백질이 분해되어 많은 아미노산이 녹아나 놀수록 간장 맛은 더욱 감칠맛이 나고 좋아진다. 이후 장 가르기로 위에 뜬 맑은 액은 조선간장, 국간장으로 불리는 전통간장으로 국이나 나물무침에 사용한다. 이후 담근 횟수가 5년 이상되어 오래 묵어서 진하게 된 간장은 진간장이라고 하고 이때 쓰인 "진" 이란 한문으로 묵히다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오랫동안 묵힌 덕분에 맑은 조선간장보다 단맛과 색이 깊어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 마트에 있는 진간장이라는 상표를 붙인 간장은 이런 간장이 아니라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을 혼합한 혼합간장인 것이다.



 

  올리고당, 설탕에 이은 간장에 대한 오해와 착각들도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잘못 형성이 되어 있었다.  지금 우리 집 주방에 있는 진간장..... 산분해 간장과 양조간장을 7:3 또는 8:2의 비율로 혼합된 간장을 굳이 찾아서 구매한 기억은 없는 걸로 봐선 나는 진간장의 진이 뜻하는 것이 "진짜" 또는 "진한"이라는 뜻이라고 또 혼자 간장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간장이 혼합간장인지 모르고 평생을 먹어온 사람 어디 또 없어요?라고 혼자 소리라도 질러 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젠 간장을 고를 땐 내가 고른 간장의 뒷면을 꼭 돌려 확인할 것이다. 간장병의 뒷면 라벨에는 식품유형 칸에 한식간장, 양조간장, 혼합간장이라고 각각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다 표시하고 있으니까 괜한 나의 억측과 오해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며칠에 걸쳐 알게 된 나의 최애 양념인 간장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비록 전문가적인 깊고 면밀한 통찰까진 아니더라도 바로 내일 마트 진열대 앞에서 내가 장바구니에 담는 것이 적어도 어떤 것인지는 알고 구매하고 싶다는 아주 작은 지적 호기심은 아직까지는 유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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