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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May 06. 2022

산은 매년 태어난다

도비산을 오르며

누군가는 첫인상이 다 한다는 데 나는 첫인상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사람을 찰나에 알아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러지 못해서 삶은 몇 번 보고 오래 봐야지 그나마 감이 온다.


부석사의 첫인상은 화려했다. 풀또기라는 장미과 벚꽃 때문인데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에 벚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산은 새싹이 돋아서 새로 태어나고 연분홍 꽃잎은 눈처럼 떨어졌다. 사진으로 담아도 그 아름다움이 안 담아져서 기억 속에 넣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부석사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첫인상은 차차 바뀌었다. 부석사는 화려하기보다는 정갈한 곳이다. 장독대는 줄지어 서있고 곳곳마다 올라가는 길에 작은 계단이 있다.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면 의자가 있어서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초록색은 다 같은 초록색이 아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유화를 따라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모네의 수련을 따라 그리는 데 초록색과 파란색이 다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도비산을 걸으면서 이 생각을 더 공고히 했다.


초 5월의 도비산은 다시 태어난 듯했다. 갓 나온 새 이파리의 여리여리하고 청명한 초록색이 산을 가득 채웠다. 깨끗하고 싱그러운 새 잎이었다. 등산을 자주 하지도 않았고 잎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아서 이런 이파리 색은 처음 보는 듯했다. 몇십 년을 제자리에서 견딘 나무들이 내보내는 새 이파리는 맑은 색을 냈다.


며칠 부석사에 있고 나서 인상은 많이 바뀌었다. 화려함보다는 고요함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언덕에 올라 의자에 앉아 저먼 마을까지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면 아직은 약간 차가운 바람이 살짝 불어와 풍경을 흔든다. 풍경에서 맑은 종소리가 나는 순간 마음이 고요하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초여름의 햇살은 따뜻한데 늦은 봄의 바람은 서늘한 것이 고요함을 더 자아낸다. 꽤 오랜 시간을 한 의자에 앉아서 있으면 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시계의 숫자가 아닌 그림자가 변하는 걸 보고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가을의 도비산이 궁금해졌다. 한여름을 보내고 이제는 다시 소멸해 가는 계절인 가을에 어떤 모습일까. 지금 보여주는 생명력과 에너지가 가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 가을의 도비산도 한 번 가보고 싶다.


푸른 녹음의 도비산을 감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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