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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May 09. 2022

해미읍성 연등축제와 호두과자

축제는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먹거리도 참 중요하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해미읍성에 도착했다. 해미읍성은 1400년 대, 조선시대에 지어진 읍성으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내부는 건물이 많이 소실된 지 잔디밭이 넓게 늘어졌지만 소풍 오기로는 딱 좋은 곳으로 보인다.



해미읍성 오른쪽의 작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문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처음에는 의미를 몰랐는데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말기에 천주교 박해가 일어난 곳이었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죽음을 당해서 이를 기억하기 위해 공간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해미읍성의 연등축제는 나보다는 M이 더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M은 해미읍성을 다 보고 나오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언가를 찾았다. "뭘 찾고 있어?"라고 물어보니까 M은 여전히 눈을 저 멀리 무언가를 찾으면서 대답했다. "먹거리!"


M은 이내 폴란드의 작은 마을의 축제를 얘기했다. 그런 축제는 언제나 술과 음식이 넘쳐난다고, 그래서 연등축제를 간다고 했을 때도 이것저것 먹어볼 생각으로 왔다고 했다. M의 이야기를 듣는데 호빗에서 나오는 마을 축제나 타이타닉 3등석 사람들의 축제가 떠올랐다. 술과 음악, 그리고 음식이 있는 유럽의 파티 말이다.


M은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어쩐지 저녁을 조금 먹던 M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면서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러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여긴 간식 없어. 연설을 엄청 많이 하는 행사야."


M은 축제에 집중하자는 의미로 진행되는 무대 트럭 앞에서 서서 기다렸다. 나는 M을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아마 한 시간 이상 연설할 거니까 저기 가서 음료수나 사 먹자." M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한 시간 더?" 이러고는 조용히 따라왔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1+1 하는 헛개수를 사들고는 의자에 앉았다. 건너편에 보니 호두과자 상점이 있었다. 나는 M에게 먹거리를 줄 겸 16개짜리 호두과자를 사 왔다. 호두과자는 맛있었다. M과 나는 그 자리에서 16개를 먹어치우고는 16개를 더 사들고 연등 축제를 보러 갔다.


여덟 시가 넘으니 밤공기가 찼다. 우리는 연등 퍼레이드를 보고 싶어서 기다렸다. 연설과 축하 공연이 계속됐어 손과 발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결국 M과 나는 거의 다 끝난 가 싶은 때 부석사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 퍼레이드는 못 봤지만 연등은 충분히 봤다고 서로 위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M은 호두과자를 들고 신나했다. M이 연등 축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호두과자라고 했다. 축제는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먹거리도 참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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