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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Aug 08. 2022

사이공의 마살라 밀크티

야경은 덤

호치민시 시청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빈컴 센터가 있다. 빈컴 센터는 한국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 그룹이 운영하는 쇼핑몰, 사무실 겸 주상복합 아파트다. 빈컴 센터를 오른쪽으로 두고 앞을 보면 100년이 넘어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상아색 건물

이 건물은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 이국적인 외관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건물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곡선 계단과 엘리베이터다. 엄청 오래된 건물인데도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게 놀라웠고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또 다른 계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런 고급 아파트는 사용자와 고용인이 사용하는 계단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고용인이 이용하는 계단은 벽 뒤편에 숨겨 있었다.


엘리베이터 도르래

지금 쇼핑몰로 사용되는데 저 멀리서 옥상을 보면 꼭대기 층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빨래들이 널려있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든 공간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옥탑방이자 진정한 '루프탑'인 이곳의 한 달 월세는 얼마일지 궁금했다.


꼭대기 층에는 마살라 밀크티 맛집이 있다. 마살라는 인도의 향신료로, 나는 한 가지 향신료를 지칭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여러 향신료가 혼합된 향신료다. 2주간 사이공에 머무르는 동안 세 번이나 이곳에 와서 밀크티를 마셨다. 이곳의 밀크티는 따뜻하고, 마시면 소화가 잘 됐다.

저 아래 보이는 것이 마살라 밀크티. 야경 찍느라 밀크티는 제대로 찍지 못했다.


처음부터 마살라 밀크티를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다. 사이공 시내를 걷던 중, 저 멀리 보이는 'Tea & Herbal' 네온을 보고 들어갔다. M과 나는 둘 다 배가 불렀지만 후식을 먹고 싶었고 술은 마시기 싫지만 집에 들어가기는 아쉬웠다. 허브차라니, 우리 상황에 딱 맞는 선택지였다.


카페는 밝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었고 가죽 공예도 하는지 가죽이 진열돼 있었다. 무엇보다 고양이 두 마리까지 있었다. 카페에는 테라스가 있는데 이 테라스에 앉아서 보는 야경이 아름다웠다. 사이공의 랜드마크인 비텍스코와 빈컴센터, 오토바이로 바쁜 거리를 보면 멍 때리기도 좋은 곳이었다.

카페에 사는 고양이


마살라 밀크티는 카페인이 조금 들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안하고 마시고 싶은 정도로 맛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데 끝 맛은 박하처럼 시원했다. 이때 나는 감기에 걸려서 음식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마살라 밀크티가 더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마살라 밀크티의 강력한 향신료는 느낄 수 있었다.


평화롭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고 다들 조용히 앉아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이곳에 가기 위해 내가 가고 싶었던 목록의 다른 곳을 지워야만 했다. 그래도 괜찮을 정도로 이곳은 매력이 있었다. 사이공에서 마살라 밀크티의 매력을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사이공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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