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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Jun 19. 2019

두 번째 여행, 대전 한밭수목원 서원

나의 추억, 그리고 누군가의 추억이 될 공간, 한밭수목원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일에 치여있던 어느 평일의 오후 시간이었다. 업무 특성상 휴대폰으로도 업무 전화가 많이 오는 편이라 근무시간에 휴대폰으로 온 낯선 전화에 스스럼없이 업무 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업무 관련은 아니었다.  별 기대 없이 지원했던 한국관광공사 기자단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대외활동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기왕이면 잘해봐야지, 다짐하며 어떤 곳을 소개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지원 당시에는 대흥동이나 대동 하늘공원을 소개하고 싶다고 썼던 것 같은데, 대동은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엔 적절치 못한 것 같고... 대흥동은 좀 밀도 있게 소개해주고 싶고... 시의적절한 대전 여행지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바로 한밭수목원이었다.



  

한밭수목원 서원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총 4개. 많은 분들이 엑스포시민광장에서 들어가는 입구를 주로 이용할 텐데, 서구보건소 정류장에서 한밭수목원으로 가려는 분들이 이용하는 입구.





한밭수목원은 내게 굉장히 의미 있는 공간이다. 중학생 시절, 사진동호회에 들어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일주일에 두 번까지 수시로 드나들며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때는 지금처럼 뻔쩍뻔쩍하게 꾸며놓은 동원도 없었고, 서원의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하지만 대전에는 서울숲, 선유도 공원같이 잘 꾸며진 넓은 공원이 많지 않았기에 늘 한밭수목원으로 모였던 것 같다. 


엑스포 남문광장에서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볼 수 있는 광장. 벽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엑스포 시민광장에서 서원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작은 공터에서 우선 모인 후, 여기저기 흩어져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추억 때문에 나는 아름답고 깔끔하게 꾸며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원보다, 서원을 훨씬 좋아한다. 익숙한 풀 내음,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추억들, 깔끔하지는 않지만 온갖 식물들이 얼기설기 섞여 어우러지는 이 서원을.




한밭수목원은 2005년도 서원을 시작으로 하여 2009년도에는 동원을, 2011년도에는 열대식물원을 차례로 개원하며 점차 그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한밭수목원을 검색하면 거의 동원만 나와서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 서원과 열대식물원, 그리고 중앙에 엑스포시민광장까지 합치고 나면 39만㎡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열대식물원 근처에 곤충체험관도 생긴 것으로 보아, 규모가 차츰 커져가고 있는 듯하다. 


한밭수목원 동원과 서원 사이에 자리 잡은 엑스포시민광장. 자전거, 보드 등을 타는 사람들과 연을 날리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액티비티를 즐기고 있다.


때문에 한밭수목원을 검색했을 때 주로 나오는 동원 쪽만 돌아도 진이 빠진다. 게다가 동원은 보기에 아름다운 낮은 식물들, 가령 장미원이나 허브테마파크 같은 곳이 많다 보니 그늘이 많지 않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랄까. 예쁘게 잘 꾸며져 있어서 사진 찍기 딱이기는 한데, 금방 지쳐서 어느 순간 벤치를 찾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는 벤치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동원은 콘셉트가 명확한 공간으로, 순천만국가정원이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서원은 다르다. 오래된 고목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고, 그 아래론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옹기종기 자라나고 있어 숲에서 맡을 수 있는 상쾌한 내음이 입구에서부터 확 느껴진다. 나무가 많으니 시원한 그늘도 동원에 비해서 훨씬 많은 편이고, 편안하게 걸으면서 산책할 수 있게끔 길도 잘 닦아 놓았다. 동원이 예쁘게 잘 꾸며놓은 정원 같은 느낌이라면, 서원은 동네에 하나씩 조성되어 있는 공원 같기도 하고 동네 뒷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동원에 비해 서원이 자연에 가깝고, 친숙한 느낌을 자아낸다.


동원보다 오래됐기 때문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수목들이 눈에 띄고, 돗자리를 깔고 누워 낮잠을 청하기에 적절한 공간들도 훨씬 많다. 가령 대나무숲이 조성된 넓은 공터라던가, 이곳저곳 설치된 쉼터 같은 곳 말이다. 수목들이 두서없이 마구 자라난 것 같지만, 공간마다 명확한 주제가 정해져 있다. 버드나무숲, 명상의 숲, 단풍/신갈나무숲, 물오리나무숲, 습지원 등등. 산에 오르면 여기저기 자라나 있는 수목들이 서원에 집약적으로 펼쳐져 있다.

동원이 정원 같은 느낌이라면, 서원은 숲 같은 느낌이다. 숲 안쪽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수목들이 자라나고 있다.


특히 나는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는 명상의 숲과 습지원 쪽을 좋아한다. 먼저 명상의 숲은 사시사철 푸릇푸릇 한 대나무숲이 빼곡히 심겨있어 교토의 아라시야마 같은 느낌으로 사진을 찍기에 적절하다. (음.... 규모 면에서 비교하기 어렵긴 하지만, 확실히 잘 꾸며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앞으로 넓은 잔디밭 공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대나무 숲이 만드는 그늘 때문에 휴식을 하기에도 적절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흩어져 사진을 찍다가도, 미리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곳을 중간 집합장소처럼 자연스럽게 모여서 쉬었던 기억이 난다. 이날에는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돗자리를 깔고 낮잠을 자는 커플을 볼 수 있었다. 


명상의 숲 근처. 이렇게 대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늘마다 벤치가 설치되어 있고, 담장에는 담쟁이넝쿨이 점령하고 있다.


습지원 근처에는 아무래도 물이 흐르고 있어서인지 돌다리나 나무다리가 많은 편인데, 그게 또 사진 찍기에 적절해서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진들을 건져냈다. 푸릇푸릇 한 수상식물과 돌다리, 그리고 인물이 어우러지니 베스트 컷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지사. 


습지원 쪽에 대규모 공사가 완료되고 나서 연꽃류의 식물들이 많아져 아마 여름에는 연꽃 무리들로 장관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소금쟁이들은 이곳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는 것을 더욱 공고히 한다.

  

사진에는 돌다리만 담겼지만, 옆에 나무다리도 설치되어 있다. 연꽃류 식물이 빼곡히 자라나있어 아마 한 달 뒤에는 연꽃으로 가득할 듯싶다.


동원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서원이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인지 서원은 '고즈넉하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특히 5~6시 해 질 무렵에 서서히 물러가는 태양의 따뜻한 빛깔과 푸르른 녹음이 어우러져 우러나는 그 분위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에서 나오는 숲과 같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풀벌레와 여름 새들의 하모니….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 커플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사진 찍으러 많이 왔었지, 남자친구랑 같이 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많지 않기에 삼각대를 들고 가서 셀프 스냅샷을 찍기에도 좋을 듯하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어도, 그늘이 많아서 시원하게 다닐 수 있으니 데이트 장소로 제격이다. 

  

서서히 지는 태양의 따뜻한 빛깔이 푸르른 녹음과 시원한 습지원의 물빛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동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보다 특색 있고 아름다운 관경을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서원의 관경은 매력적이지 않기도 하고. 특히 여행객들에겐 서원보다는 동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원만이 가지고 있는 고요하고 따뜻한 분위기 또한, 동원만큼이나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흔한 듯한 관경이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자연의 매력을 이곳 서원에서 톡톡히 누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동원은 정형화된 도시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면, 서원은 얼기설기 피어나는 생명력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멋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가족단위로 오는 분들에겐 동원보다 서원이 여러 식물들에 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편이고, 들풀 같은 작은 꽃들이 많아 자녀들 교육에는 서원이 더 제격인 것 같다.)


키가 큰 나무들 아래로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피어있다. 동원처럼 꽃들만 집약적으로 피어있는 게 아니라서 개인적으론 좋았다.

나는 여러 추억들과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서원을 훨씬 좋아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골라 즐길 것을 추천한다. 참, 체력과 카메라 배터리가 동시에 방전된 관계로 이번에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동원 쪽에 열대 수목원도 굉장히 잘 조성되어 있으니 그곳도 함께 가면 좋을 듯. 참고로 열대 수목원은 계절에 따라 관람시간이 다르기는 한데, 보통 오후 6시면 닫으니 참고하시길.


개인적으론, 동원은 봄(특히 장미가 예쁠 5월)에 가는 것을 추천하고, 여름에는 버드나무숲 등 여러 공간에서 조성된 숲들의 시원한 그늘을 만끽하거나 습지원에 피어나는 연꽃을 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동원에도 하목정 쪽에 조성되어 있는 수생식물원에 연꽃류가 조성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가을에는 동원의 핫한 핑크 뮬리나 서원 잔디광장 쪽의 갈대숲도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사시사철 따뜻한 열대 수목원을 추천한다.


잔디광장 쪽 버드나무. 해 질 무렵에 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살을 머금어 더욱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전의 대표 여행지, 한밭수목원. 그중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모여있는 서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추억을 담아 가기를. 나아가 이 공간이 누군가의 행복한 기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S. 참고로 이곳에는 엑스포과학공원과 대전 예술의 전당, 대전 시립미술관 등 온갖 문화시설이 집약적으로 있으니 짧게 대전 여행을 하는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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