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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배운 것

오늘의 감사일기와 나에 대한 알아차림

by 꼼지맘

예상보다 무거운 하루, 창고 이사

오늘 창고 이사를 했다.

남편과 나는 많지 않은 짐이라 생각했다.
손뜨개 실과 잘 쓰지 않는 물건 몇 가지 정도.

그래서 1톤 트럭이면 충분하리라 믿었다.

남편은 지인에게 트럭을 빌리러 갔고,
나는 그동안 카페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후, 집에서 대기하던 막둥이가 카페로 찾아왔다.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중

요즘 막둥이와 나는 대화의 방법을 찾는 중이다.
나의 방식과 아이의 방식을 서로 맞추려는 시간.
작은 아이는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나도 쉽지 않다.
오랜 세월 몸에 밴 대화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만들어가는
‘자기만의 세계를 대하는 방식’과
내가 살아오며 익숙해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 거리감이 얼마나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함께 살아가며 대화의 습관을 맞춰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삶의 방향, 가치, 생각의 변화, 몸의 변화,
그리고 외부의 영향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어제의 남편과 오늘의 나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이유

나는 안다.
그 사람의 모든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나 또한 이해받기 어렵다는 걸.

하지만 막상 받아들이기란 참 어렵다.
나는 종종 ‘문제는 밖에 있다’고 생각하며
상황을 탓하고 만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이토록 어렵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세상을 향한 따봉과 빠큐

오늘 카페에서 막둥이에게
아주 재미있는 걸 배웠다.

창문을 향해 혼자 따봉을 하는 것이다.

“그게 뭐야?” 하고 물었더니,
“내가 뭔가 잘했다고 생각될 때 하는 행동이야.
세상을 향한 따봉이지.” 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속상하거나 화나거나 마음이 불편할 땐
세상을 향한 빠큐를 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꼰대 같았던 하루

창고 이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짐은 많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생겼다.

아이들은 ‘당근’에서 이사 경험이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우리는 단순히 물건 몇 개 옮기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아이들의 판단이 옳았다.

남편과 나는 꼰대 같았고,
그 사실을 저녁 식탁에서 솔직히 인정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칠 즈음, 그게 후회로 남았다.


불편함을 지나 배우는 시간

식사 후, 우리는 ‘서로의 대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그 시간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안다.
이 불편함이 우리를 조금 더 나은 관계로
이끌 거라는 걸.

감정보다 이성이 늦게 따라오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라 믿으며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다.


나의 요구, 그리고 깨달음

그날 대화를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사실 나는 오늘 내내
‘꼰대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걸 아이들에게 솔직히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말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 뒤에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숨어 있었음을
잠들기 전에서야 알았다.


오늘의 감사, 그리고 배움

그리고 아침에 막둥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세상을 향한 따봉과 빠큐.

오늘 하루의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오늘 하루의 나는, 따봉과 빠큐 사이 어딘가에서 배우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참 많은 감사가 남았다.

아이들이 나와 잘 지내보려고 애쓰며
대화의 방법을 찾고, 나를 이해하려 노력해주는 모습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비록 용기 내어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꼰대 같았다’는 걸 인정하고 더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감사합니다.


급하게 찾은 당근 아르바이트 분이
정말 잘 도와주셔서 감사했고, 아이들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에 감사합니다.


오늘, 막둥이에게 유쾌한 방법 세상을 향한 따봉과 빠큐를 배운 일에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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