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처럼, 가족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만 한국에 남을 거라는 사실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동유럽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가버렸고, 엄마 아빠 사랑이는 정말로 이제 한국에 가야만 했다. 여행을 다니며 사랑이와 치고?박고! 싸울 때는 혼자 있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그 날을 마주하고 보니 싱숭생숭하기만 하고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싫거나 두려운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혼자 폴란드에 남아 현희 언니와 지낼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아빠 엄마가 떠나시는 날 공항으로 가기 전 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렌트카 반납시간을 고려하지 못해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 사랑이는 나와 나머지 짐을 현희 언니네 내려주고 바로 공항으로 가셔야만 했다. 아빠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늘 덤덤한 척(?)을 하시는데, 엄마는 감성적이라 어제 저녁부터 걱정과 염려의 말을 많이 하셨다. 그 때 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걱정 말라며 영어 엄청 늘어서 돌아가겠다는 말로 안심을 시켜드렸다.
짐을 다 옮겼다. 이제 사랑이와 아빠와 엄마를 떠나 본야 하는 순간이 왔다. 엄마는 계속 내 손을 어루만지셨다. 울음을 참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쿨 한 헤어짐처럼 보였겠지만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니 지금도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2019.9.18 - 바르샤바를 떠나시는 아빠와 엄마, 사랑이
현희 언니의 말로는 ‘쿨한 이별’을 마치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함이 없이 현희 언니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앞으로 내가 지내야 할 숙소를 엄마 아빠 없이 나 혼자 올라가는 순간에야 ‘내가 폴란드 독립여행’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는 짐정리를 하고, 싸온 음식들을 정리하면서 현희 언니와 대화를 나눴다. 너무 좋은 언니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앞으로 힘든 순간도 있겠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내가 지낼 언니 집도 너무 마음에 들고,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폴란드에서의 3개월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정말 기대가 된다. 열 일곱 살 폴란드를 시작으로 그 다음 어떤 세상이 나에게 펼쳐질지 상상해보며 오전 오후를 즐겁게 보냈다.
현희 언니네 집에서, 아니 폴란드 바르샤바의 내 집^^에서 먹은 첫 점심은 김치 찌개였다. (김치찌개로 시작을 해서 김치 볶음 비스무리하게 끝났지만) 정말 맛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너무 금방 갔다.
아빠는 바르샤바 공항을 떠나시기 전 아빠의 영상편지 첫 번째 편을 전해주셨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명심해야 할 몇 가지 내용에 대한 것이었다. 신앙적 성장과 생각하는 능력의 성장,외국어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기도로써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
“네가 왜 폴란드에 와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언어적인 동기부여를 받고 남들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기죽지 말고, 충분히 잘 할 수 있으니 폴란드어와 영어를 열심히 준비해라!”
대충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 바로 신앙적인 부분이었다. 한국에서도 성경을 읽고, 엄마와 함께 작년 1년 간 성남 신학교를 다니며 성경을 공부하고 수요일,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폴란드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앙생활이 펼쳐질 것임에 분명하다. 다른 나라, 다른 교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니 말이다.
폴란드에서 내가 다니게 될 교회는 바르샤바 한인 교회다. 나의 룸메이트 현희 언니도 바르샤바 한인교회 청년부에서 만났다(나도 청(소)년이다 ^^).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그리고 자라왔던 교회는 도서관 교회다. 목사님이신 아빠가 특수 목회를 하셔서 주중에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교제할 수 있었지만 교회 주일학교 안에서 청년 언니 오빠들이나, 내 또래 아이들은 많이 없었다. 기독교교육을 중심으로 한 특수 목회였기에 대형 교회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신앙생활과 수많은 일을 경험했지만, 또래, 언니 오빠 친구들과의 소통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항상 어린 동생들로 바글바글하고 대부분 어른들과 소통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한인교회에서 수요예배, 주일예배를 나가며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솔직히 있다. 특히 청년부 언니, 오빠들과의 교제는 또 다른 설렘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폴란드에서 한 단계 성숙한 신앙생활에 대한 기대와 각오를 다지며 나는 현희 언니와 바르샤바 한인교회 수요 예배에 참석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웬걸. 생각 보다 가는 길은 멀고 복잡했다. 트레인도 타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며 폴란드에 있는 대중교통은 다 이용해 봤다. 초행 길이다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는데 교회를 다닐 때마다 갈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그러나 혼자 가는 게 아니어서인지 가는 길마저 재미있었다.
(어플이 자동 뽀~샵 ^^)
조금 일찍 도착해 출출한 마음에 간식을 먹다 보니 벌써 예배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예배 인도는 나은이 언니가 했는데 현희 언니가 주일 청년 예배 인도할 때 와는 또 다른 모습이였다. 두 언니의 모습 가운데 신앙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보여 멋있기도 했고, 동시에 동기부여도 많이 되었다.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해주신 다니엘의 전체적인 흐름 설명도 너무 좋았고 이어지는 기도 시간에 같은 기도 제목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도 즐거웠다. 예배와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은 그 어느 때 보다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오늘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혼자, 밤을 맞이하는 것도, 처음으로 외국에서의 수요예배에 참석한 것도 다 꿈만 같다. 현희 언니와는 이미 몇 달은 같이 지낸 것 같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지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