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하는 건데 끝까지 해보려고요
약 일주일 전에 저는 전자피아노를 샀습니다. 한동안 고민한 뒤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한 달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 피아노가 있는데, 왜 또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또, 피아노가 어떻게 본다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건 두고 봐야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사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고민해봤습니다.
하지만 각고의 끝에 전자피아노를 장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가격대는 최대한 낮은 제품으로 고려했지요. 요즘은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정보나 구매팁을 얻을 수가 있더군요. 여러 개의 포스팅과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것을 살지 골랐습니다. 제가 산 제품은 전자피아노 중에서 가장 최저가 가성비 제품으로 잘 알려진 롤랜드(Roland)의 FP-10입니다. 가격대는 약 65~70만 원 정도였고요. 이걸 고른 가장 큰 이유는 타건감이 그래도 전자피아노 중에서는 흐물흐물하지 않고, 적당한 뻑뻑함이 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롤랜드 회사의 직원 같네요..
아무튼, 피아노를 온라인으로 구매한 지 며칠 되지 않아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제 방 뒤편에 설치하였죠. 건반을 실제로 눌러보니까 제가 그동안 생각했던 전자피아노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전자피아노를 가지고 연습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진짜 멜로디언이나 장난감 피아노와 같이 피아노 건반이 긴장감도 없고, 너무 잘 눌렸습니다. 물론, 그때는 유치원생이었으니까 그렇게 쉽게 눌리는 게 좋았죠. 하지만 지금은 전자피아노로 연습하더라도 최대한 일반 피아노와 비슷한 느낌을 내는 제품을 갖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산 전자피아노는 건반 수도 일반 피아노와 똑같이 88개가 있으며, 건반의 너비도 직접 재봤는데 거의 같더라고요. 이제는 대부분의 전자피아노가 일반적인 피아노 규격에 딱 맞추어 나오는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전자피아노를 구입한 가장 큰 까닭은 바로 ‘소리’에 있습니다. 혼자서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살지 않는 이상,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소리가 어디론가 새어나간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제가 피아노를 치듯이, 제가 사는 집 위/옆/아래층 등에서도 피아노를 치는지 가끔씩 소리가 들립니다. 물론, 이게 그렇게 크게 들리지는 않습니다만, 아침 일찍이거나 저녁 늦게 들린다면 피해가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도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 전자피아노를 샀습니다. 전자피아노는 소리를 마음껏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가장 작게 소리를 틀어놓으면, 핸드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보다 작게도 출력이 됩니다. 밤에 핸드폰이나 TV를 안 보는 사람은 없겠죠. 그렇게 마음 편하게 피아노를 칠 수가 있습니다. 또, 아예 밤 열 두시나 새벽 한 시처럼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도 얼마든지 쳐도 됩니다. 왜냐하면 헤드폰을 끼면 되거든요. 헤드폰을 착용하고 전자피아노를 치면, 외부에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연주 환경입니까?
그동안 저는 낮에 무슨 일이 있으면 피아노를 칠 수가 없었습니다. 낮에 대학원 수업이 꽉 차 있거나, 아니면 불가피한 일로 대학에 직접 다녀오면(왕복 6시간), 그날의 낮은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피아노는 내일로 미루어야 했죠. 실질적으로 집에서 마음 편하게 피아노를 치는 시간대는 약 오전 11시~오후 6시 사이인 것 같습니다. 이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연습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대는 특히 주말에 학회라도 열리면, 아주 정확하게 겹칩니다. 또, 앞으로 교회 사역을 한다면 주일(일요일)도 못 치게 될 것은 뻔하겠고요. 이렇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피아노 연주의 기회는 사라지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낮에 못 쳤다면, 밤에 잠깐 연습할 수가 있으니까요. 특별한 취미가 현재로서는 피아노인 저로서는 대단히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이는 앞으로 제가 좀더 완벽하게 어떤 곡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낮에 치는 피아노는 아무리 길어도 1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만으로는 몇 개월을 연습해도 치기 힘든 곡을 이제는 틈틈이 연습하면서 준비해도 좋겠지요. 물론, 저도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마음 놓고 피아노만 칠 수는 없겠지만요.
한편, 전자피아노가 갖는 장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요즘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원래 매우 올빼미형으로 살았던 지라, 아침에는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밤 12~1시에 잠들고 새벽 7시 부근에 일어나도, 아침에는 너무 졸립니다. 이 졸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들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졸리면 바로 전자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그렇게 1~2곡을 5분 정도 연습하면 놀랍게도 잠이 깹니다. 아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잠이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브런치 글쓰기도 이것과 비슷한데요. 약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진짜 너무나도 졸렸습니다. 바닥에 엎드려서 눕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죠. 하지만 브런치로 글을 쓰는 작업은 제게 흥미로운 일이었고, 공부나 과제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잠들 바에야, 브런치라도 쓰자! 라고 결심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한동안은 브런치 글이 아침에 주로 연재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전자피아노의 장점을 부각해서 썼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자피아노와 일반 업라이트 피아노는 비교할 만한 게 못 됩니다. 당연히 일반 피아노가 치는 맛이 더욱 맛깔납니다. 전자피아노로 연습하다가, 일반 피아노에 앉으면 조금 감격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랜드피아노라면 더 좋은 느낌이 들겠지요. 한 마디로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근데 뭐, 닭이라도 어떻습니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전자피아노 정보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피아노 전공자 중에도 밤에 연습하려는 사람은 전자피아노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적지 않은 고민 끝에 마련한 전자피아노 구입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제 제게 주어진 새로운 환경 속에서 향후 해야 할 일들도 성공적으로 진행해나가고 싶습니다. 그게 피아노 연주가 될지, 학업이 될지, 사역이 될지, 그 무엇이 될지에 상관없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