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자료를 찾는 것이 공부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나는 현재 한 가지 연구를 진행하는 중이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써야 하는 글의 서론은 안 쓰고, 브런치의 본 글을 쓰고 앉아 있다. 중고등학생 때 시험 기간만 되면, 갑자기 책이나 신문, 토론 뉴스가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공부나 연구나 자시고 할 거 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는 뭔가 내키지 않는(?) 그런 게 있나 보다. 어차피 밥줄과 직결될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기에, 하고 싶은 걸 먼저 하련다.^^;
이번 주 초부터 새로운 연구 주제를 잡아서 뭔가를 탐구해보려고 시도 중인데, 거의 하루나 이틀 정도는 공부 자체를 못한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떠한 연구를 한다는 건 그와 관련한 풍부한 자료가 있을수록 유리하다. 연구자에게 적절한 학술 자료란 마치 요리사에게 신선하고 양질의 식자재와 다름이 없을 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연구의 80%는 자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나는 자료 찾기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자료를 찾았다는 (느끼지 않아도 괜찮을) 성취감’ 때문에 정작 해야 할 공부와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동안 나의 학문적 라이프 스타일을 돌이켜보면 감히 부정할 수가 없다. 많은 자료를 찾았고, 관심사에 적합한 자료를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왠지 모르게 뿌듯했고, 앞으로 연구가 창창하게 잘될 것만 같았다. 그리곤 노트북을 덮거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끝나면 결국, 남는 게 없다. 실속과 알맹이가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자료를 쌈박하게 단시간에 쫘악 찾아놓고, 바로 읽기 모드에 돌입한다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자료라는 건 아주 짧은 시간에 연구에 필요한 모든 양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어느 이론이나 개념, 사건을 다룬다면 그에 따른 새로운 자료를 찾아야 할 때가 온다. 즉,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자료를 모두 찾아놓는다고 시간을 너무 써버리거나, 미리 성취감을 느껴서는 곤란하다. 그걸 가지고 “시작이 반이다”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공부와 연구의 시작은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하여 정리하는 것부터이지 않을까.
논문 자료를 찾는 것만큼 내가 유난을 떠는 게 ‘책을 가져다 놓는 일’이다. 지금도 내 메모장이나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는 ‘앞으로 빌려야 하는 책’ 혹은 ‘사야 할 책’들이 그윽하다. 거기뿐이랴? 책장에도 ‘나 읽어줍쇼’하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100명 중 99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들의 50%는 안 읽어보았겠지만, 나조차도 그러하다. 학술적으로 중요한 책들, 구하기가 어려운 고귀한 책들을 찾고 구비해놓으면 정말 마음이 든든하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하고 그친다면 학자(學者)나 학생(學生)이라고 불릴 수 없다. 그건 골동품 수집가에 더욱 가깝다고 봄 직하다.
따라서 이번에 경험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이자 연구 꿀팁을 학습했다. 그건 바로 필요한 핵심 참고문헌을 찾고 저장하되, 먼저 그 자료를 충분히 읽고 나서, 다음 자료를 찾아야겠다는 점이다. 어차피 논문을 1개를 찾아놓던지, 100개를 찾아놓던지, 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의 총량은 비슷하다. 그저 여러 자료와 문헌이 있구나 하는 생각만 넓어질 뿐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작업은 찾은 자료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한편,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들만 훑어보는 것, 무슨 논문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공부가 된다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도서관에 가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잘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나 역시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핵심적인 논점은 ‘학문에 관한 흥미를 높인다는 데’에 있다. 다양한 문헌을 접하고, 지식의 소스를 둘러보는 일은 말 그대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체험이 된다.
그러나 만약 내가, 당신이 ‘연구자(Researcher)’라고 한다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인내, 노력은 독자와 동일하지 않다. 연구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재미나 흥미만 느낀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직접 1차 문헌과 2차 문헌을 소화해야 하고, 선행 연구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며, 끊임없이 사유함으로 새로운 걸작을 탄생시켜야 하는 의무를 갖는 이가 바로 연구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자료를 찾았다는 안도감’만으로 우리(라고 함은 지적 노동자 집단을 일컬음)는 오늘의 할 일이 끝났다고 정신 승리하고 있을 수가 없다. 아이러니한 일은, 넓은 관점에서 지금 나의 브런치 글쓰기 행위도 하나의 작은 정신 승리(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에이, 그래도 본 글은 훗날 언젠가 독자 여러분이 읽고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할 테니, 이건 공익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작업이라고 자기 위로를 해본다. 고로, 나의 시간 사용 편익과 기회비용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끝으로, A4용지 1페이지 반에 달하는 본 글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겠다.
“똥폼은 그만 잡고, 책을 펼쳐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