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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Dec 30. 2020

'중국풍'의 '영국식' 찻잔이라니요

다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입니다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이 될 이 글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2021년 나의 찻잔 위시리스트' - 그러나, 나의 물욕에 관해 길고 정성스레 끄적이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인 나머지 방향을 바꾸었다. 나의 많은 위시리스트 중에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찻잔에 대해 쓰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지. 마틴 스콜세지가 말하고 봉준호가 터트렸다


찻잔을 모으다 보면 꽤나 눈에 띄는 스타일이 '밝고 진한 청색 무늬 + 흰색 도자기'의 조합이다. 흰색 도자기에 무늬가 있는 것 자체는 백자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일이지만, 한국의 백자와는 달리 빽빽하게 그려진 요소들이 낯설다. 또 그 그림이 중국 풍경이나 건축물을 담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다. 분명 서양식 그릇과 접시, 찻잔들인데 어째서 중국의 풍경을 담고 있을까?


블루 윌로우 패턴 접시, 출처 위키피디아

그 중 가장 유명한 패턴(= 그릇의 그림)이 '블루 윌로우(Blue Willow)', 푸른 버드나무 패턴이다. 영국 테이블웨어의 여러 가지 클래식 패턴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미국인들이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찻잔이나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할 디자인이다.


1700년대 후반에 민튼이 스포드(Spode) 사를 위해 이 패턴을 제작하고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패턴이 워낙 인기를 얻어 민튼과 스포드가 소송을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스포드는 말할 것도 없고, 200년 넘게 이 패턴을 생산해 온 처칠(Churchill)이나, 웨지우드(Wedgwood)에서도 블루 윌로우 그릇이 생산되었다.  


사실상 어디가 버드나무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무늬지만 (그릇 중앙에 마치 보리처럼 휘날리는 것이 버드나무다), 이름이 그저 붙여진 것은 아니고 이 '블루 윌로우' 패턴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물론 그릇을 팔려고 갖다붙인 이야기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한 중국인 부자가 있었는데, 그 딸이 가난한 하인과 사랑에 빠졌다. 부자는 화가 나서 하인을 해고하고, 딸을 부유한 공작과 정략 결혼시키려 했다. 공작은 선물로 보석을 들고, 보트를 타고 그녀를 맞으러 왔으며 그들의 결혼식은 버드나무에 꽃이 피는 날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전날 두 남녀는 보석을 훔쳐 사랑의 도피를 했고, 공작의 보트를 타고(...) 탈출하여 수년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결국 공작에게 들키고 말았고, 공작은 두 남녀를 살해한다. 그러나 신의 가호로 두 연인은 비둘기로 변했다.


위 이야기가 나오는 수많은 요소들이 다 저 패턴 안에 표현되어 있다. 많은 요소를 다 넣으려고 하다 보니 다소 난삽해 보이기도 하는 구성인데, 이 접시를 두고 티타임을 가졌을 귀부인들을 떠올려 보면 꽤 재미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생각이 안 나면 패턴을 보면서 컨닝할 수도 있으니 유용하지 않은가!



그러나 자신들의 전통을 자랑하기에 바쁜 영국인들이 어째서 중국풍의 그림을 그들의 테이블웨어에 담았을까? 18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쉬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 취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어로 '중국(chinois)'에서 온 단어로,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예술, 문학, 건축 등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을 말한다. 특히 차는 동양에서 온 물품이었기에 다기류에 쉬누아즈리가 반영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나의 또다른 위시리스트인 '이마리' 디자인도 이 때의 영향을 받은 패턴이다.


블루 윌로우 티팟. 내 건 아님. 갖고 싶다!!


나는 원래도 청색을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 블루 윌로우 패턴의 접시를 보았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소 요란하고 쨍한 빛깔에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으나,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숨은그림찾기 하듯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제는 너무 먼 이야기로 느껴지는 18세기의 중국풍 유행이나, 가짜인지 모를 슬픈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 200년을 넘게 이어 온 유구한 역사의 증명이 없이도 '블루 윌로우'는 참 예쁘다. 아, 이와 비슷한 스포드의 '블루 이탈리안(Blue Italian)' 패턴도 아름답다! 블루는 사랑입니다.


* 브런치북도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ea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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