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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Mar 21. 2021

이러다 생장점을 자르면 어쩌지?!

일단 가지치기는 시원시원하게

홈가드닝, 누가 쉽다고 했나


홈가드닝에 대한 짧은 글을 예전에 올렸던 적이 있었다. 그 때보다 별로 경험치가 나아진 것은 없지만, 내가 확실하게 깨달은 사실은 이것이다. 날씨와 영양분 그리고 주인의 애정(...)이 적절한 조합을 이루면 나무는 무섭게 자란다. 아이를 키울 때 '하루가 다르다'는 말을 하는데, 나무야말로 그 말에 딱 적합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 사왔을 때는 몇 개의 가지밖에 없는 데다가 이파리도 전혀 없어서 「사기 당한 것 같으니 얼른 환불해 와라」 는 말까지 들었던 라일락 나무는 지난 해 정말 놀랍게도 쑥쑥 자랐다. 키가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옆으로 가지가 퍼지는 바람에 울타리 밖으로 자꾸 삐져 나가서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면서도 뿌듯함을 선사했던 나무. 처음에 들여오자마자 댕강 댕강 가지를 쳐 버려서 민둥산이 따로 없다 싶었던 자두나무는 예쁜 수형(= 나무의 모양)을 가지고 잘 자라고 있고, 우리 집에서 가장 키가 컸던 사과나무를 제치고 최장신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커 나가는 나무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가지를 쳐 주어야 더 예쁘게 잘 자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지난 겨울, 가지치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보통 가지치기는 가을이나 겨울에 하는 것이 좋은데, 일단 낙엽이 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편하고 하기도 쉽다. 잎이 넓은 종류는 어디까지가 가지인지, 뭐가 메인 가지인지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 일단 봄이 되기 전, 새순이 나오려고 시도하기 전에는 무조건 해 줘야 한다. 이렇게 치밀한 척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 시기를 다소 놓쳐서, 앵두나무의 새순이 슬금슬금 올라오려고 할 때쯤 덜컥 잘라줘 버렸다. 미안하다, 앵두야.


보통 홈가드닝을 하는 경우 집에 작은 원예용 가위를 갖고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작다고 해도 나무쯤 되면 그런 작은 가위로는 잘리지 않는다. 작은 가위로 억지로 잘라도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끝부분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뿐더러 잘못하면 아래 줄기 부분을 망칠 수 있기에 힘이 좋은 가위가 필요하다.


source from. WISH.COM gardening tools


처음에는 큰 정원에서 나뭇가지를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를 고려했었는데(위 사진 참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너무 오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 정원보다 가위가 더 커질 판 - 작지만 강한 전지 가위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종류들이 많이 있지만 의외로 힘이 세고 잘 잘리는 제품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택한 제품은 ARS (아루스, 아르스, 아로소 등으로 불림) VS-8Z 가위였다. 약간 가격대가 있지만 '구매 후 절대 후회가 없다'는 리뷰에 혹해서 샀는데, 놀라울 정도였다.

아르스 전지가위. 저와 아무런 개인적 관련이 없음. (있었으면 좋겠지만!)


꽤 두꺼워서 낑낑거리며 자르다가 가지 끝부분을 망가뜨려 버리던 가위와 달리, 크기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툭툭, 순풍순풍(!) 잘도 잘린다. 이래서 사람들이 전지 가위를 사는 거구나 - 라며 감탄했다. 가위날부터가 단단하고 야무진 것이 믿음직하고, 안전 장비도 제대로 되어 있다.


자, 이제 장비는 갖추어졌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시련이 남았다. 과연 가지치기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 공연히 가지치기를 하다가 너무 많이 잘라서 새 가지가 안 나면 어쩌지? 가지치기에 대해서 주변 어른들의 조언은 한결같았다.



시원시원하게 쳐 줘야 예쁘게 잘 자란다


시원시원하게라니, 도대체 그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 마치 '갖은 양념을 넣고 적절히 버무립니다'같은 이 말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가위를 잡고 나무 앞에 서긴 했는데, 어디까지를 잘라야 시원시원하다는 말을 들을까 그게 고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유튜브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면서 약간 터득한 가지치기의 방법은 이렇다.


가장 굵은 줄기에서 잔가지가 난 것들은 다 쳐 주는 게 좋다. 줄기의 중간에 툭 올라와 있는 가지들, 메인 가지가 아닌 것들은 공연히 영양만 잡아먹으므로(...) 아깝지만 잘라야 한다. 사실 가지를 자른다는 게 왠지 서운하고 못내 미안하기 마련이다. 얘네들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올라왔는데, 중요 부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잘려 나가야 한다니 - 마치 회사에서 곁가지로 분류되어 무시당하는 우리 팀같은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난다. 왠지 공감력 대폭 상승


메인 가지에서도 일부 가지는 쳐 줘야 하는데, 새 눈이 올라올 수 있는 부분을 남기고 잘라야 한다. 나무 가지 모양의 관리를 위해 아예 그 잔가지를 없앨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보통 자른 부분 바로 아래 쪽의 새 눈에서 새 가지가 자라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쭉 곧기만 했던 가지 옆으로 퍼져 나가는 방식으로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새 눈 부분을 남겨두지 않고 바짝 잘라버리면 더 이상 새 가지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거기서도 새 가지가 날 수 있겠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나니


새순 부분을 남기고 자른 라임라이트(좌), 바짝 자른 줄기(우)


그리고 나무의 모양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잘라야 한다. 그냥 일단 자르고 보자, 식으로 가면 예쁘게 자라게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예쁘건 못생겼건 우리 집 내 나무는 나밖에 안 보니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보통 굵은 줄기 부분은 중간 윗부분까지 잔가지가 없는 게 예쁘고, 윗부분에서 일정한 폭으로 퍼져 나가는 형태가 일반적으로 가장 예쁘긴 하다.


그러나 그것도 나무 따라 달라서, 아로니아같이 키가 작은 관목은 좀더 가지가 많이 퍼져 나가게 하는 게 낫다는 개인적인 생각이고, 사과나무나 자두나무는 확실히 전형적으로 모양을 잡는 게 좋아 보였다. 의외로 까다로운 것이 나무 수국(라임라이트, 불두화)류인데, 모양을 잡아 놓는다 해도 무거운 꽃때문에 줄기가 휜다. 가지치기를 할 때 이상한 모양으로 휘어 있는 줄기들을 잘라서 모양을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래저래 생각하면서 자르다 보면 어느새 '시원시원하게' 쳐 버린 가지들이 보인다. 자르는 손맛도 있어서, 자르다 보면 자꾸 자르고 싶어지는(!) 효과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잔뜩 가지를 쳐 버린 우리집 나무들은 이제 새로운 봄을 맞아 새 가지를 뻗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꽃이 피는 앵두. 빨리 안 쳤으면 큰일날 뻔.


*브런치북도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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