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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Oct 02. 2020

홈가드닝, 누가 쉽다고 했나

생각해 보면 아무도 쉽다고는 안 했지만


나는 그리 자연친화적인 인간은 아니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지만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산에 대한 애호도 없다.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식물을 키워본 적은 손에 꼽힌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 수업 시간에 키웠던 비실비실한 강낭콩 한 줄기가 내 반려식물 스토리의 거의 대부분인 셈.


그러나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서, 내 삶 속으로 식물이 들어왔다. 일단 옥상정원이 생겼고, 그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집에 식물이 생겼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시어머니도 식물을 좋아하셨는데, 집에 오실 때마다 이런저런 정원 용품과 각종 화분들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Y는 질색팔색을 하며 「 우리집에 어울리는 걸로 우리가 사서 들일 거에요 」 라고 주장했지만, 10의 5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왕 들어온 애들, 예쁘게 키워보자는 생각에 '홈가드닝'을 검색했다. 마침 '반려식물'이라는 키워드가 막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베란다 행잉 가든, 테라리움, 도시 농부, 초보정원사, 어반 가드닝(!) - 여러 매력적인 단어들이 마치 내 삶에 강력하게 우아한 무언가를 더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게 생각했던 것의 반만 풀려도 그렇게 힘들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보람을 주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까다롭고 배려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식물을 많이 키워 본 어른들의 말은 꼭 경청해야 한다. 정말이다.




초보 정원사의 대표적인 실수, 과습


잘도 자라는 토마토. 때로는 무서울 정도다


내가 키우기 시작했고 결국 죽게 만든 첫 번째 식물은 토마토였다. 통통한 대추 방울 토마토를 3년째 잘 키워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되돌아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토마토를 죽게 만들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별일 없이 잘 크는 식물인데, 당시에는 너무 물을 많이 줬다.


처음에 식물을 들이면 보고 또 보고, 일어나서 또 보고, 생각나면 또 와서 보고 하게 된다. 그렇게 과도한 관심을 가지면서 동시에 과도한 물을 주고, 과습이 일어난다. 사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그렇다. 얘가 동물과는 달라서 움직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아니고 - 물론 동물도 말은 못하지, 참 - 뭔가 반응이 없다. 그렇다 보니 돌봐주고 예뻐해 주고 싶은데 뭐 해 줄 만한 게 물 주는 것뿐이다. 물론 나중에 보면 흙도 갈아줘야 하고, 비료도 줘야 하고, 햇빛이 강하면 차광막도 쳐야 하고, 죽은 잎도 잘라줘야 하는 등 일이 많지만,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모른다. 그저 사랑의 증표로 물만 준다. 그러다 보면 애들이 죽는다.


과습으로 우리가 죽게 만든 식물만 해도 토마토, 애플민트, 로즈 허브, 아보카도, 이름 모를 수많은 다육이 - 한 포트에 2,000원 하는 다육이부터 35,000원 하는 다육이까지 다양하기 그지 없다.


물을 줄 때는 우선 화분 위쪽의 흙을 만져 보고, 말랐다 싶으면 준다. 나무는  흙 속으로 살짝 손가락을 넣어봐서 건조하면 흠뻑 주거나, 잎을 만져 보고 '수분이 없다' 싶으면 주면 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지나다니면서 괜히 남의 집 앞의 나무 이파리를 만지작대곤 한다. 내가 물 줄 건 아니지만 괜히 걱정이 된달까.



적당한 그늘, 적당한 햇빛


실내에서 웃자란 애플민트, 아직은 살아 있었던 다육이


옥상에 애플민트를 들이면서 여러 가지 기대가 있었다. 늦봄에 종로 5가에서 사 온 민트 포트를 늘어놓고, 여름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민트에 물을 가득 주었다. 튼튼하게 자라면 민트 잎을 떼다가 모히토를 만들어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꾸 민트 잎이 망가지고, 제대로 크지 못하는 것이다. 남의 집 민트는 잘도 크던데, 쑥쑥 자라서 무릎까지 오던데(그럴리가!) 왜 우리 집 민트만 이 모양인가. 식물을 키우다 보면 남의 집 애들과 비교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옆집 민트는 저렇게나 잘 자라는데, 우리 집 민트는 실내에서는 웃자라더니 밖에 내놓아도 제대로 못 자란다 싶었다. 이래서 아이를 자라나는 새싹에 비유하나?


그러다가 북쪽으로 난 현관 앞에 자리가 났기에 그 쪽으로 옮겼는데, 웬걸, 너무 잘 자라는 것이다. 그 때 이후로 민트의 자리는 북쪽, 2년째 잘 키우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민트처럼 이파리가 얇은 식물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 잎이 탄다. 게다가 햇살을 받고 있을 때 물을 주기까지 하면 잎이 더 많이 타 버리는 것. 적당히 그늘이 지고, 바람도 잘 불고, 햇살도 적당히 비추는 곳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식물에 따라서 강한 햇빛을 선호하는 종류가 있고, 음지 식물도 있다. 각각 식물의 특성은 차근히 공부해 가면서 익히면 되지만, 기본적으로 햇빛과 그늘, 환기, 수분이 공존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진딧물과 벌레의 습격


처음에 우리는 과실수를 많이 샀다. 「 이거 수확되는 과일만 따 먹어도 개이득이야 」 라는 사장님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고, 맞는 말이었다.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는 말이다.

(참고글: 어떤 나무를 어디서 살까?)


그래서 앵두나무로 시작하여 아로니아, 알프스 오토메(꽃사과), 자두나무를 차례로 들였다. 꽃이 순조롭게, 그것도 엄청 많이 피었고 이제 저 수많은 꽃들에서 열매가 나오면 과일 값은 안 들겠다 - 생각하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과일을 매일 먹기에 과일 값만 해도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진딧물의 습격을 받고 살아남은 마지막 잎새 아니고 마지막 열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파리가 이상한 모양으로 비틀리기 시작했다. 앵두나무 잎은 흡사 굼벵이 모양처럼 돌돌 말려 있었고, 자두나무 잎도 마찬가지였다. 사과나무는 좀 덜했지만 희한한 하얀 것들이 잎에 빽빽하게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잎이 자라면서 저렇게 되는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한 거다. Y는 자세히 잎의 뒷면을 살피다가 손사래치며 비명을 질렀다. 「 으악, 이게 뭐야! 진딧물이 엄청 붙었어! 」


역시나 달콤한 과실수는 잎도 달콤한 건지, 먹기가 좋은 건지 - 진딧물이 아주 활개를 치고 있었다. 열매가 맛이 없는 건 귀신같이 아는지, 아로니아는 진딧물이 별로 없었다. 꽃이 질 때쯤부터 진딧물은 활동을 시작하고, 진딧물때문에 잎이 변색 및 변형이 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식물바이러스병을 일으킨다고도 한다. 보기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식물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안되겠다 싶었다.


농약은 주택가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위험한 물질이기 때문에 판매하는 곳도 한정되어 있고, 종로5가의 꽃나무 시장에 가면 농약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아주 작은 양으로 소분된 봉지 하나면 충분하다. 다량의 물로 희석하여 사용하고, 피부에 묻지 않도록 절대 조심해야 한다. 저독성 살충제라고는 해도 방진복과 마스크, 장갑을 착용하라고 되어 있을 정도다.


방진복이 없다면 이 정도는 착용해 줘야 한다. 우비, 물안경, 마스크, 장갑


길가의 낙엽은 아름다웠지만..


가로수가 늘어선 도시의 도보 위를 수놓는 낙엽은 나름 낭만의 상징이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분분한 낙화.. 그런데 이걸 직접 치워야 하는 입장이 되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몇 그루 안 되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왜 이다지도 많은지, 게다가 귀찮다는 이유로 낙엽을 치우지 않고 있다 보면 낙엽이 바람에 쓸려 가면서 옥상의 수채 구멍을 막기 십상이다. 거기에 비라도 오면 물이 안 내려가서 재난 상황이 되므로, 낙엽은 제때제때 치워줘야 한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는데, 우리집 나무들은 단풍은 별로 안 들고 다들 낙엽이 되어 떨어지곤 한다. 물론 그 중에서 예쁘게 단풍이 드는 나무들도 있는데, 남천같은 종류이다. 아로니아와 자두나무도 단풍이 들면 예쁘게 변한다.


이왕이면 정원을 계획적으로 구성해서 봄에 보는 꽃나무, 여름에 보는 과실수, 가을겨울에 단풍을 늦게까지 볼 수 있는 나무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 싶다. 낙엽을 순차적으로 치울 수 있으니까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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