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ie Aug 21. 2020

어떤 나무를 어디에서 살까?

우리 동네에 이렇게 나무를 심은 집이 많았나

단독 주택에 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고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생각보다 나무 심은 집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특히 대규모 아파트에는 필수적으로 조경 작업을 해야 하니 잘 관리된 수많은 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지만, '내 집을 위해 내가 골라서 나무를 심는 것'은 단독 주택이 아니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 동네는 옛날 동네인 만큼 유난히 나무를 심은 집이 많고, 그 나무들이 워낙 연식이 오래 되어 나뭇가지가 주택 담벼락 밖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집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래된 나무는 풍수상 쉽게 벨 수도 없다고 들었는데 어쩌나, 라며 공연히 남 걱정도 해 본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단연 라일락 나무와 감나무다. 감나무는 생긴 것부터가 튼튼하게 생겼다. 탄탄하고 무난하며, 어디를 가나 적응을 잘 할 것 같은, 180대 내외의 키에 적당히 근육이 있고 적당히 배가 나온 남자같은 느낌. 거기서 나온 감이라는 과일도 나무의 느낌과 비슷하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피어나는 라일락! 근데 오래는 안 감..


그에 비해 살랑살랑거리는 이름과 달리 라일락은 생각보다 진짜 튼튼하고 벌레 안 꼬이고 잘 돌보지 않아도 혼자 잘 먹고 잘 크는 나무다. 괜히 온 사방에 라일락을 심어 둔 게 아닌 거다.


다만, 부산에서 온 나로선 라일락이 유난히 '서울에' 많다고 느꼈다. 남쪽 지방, 적어도 부산에서는 라일락 나무를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고, 향기 좋은 꽃이라면 오히려 '만리향'이라고 불리는 '금목서'가 더 익숙했다.




주변을 살펴 '남들은 뭘 심었나' 관찰해 본 후, 우리는 나무 시장으로 향했다. 보통 나무든 꽃이든 가장 유명한 곳은 '양재 꽃시장'이다.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다양한 종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택한 곳은 종로5가 꽃시장.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그러나 도심 속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 동대문과 대학로를 끼고 있다 -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다.


종로5가 꽃시장에서 찍은 장미 동영상. 바람 소리가 무슨 태풍인 듯?


시즌에 따라 다양한 나무를 접할 수 있다. 동대문 쪽에서 올라오면 꽃이나 화분이 많고, 충신시장 쪽에 가까워질수록 나무가 많다. 그냥 줄지어 가게들이 있으니 걷다 보면 나무 시장을 보게 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버스가 다니는 차도와 바로 면해 있어서 잘못하다간 목숨의 위협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면서 다니시길. 대체 왜 이렇게 시장을 만들어 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 우리는 과일을 맺을 수 있는 나무를 원했다. 그리고 시장에 가면 사장님들이 나무를 권하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것이다.


이거 열매 맺는 것만 따 먹어도 본전은 충분히 해요!


...근데 문제는 초보 도시 정원사들은 열매를 제대로 맺게 하기가 어렵다는 게 함정이다. 그리고 열매를 어찌어찌 맺었다고 해도 그 맛이 대단히 좋지는 않다. 내가 그린 핑거(green finger)가 아닌 탓도 분명 있으나, 여태 꽤 많은 열매를 보았지만 그 중 입에 맞겠다 싶을 정도로 먹을 만한 것은 상추와 토마토밖에 없었다. 그리고 얘네들은 나무가 아니다 


우리가 집에 들여 온 과실수는 앵두 나무, 자두 나무, 알프스 오토메라고 불리는 꼬마 사과 나무, 아로니아였다. 그 중 제대로 열매다 싶게 실하게 맺은 것은 아로니아인데 문제는 아로니아는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 심지어 벌레들도 아로니아 열매는 안 먹고 외면한다. 이 나쁜 놈들.


몇 그루의 과실수에 대한 약간의 실패, 그리고 달콤한 과실에 따르는 진딧물에 진저리가 난 우리는 - 아, 심지어 아로니아는 진딧물도 없다. 칭찬인데 왠지 안티같은 느낌 - 과실은 없지만 꽃을 보는 나무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 때 강력하게 추천 받은 것이 라일락. 특히 우리가 사 온 것은 혼자서도 무럭무럭 자라고, 월동도 하며, 잡초도 잘 자라지 않는 강력한 기운을 가졌다는 '노지 라일락'이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종류인 줄 알았는데 그냥 '험한 노지에서도 살아남아 잘 컸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또 두어 종류를 더 들이려고 했을 때 추천 받은 것이 바로 수국.


여름엔 뭐니뭐니 해도 수국이 최고죠


그 때는 몰랐다. 수국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보통 여름에 피는 나무 수국은 '라임라이트'라고 불리는 하얀 꽃인 경우가 많고, 이른 봄에 피는 나무 수국은 '불두화(= 부처님 머리 꽃?)'라고 불리는 종류다. 예쁘기는 둘 다 너무 예쁘다. 다만 불두화는 꽃잎이 약하고 쉽게 지는 반면, 라임라이트는 매우 강해서 이번의 초장기 장마에도 꽃잎 한 장 떨어뜨리지 않고 살아남고 있다. 물론 목수국 외에 꽃수국도 있다.


이것은 불두화. 만지면 몽실몽실하다.





이 외에도 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씩 사와서 심으면서 겪은 수많은 눈물과 기쁨, 야망과 좌절의 에피소드가 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시리즈로 쓸 예정이다. 


'홈가드닝, 누가 쉽다고 했나'로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