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Oct 11. 2020

이사날인데 냉장고가 문에 안 들어가요!

냉장고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만요

길고 긴 눈물의 여정 끝에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공사를 위해 설치했던 비계를 철거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완전히 공사가 끝난다. 비계는 공사 현장 용어로 '아시바'라고도 하는데, 외벽 공사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이다. 보통 공사 현장에 가 보면 가로세로로 설치되어 있고 올라가서 작업할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을 칭하는 것.


그러나 비계를 철거하는 것도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시공팀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 날짜로 잡아두었던 날까지 철거 일정이 맞지 않아 비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통 시공팀은 하나의 현장만 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현장을 동시에 가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렇게 현장 간의 일정이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이사업체와 계약도 이미 해 두었고, 새로 들이는 가구들도 다 그 날짜에 맞추어 들어오기로 한 상태였다. 도저히 입주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태였기에 이사를 강행해야 했다.


「 이거 그 전에 철거할 수는 도저히 없나요? 」

「 그 날 전에는 도저히 올 수 있는 팀이 없어요. 냉장고 문 분리하면 들어가긴 할 거에요. 」

「 그럼 소장님도 저희 이사할 때 오세요. 만약에 철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저희가 임의로 철거를 할 수가 없잖아요. 냉장고 잘 들어가는 것만 보고 가세요. 」


여러 걱정도 많았지만 드디어 입주한다는 기대감과 기쁨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밤이 지나고, 우리의 이사날이 밝았다. 짐을 정리해서 트럭에 실어 보내고, 우리는 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역시나 예상했던 사건이 터져 있었다.


이거, 이 상태에서는 냉장고 못 들어가요. 둘 다 문을 떼도 안돼.


비계를 세워 놓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냉장고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옛날 주택이라 좁은 입구와 현관에, 계단까지 있는 곳인데 비계까지 서 있으니 당할 재간이 없다는 얘기. 그렇다고 엄청난 크기의 냉장고도 아니고, 평범한 양문형 냉장고였지만 - 졸지에 갈 곳을 잃고 우리 냉장고는 쓸쓸히 거리에 서 있었다. 


보통 아파트의 경우 현관문으로 들어갈 수 없는 크기의 가구는 지게차를 동원하여 거실의 대형 창문으로 가구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열과 치안 문제를 걱정하여 고정형 시스템 창호를 썼고, 덕분에 창문 유리는 컸지만 전체가 열리는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가구를 넣는 것도 불가능했다. 


여기에 어떻게 냉장고가 들어갑니까


소장님을 오시게 했던 것은 나의 선견지명이 발휘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입구 쪽 비계를 일부 철거하고 - 전체를 철거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나마 다행인가 - 냉장고를 겨우 우겨 넣었다. 요리도 안 하는 주제에 양문형 냉장고가 내게 무슨 사치인가, 그냥 작은 냉장고를 살 걸 - 신혼 가구를 구입하던 시절의 나를 원망하면서. 


그러나 비계를 잠시라도 철거한 것은 결국 잘한 일이었다. 곧이어 침대 매트리스, 소파, 6인용 디너 테이블, 심지어  화장대까지 줄줄이 들어왔으니까. 미리 사이즈를 재어 두면서 꼼꼼하게 확인해 두었다고 생각했지만, 현장 상황은 예측과는 또 달랐다. 


집에 막 들어왔을 때의 모습. 저기에 냉장고 넣어주세요!


일단 가구들이 무사히 현관문을 통과해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집은 복층 구조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한 번 꺾이기까지 하는 계단. 계단을 통해서 대다수의 가구들이 2층 침실과 드레스룸에 올라와야 했기에, 각종 분해와 재조립을 하느라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수많은 고생을 하시게 될 분들을 위해 미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센스라고는 하등 없는 관계로 작업 중에 허둥지둥 나가서 사와야 했다. 


우리도 요즘 많이들 하는 포장 이사를 선택했는데, 그 전 신혼집에서 시부모님댁으로 짐을 옮길 때 같이 일했던 팀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첫 번째 이사를 했을 때 매우 만족했었기에 두 번째도 연락을 했었고, 이미 한 번 거래를 했었다는 이유로 두 번째 이사 비용도 조금 네고를 할 수 있었다.


포장 이사의 장점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확실히 책임감 있게 해주는 팀을 만나야 한다. 꽤나 까다로웠던 우리 집의 구조때문에 가구를 이동시키고 배치하기가 보기에도 거의 불가능해 보였지만, 「안될 것 같았는데, 이삿짐센터 프로 분들이 하니까 정말 들어가더라」 는 기적을 경험했다. 




가구와 가전, 수많은 책 상자, 옷, 기타 잡다한 물건들을 이동시키고 나자 멘탈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왜 이사하는 날 자장면을 먹는지 알 것 같았다. 죽지 않으려면 당분이 필요한 거다. 


이사한 날에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보통 기존에 있던 사람과 바톤 터치를 하는 경우 전기료 정산을 당일에 하지만 우리는 그럴 일이 없었고, 가스 연결은 미리 예약을 해 두어야 한다. 인터넷 연결도 마찬가지. 가스는 몰라도(?) 인터넷은 연결이 안되면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므로 미리 날짜를 맞추어 두어야 한다. 


아파트는 전봇대가 지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지만, 도심 단독주택은 집 근처 전봇대에 수많은 전깃줄과 통신선이 어지럽게 엉켜 있게 마련이다. 끊어진 전선도 있고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는 전선도 있다. 근처의 수많은 입주자들이 연결했다가 안 쓰게 된 선들이 세월의 흔적만큼 켜켜이 쌓여 있다. 그게 신경 쓰이면 KT에 연락하거나 생활불편신고앱에서 전선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 해 준다. 우리 집 근처 전봇대의 전선이 정리되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시원했던가. 그러나 전선이 금방 또 늘어난다는 것이 함정 


짐 정리는 당일에 다 완료하기가 어려우니 우선 대강 큰 것부터 마무리해 놓고,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나서 근처 떡집에서 주변 이웃에게 돌릴 떡을 샀다. 


드디어 이사 왔다. 

이제 단독주택 라이프 시작이다 :)


*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이전 10화 집 고치다가 남편이 울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