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잔디도 쓸 만 합니다!
이전 글에 쓴 적이 있지만 집을 고치다가 막판에는 워낙 돈이 모자라서 대문도 못할 뻔 했다. 다행히 디자인이 괜찮고 가격대도 합리적인 대문이 있어서, 그나마 원치 않는 오픈형 집은 면했지만.
(참고글: 단독주택 고치는 데 대체 얼마가 듭니까?)
그러다 보니 옥상에 정원을 조성한다든지 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옥상을 둘러싸고 홈을 깊이 파서 나무를 심을 수 있게 해 놨는데, 문제는 흙을 사서 채우고 나무를 심을 돈이 없었던 것. 사실 단독주택의 즐거움은 정원 가꾸기, 마당이 아니라면 옥상이라도 만지작거리는 것인데 가난해서 못했다. (눈물)
평수도 그리 크지 않고 자랑할 만한 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공간이었기에 리모델링이 끝나고 좀 정신을 차린 후에는 슬슬 옥상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우선 바닥을 무엇으로 깔까, 고민이 됐다. 기본적인 방수 처리만 된 옥상 바닥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옵션이 있었다.
1. 천연 잔디
일단 멋지다. 그리고 자연의 풋풋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천연잔디를 위한 배수로 등이 설계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줘야 한다. 모잉(Mowing)이라고 불리는 잔디 깎기가 생각보다 힘든 일인데, 아무리 작은 옥상이라고 해도 비 많이 오는 시즌에는 거의 매일 깎아줘야 한다. 안 깎아주면 잡초 자라듯 무성하게 자란다고.
2. 데크
요즘 많이 택하는 방식이다. 일단 깔끔해 보이고, 흙을 안 쓰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눈이 왔을 때 지저분해지는 일이 없다. 관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눈 올 때 미끄럽긴 하다. 이케아에서 조립형 데크도 팔고 있고 시공하는 곳에 맡겨도 된다. 혹은 시간 날 때 하나씩 조립해 가는 즐거움도.. 난 안 하겠지만
하지만 왠지 푸릇푸릇한 정원이라는 우리의 초창기 컨셉에 맞지 않아서 버린 옵션. 물론 잔디와 데크를 함께 섞는 방법도 있다.
3. 인조 잔디
오늘의 주인공. 처음에는 「 인조 잔디라니, 별로다 」 라고 생각했다. 뭔가 가짜로 푸릇한 느낌을 낸다는 것도 약간 꺼려졌고, 나름대로는 큰 돈을 들여 열심히 지은 집에 싸구려 인조 잔디라니!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부의 특성을 감안한 사후 관리(게으르다), 부부의 성향을 예측한 공간의 유연성(자꾸 뭘 바꾸고 싶어한다), 부부의 재정을 고려한 비용(가난하다)을 생각하여 '한 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자'로 변경되었다.
우선 인조 잔디를 한번 보러 을지로에 갔다. 을지로 3가역에 내리면 여러 곳에서 인조 잔디를 샘플로 밖에 놓아두고 판매하고 있다. 그 중 을지로3가 상인들의 추천 몰표를 받은 곳이 6번 출구 근처의 [선영비니루]라는 곳이다. (이 곳과 그 어떤 개인적 관계도 없으며, 그저 경험해 보니 꽤 좋아서 추천하는 것임.) 사실 예전에도 한번 잔디 및 기타 부수 재료 시장 가격 조사차 들른 적이 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쿨한 응대를 보여주시는 사장님이 계신 곳이다.
사실 가격을 따져 보면 느끼겠지만 천연 잔디와 인조 잔디가 아주 큰 가격 차이가 있지는 않다. 물론 차이가 나긴 하지만 '천연' vs. '인조'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갭이랑은 좀 다르다. 약간 억울하기도 한데, 이름이 이렇게까지 다르면 가격 차이도 꽤 나야 하는 거 아닌가?!
가격은 2mx3.5m에 4만 6천원 정도 했던 거 같은데(2017년 초 기준) 지금은 좀 올랐을 수 있다. 잔디를 깔고 싶은 곳의 전체 크기를 재어서 가져가면 사장님께서 이렇게 자르는 게 낫다, 저렇게 자르는 게 낫다 조언을 주시는데, 결국은 사장님 말 듣는 게 편하고 이득이라는 결론이었다. 심지어 별로 쓸모가 없게 남아 버릴 뻔한 잔디를 활용할 수 있게 재단해 주셔서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었다.
여름잔디, 가을잔디 해서 잔디의 색상이나 느낌도 많이 다르니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데, 우리는 색상은 파릇파릇하고 초록이 강한 걸로 샀다. 조금 갈색 느낌이 가미된 잔디도 있고, 훨씬 짧은 잔디도 있다고 한다. 다만 실외용으로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하고 우리가 고른 것은 PX2000 시리즈였다. 중국산은 조금 더 싸다고 하는데, 그냥 국내산으로 샀다. (큰 차이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아래 배수도 어느 정도 된다고 하고, 커터칼로 슥 자르면 잘리며, 카펫처럼 펴서 평평하게 고르면 되니 설치가 아주 쉽다. 약 30분 걸렸다. 물론 인조잔디라 어쩔 수 없이 고정이 잘 되지 않고 움직이긴 하는데, 본딩 작업(= 아랫면에 본드를 발라서 고정)을 해서 견고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본딩은 초보가 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작업자가 오셔야 하고, 당연히 돈이 든다. 우리는 그냥 근처에서 벽돌 몇 개 구해다가 잔디를 눌러놨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멀쩡하다.
참고로, 그 바로 맞은편 거리가 을지로 가구 거리이다. 이 근처 업체들은 함께 배송도 해 주니 배송비를 아끼려면 그 방법도 좋다. (물건이 많지 않을 때의 이야기지만) 협의를 잘 해서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인조 잔디도 습해지므로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는 닦아서 넣어 놓는 게 낫다고 하지만, 게으른 부부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이야기라서 주구장창 펴 놓고 있다. 이젠 마치 옥상의 원래 바닥인 양 잘 사용 중이다. 후회는 없고, 색깔만 잘 고르면 오히려 실용적이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에도 추천하는 중.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나무다. 어떤 나무를 어디에서 살까? 로 이어집니다.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