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많이 안 들이고도 좋게 짓고 싶어요
사실 이게 제일 궁금한 사항이었다. 나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리라. 정말 케바케라서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설계건, 마감재건, 재료건, 집기랑 가구건, 찾아보면 좋은 것은 많았다. 좋은 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 몰라서 못 하는 경우도 있긴 함 - 돈이 모자라서 못하는 서글픈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결국 얼마가 들고, 그만큼의 효율성이 있냐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 도대체 몇 번의 견적이 오갔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와중에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세 가지다.
여윳돈을 두어야 한다. 적어도 20%.
회사 업무상으로도 가끔 업체의 시공 및 납품 견적서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 때 꼭 들어가 있는 항목이 예비비다. 공사를 하다 보면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안전 장치로 마련해 두는 비용인데, 내 집 리모델링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잡은 예산에서 적어도 20%는 증가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사실 20%도 매우 적게 잡은 것이고, 보통은 30%라고 얘기한다.
처음부터 설계를 꼼꼼하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오래된 집을 고칠 때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난방관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고 결정하고 시공을 하던 중, 동파 등으로 인해 난방관이 터져 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하 공사를 하면서 우리가 겪었던 일. 공사 현장에서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며 축축하게 젖어 있는 바닥을 보았을 때의 섬뜩함이라니. 난방관을 다 교체하려면 비용이 상당히 든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는 게 뭔지 이 때 알았다. (이토 준지 만화 《소용돌이》보다 더 무서움)
그러니 가지고 있는 예산을 1차에 다 쏟아붓지 말고, 여유 비용을 꼭 보유하고 있을 것을 추천한다. 우린 나중에 예산 비용이 정말 한계치까지 다다라서 대문 없는 단독주택이 될 뻔 했다. 대문 없을 때는 동네 분들이 막 들어오시기도 함
난방에는 돈을 많이 써도 아깝지 않다. 다만 현명하게.
물론 예산 안에서 써야만 한다. 다만, 단독주택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가 '냉난방'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항목이다. 보통은 두 가지로 분류가 된다. 내단열, 외단열이라고 불리는 집 자체의 단열재. 그리고 창호의 크기와 성능.
외단열은 큰 외투를 입는 것, 내단열은 속옷을 꽁꽁 잘 입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둘 다 하는 게 제일 좋지만, 비용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경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외단열이 보통 좀더 비싼 만큼 효율이 더 좋다. (모직 코트 + 티셔츠와 유니클로 히트텍 3겹 + 가을잠바의 느낌인가?)
사는 곳이 '추울 때 너무 춥고 더울 때 너무 더운' 서울이 아니었다면 내단열을 택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결국 매끈한 외벽 + 외단열을 택했다. 사실 '단독주택, 추워서 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라는 시어머니의 걱정과 반대에 '단독주택도 이만큼 따뜻할 수 있어요!'를 보여주기 위해서 다소 무리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외단열을 한다고 해도, 냉난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창호(= 창문)이다. 창문이 이렇게 비싸다는 걸 리모델링을 하면서야 알았다. 나중에 따져 보니 창에만 2천만원 이상 들었다. 그러나 가격만큼 성능의 차이도 확실한 것이 창호라고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는 돈을 좀 쓰기로 했다. 요즘은 많이들 쓰고 있는 독일식 시스템 창호는 창문을 닫았을 때 외풍이 없고 가벼운 환기도 가능한 제품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창호가 클수록 돈도 많이 들고 냉난방 효율도 떨어진다. 그러나 큰 창이 주는 개방감과 뷰가 있기에,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긴 하다. 우린 전체적인 통일성을 위해 창을 같은 크기로 했지만, 단층 이상의 단독주택이라면 방의 특성에 맞추어 창 크기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안방에 큰 창문을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는 하게 된다.
유리도 몇 겹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당연히 냉난방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학교의 교실에 사용되던 얇은 한 장짜리 창문은 바람만 불면 덜컹거렸고 손끝으로 튕겨도 깨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름 돈을 많이 주고 한 시스템 창호는 튼튼해 보이긴 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복층임에도 불구하고 냉난방비는 많이 나오지 않는 편.
어차피 세부 견적은 몰라서도 못 따진다.
이 부분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건축 전공이거나 시공사 경험이 있는 건축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 부부는 둘 다 인문학 전공자에 리모델링 무지랭이로서, 집을 사고 정보를 알아보면서 이런저런 책을 읽어서 갖게 된 얼기설기한 지식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1차 견적서가 두둥- 하고 날아왔을 때, 우리가 예상했던 금액보다 1.7배에 가까운 금액이 날아왔을 때 시쳇말로 '멘붕'을 겪었다. 핏기가 가신 우리의 얼굴을 보며 건축설계사는 「가장 좋은 스펙과 규모로 했을 때 이 정도라는 것이고, 협의하면서 조율해 나가면 됩니다.」 라며 우리를 위로했다. '협의와 조율'이 3개월이나 걸릴 줄은 그도 몰랐겠지.
그 때부터 Y는 시공에 관한 책을 읽으며 세부 견적의 항목들을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단열재는 무엇을 썼는가, 이 변기와 욕조는 우리가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전기 공사는 왜 이리 비싼가, 철거 비용은 또 왜 이렇게 엄청난가 등등.
그렇게 열심히 보고 나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요목조목 따져서 최적의 스펙에 맞는 최저의 비용을 제안받을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진 않았다. 게다가 재료의 원가나 시공에 맞는 인건비, 특급 기술자와 고급 기술자의 차이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저희는 돈이 이것밖에 없어요. 이거에 맞춰 주세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끝없이 스펙 다운을 해서 엉망인 집을 만들게 될까봐 두려웠던 우리는 2차, 3차, 4차로 날아오는 견적서를 끊임없이 해부하듯 살펴보았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없었던 항목이 갑자기 추가되기도 하고, 예전에는 비쌌던 항목이 갑자기 저렴해졌지만 저렴했던 항목이 비싸지기도 했다. 점점 우리는 이렇게 견적을 떡 주무르듯 하는(?) 설계사와 시공사를 믿을 수 없다며 의심하게까지 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또한 '우리가 좀더 잘 알아보고 따지면 더 저렴하게 할 수 있을 텐데, 호구 잡히는 게 아닐까' 라는 불안이 커져 갔다.
하지만 그 때 즈음, 이미 이런 리모델링을 두어 차례 겪어 보고 집까지 지은 Y의 지인이 해 준 한 마디가 불현듯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어차피 너희가 그걸 본다고 해서 가격을 깎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들에게는 나름 그들의 계산 방식이 있고, 예산을 운용하는 업계의 방식이 있어. 아마추어인 너희가 그걸 컨트롤하려고 하는 건 무리야. 차라리 뭔가 서비스를 작게라도 해달라고 하는 게 훨씬 협의가 쉬울걸. 」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았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마치 '소비자가'처럼 정해져 있다면 모르겠지만 - 심지어 소비자가가 있어도 할인이나 프로모션으로 가격이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나 - 미지의 영역에서 그 비용을 하나하나 따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길이다.
그렇다고 견적은 모두 설계사와 시공사에 맡기고 넋 놓고 있으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꼼꼼하게 따지고 궁금한 것은 다 해결하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 와중에서 조율되고 서로 양보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견적을 세밀히 따지는 것은 무조건 필요하다. 다만 내 마음대로 다 되리라는 생각은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인생에서의 소비를 생각해 보면, 가장 큰 돈은 집을 살 때 썼고, 그 다음 규모가 바로 집을 고치는 비용이었다. 많은 예비 건축주들에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보통 “좋고 싼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 맘이 그런가?
그러나 결국은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오고, 그 때를 위한 선택과 집중을 미리부터 생각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이제 본격 시공의 시작이다. 하도 오래 공사 시작을 안 해서 집을 중개해 준 부동산 아주머니마저 걱정하게 했던 우리 집의 공사는 드디어 시작되었다.
*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